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지만 그들은 한국인이다.
김 상이 보이지 않았다.
예배시작 전에 주보를 나눠주고 자리를
안내하는 김 상이 어디에도 없었다.
홀을 둘러보았는데 딸도 보이지 않았고
남편만 찬양대에 멀뚱멀뚱 앉아 있었다.
이달 중에 예배 끝나고 식사를 하자고
맛집을 서로 공유했었는데
아무 소식 없이 교회를 나오지 않았다.
딸까지 안 온 것 보면 갑자기 한국에
간 게 아닌가 어설픈 추리를 하며
머리를 굴리다 예배를 드렸다.
평소에 교회 사람들과 대화를 했었다면
김 상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물어봤을 텐데 전혀 아는 사람? 이 없어
그냥 답답함 마음만 들었다.
이럴 때면 낯 안가리고 친화력이 강화되는
비법을 터득해 둘 걸 그랬다는
어리석은 후회를 한 곤 한다.
교회 문제로 나와 처음으로 커피를 마시러
갔을 때 내게 국적이 어디냐고 물었던 게
아주 인상적었던 김 상.
[ 정 상, 정 상은 왜 국적 안 바꿨어? ]
[ 특별히,,바꿔야할 이유가 없었어요 ]
[ 나는 국적이 일본이야,,]
[ 아,,그러세요 ]
딸을 위해 일본국적을 취득한 지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어렵게 얻은 딸이 자폐를
앓고 있었고 한국이나 해외를 나갈 때마다
딸과 국적이 다른 김 상은 입국심사를
할 때마다 딸아이와 떨어져 심사를 하는데
아이가 난리를 피워서 그 것 때문에
국적을 바꿨다고 한다.
[ 애가 공항 입국심사하는 데서
뒹굴고 악쓰고 울고 떼쓰고,,그렇지 않아도
사람 말을 못 알아 듣고 고집이 센데.. 정말
힘들더라고,, 특히 한국 갈 때마다..
딸은 일본 국적이니까 외국인 줄에 서고,
나는 한국인이니까 자국민 줄에 섰거든,,
지금은 아주 편해..]
국적을 바꾸는 것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이
없었던 건 아니었단다. 하지만 국적이
바뀐다고 내가 한국사람이 아닌 것도
아니고 앞으로 아이이 살아가는데 있어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서 바꿨기 때문에
여권만 바뀐거라 생각한단다.
[ 바꾸고 나니까 여러모로 편하게 생활하고
있는데 왠지 내 마음은 국적 바꾸기 전과
다르게 더 단단해 진 것 같아...
뭐랄까,, 내 자신이 한국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같은 거라고나 할까..]
비록 국적은 일본으로 바꿨지만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강한
신념 같은 게 생겼다고 한다.
내 주변에 일본으로 국적을 바꾼 사람은
김 상 이외에 두 명이 더 있다.
거래처에서 알 게 된 박 상은 일본인 와이프와
결혼하고 나서 아이가 태어나자 와이프가 슬슬
국적 바꾸기를 원해 어쩔 수 없이 바꿨다.
[ 와이프가 애들 학교 가게 되면
아빠 성을 따르는데 박 씨라면 괜히 이지매
당할 수 있으니 바꿨으면 한다고 그래서
취학 전에 서류 준비해서 바꿨어요 ]
박 상 와이프는 그 외에도 한국에 관한 것들은
되도록이면 가정 내에 지우려고 하는
경향이 많아서 박 상은 서글픈
마음이 든다고 했다.
[ 내가 찌개나 국 먹을 때 내가 숟가락으로
먹으면 그걸 너무 싫어해요, 일본에서는
숟가락 사용 안 한다고,,]
여긴 일본이고, 일본인과 부부로 사니까
일본 문화를 따라주라는 식으로 강요 아닌
강요를 하는데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기다렸던 것처럼 조금씩 조금씩
한국문화 봉인이 시키고 있다고 했다.
하나하나 따지만 싸움만 날 것 같아
웬만해서 아내의 말에 따르고 있지만
식사문화는 한국식을 고수하고 싶어
굳건히 숟가락을 쓰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한 명은 디자이너 이 상이다.
그는 사업을 하고 싶은데 은행에서
외국인이라 대출을 거의 해주지 않아
오직 사업을 키워 나가기 위해 은행과의
거래를 원활히 하고 싶어 국적을
바꾼 케이스이다.
일본 국적을 취득한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은행 직원들 태도가 바뀐 것 빼고
아무런 변화를 못 느낀다고 말했던 이 상.
지금은 꽤나 잘 나가는 디자인 사무실과
갤러리를 소유하고 있는데 그 사무실과
갤러리 이름이 전통문양을 패턴으로
삼아 만든 고유의 한국어로 지어져 있었다.
조금 전, 김 상에게서 부모님 편찮으셔서
한국에 갑자기 다녀왔다며 카톡이 왔다.
한국 공기를 맡고 왔더니 힘이 쏟는다며
삼계탕을 먹는데 내 생각이 나서
선물로 삼계탕 사왔으니
이번주에 만나자고 한다.
불합리한 대우를 받지 않으려 나라를 바꿨다.
아이를 위해 나라를 바꿨다.
그래서 그들의 국적은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일본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서류상의 분류일 뿐
그들이 한국인임은 틀림없다.
해외에 나가 살면 없던 외국심도 생긴다고
한다. 현실과 타협해 국적변경을 선택했지만
그들은 자신이 태어나 자란 나라, 한국을
더 굳게 가슴에 새기고 생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