일본은 죽어서도 이혼을 한다
지난주 미용실 원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냥 해 봤다고 늦더위가 계속되는데
잘 있냐는 안부 문자를 받았는데
그건 머리 다듬을 때가 되지 않았냐는
의미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다음 달에 머리손질을
할 예정이었는데 원장님에
부름?에 따르기로 했다.
[ 날이 너무 덥죠? 냉커피 한 잔 드실래요? ]
[ 아니요, 저 그냥 물 마실게요 ]
[ 여름인지 가을인지,,근데 다음 주부터는
완전히 가을이 온다네요, 뉴스에서 ]
[ 네.. 저도 들었어요 ]
머리가 많이 자랐다며 커트 준비를 하시는
원장님에게 야한 생각을 많이 하면
머리가 잘 자란다는 말이 진실이냐고
물으려다 질문이 좀 유치한 것
같아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벽걸이 티비이에선 새 총리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9명에 대한 후보자를
한 명씩 정치성향 분석을 하고 있었다.
누가 될 것 같냐고 원장님이 물어서
그냥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 원장님, 최근에 한국에 가셨어요? ]
[ 올 초에 갔다 왔는데 물가가 너무 비싸서
깜짝 놀랐어. 어딜 가서 먹질 못하겠더라고 ]
우린 해외 거주자로서 한국에 갈 때마다
놀라는 주제를 가지고 한참을 얘기했다.
[ 근데.. 정 상은 노후를 여기서 보낼 거야? ]
[ 음, 한국에 갈 생각인데 자꾸만 늦어지네요,
남편 일이 쉽게 정리가 안 되고 해서..]
[ 그러겠다.. 여기 내 단골손님들 보면
이제 나이 들어서 다들 한국 돌아가서
살고 싶어 하는데 일본인 남편 때문에
못 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 아,, 그래요..]
지금껏 40년 넘게 미용실을 하면서
만났던 한국 아내분들을 지켜보면
늙고 병든 남편이 짠해서 이혼도 못하고
못 떠나는 분들이 꽤나 많다면서
일본 아내들은 그런 것 전혀 상관없이
바로 이혼해 버리는데 한국 아내들은
정 때문인지 그걸 못한다고 했다.
[ 일본인 남편이 죽었는데 홀로 남은
시어머니랑 같이 사는 분도 계셔. 자기도
70이 넘었는데 100살이 다 되어 가는
시어머니를 요양원에 못 보낸다고,,]
[ 그래요? 배우자가 죽으면
사후이혼이라는 게 있는데, 그럼
안 돌아줘도 되는데..]
[ 그런 게 있어? ]
사후(死後) 이혼이란 배우자가 사망한 후에
시댁 식구들과의 가족관계를 끝내는
수단으로 흔히 말하는 시가 붙은 사람들과
모든 연을 끊어내는 이혼이다.
인족(姻族-혼인에 의해 맺어진 친척 관계)
종료 신고를 하면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지금껏 해왔던 시댁, 처갓댁 행사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고 시부모님 간병을
떠맡지 않아도 된다.
[ 얼마나 싫으면 그렇게까지 연을 끊고
싶을까.., 원래부터 불만이나 앙금이
쌓여서겠지? ]
[ 그러겠죠,, 세상 어딜 가도 시댁은
불편해하는 관계인 거 같아요..]
원장님은 정말 그 할머니에게 알려줄 테니
어떻게 하면 되는지 자세히 알려달라고 했다.
인족관계 종료신고서(姻族関係終了届)에
필요한 사항을 작성해서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면 모든 친족관계가 끊어진다.
배우자가 떠난 후 언제라도 제출할 수 있으며
시부모님의 동의도 필요치 않고 관계가
끊어졌음을 굳이 알릴 의무도 없다.
사후이혼을 선택한 대부분은 남성보다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해년마다
늘어나는 추세로 그 이유로는 시댁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다가
가장 많고 재혼을 해서도 전남편
아이들 때문에 시댁하고 얽히는 게
싫어서 하는 경우도 있다.
생전에 남편이 바람을 피운 걸
용서할 수 없는데 그런 남편과 같은
무덤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사후이혼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렇게 증가추세를 보이는 배경에는
가족관계의 유대관계가
약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 설명을 다 듣던 원장님이 한국에도
사후이혼 제도가 있으면 모든
며느리가 다 할 것 같다면서 웃었다.
자신은 한국인 남편이어서
한일커플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몰랐는데 오는 손님들 얘기를 들어보면
별의별 사연이 많더라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그 할머니가 더 늙기 전에
편하게 한국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게
이 사후이혼을 권해보겠는데
안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단다.
[ 하여튼,, 한국 사람들은 그놈의
정이 많아서 늙어서도 고생이 많아]
그 놈의 정이라는 표현에 참 많은 사연들이
함축되어 있었다.
내 생각에도 왠지 그 할머니는
지금처럼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