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네다공항 도착로비에서-2
한국에서 친구나 지인들이 도쿄에 놀러 오면
가볼 만한 곳으로 꼭 추천하는 곳은
아사쿠사(浅草)이다.
일본스러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관광지로도 최적지이고 한 정거장 지나면
우에노 (上野)재래시장과 아키하바라(秋葉原)가
가깝게 있어 도쿄를 둘러보는
하루 관광코스로 나쁘진 않다.
아사쿠사를 둘러보고 스미다가와(隅田川)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오다이바(お台場)로
이동하기 편한 것도 매력 중에 하나이다.
[ 언니, 저기서 그때 유람선 탔었나?]
[ 응 ]
[ 그때 마셨던 커피가 생각난다..]
내가 추천하는 이 코스를 주연이도 예전에
체험을 해서인지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 멍한 눈을 하고 쳐다봤다.
어깨를 부딪히고 사진을 찍느라
뒷걸음질하다 발을 밟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주연이는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골똘히 생각에 잠기기를 반복했다.
[ 평일인데도 사람이 꽤 많네,,]
[ 거의 관광객이지.. 뭐..]
또 침묵이 흘렀고 우린 걷다가 잠시 멈춰
무언가를 응시하기도 하고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 아침부터 언니가 고생하네 ]
[ 별말씀을,, 나는 괜찮은데 니가 여기
일본까지 와서 마음을 정리하느라
고생이 많지..]
[ 마음 정리할 것도 없어,,]
호텔방에서 아무렇지 않게 보통의 관광객처럼
편의점에 가서 간식도 사고 맥주도 사고
혼자 먹다가 내가 준 티켓으로 사우나에서
땀도 빼고 그랬다면서 자신의 머릿속과
마음은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 감정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어, 언니처럼 ]
[ 야,,, 나 감정 있어.. 왜 그래 ]
[ 히히, 이성적이라는 뜻이야,, 언니는
모든 일에 있어서 지지부진하거나
질질 끌지 않고 바로 행동으로 옮기잖아,
감정억제도 잘하고 그게 부러워, 내가 언니 같은
성격이었으면 벌써 저 세상 사람이 됐겠지? ]
[ 내 27살 때 얘기 또 해줘? 자살미수 사건? ]
자살미수 사건이라는 표현이 재밌었는지
주연이가 입을 꾹 다물어 웃음을 참았다.
그리고 내 부탁으로 오래된 맛집을 찾았다는
주연이는 구글지도를 보면서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골목길을 걸었다.
검색하다 연예인도 많이 오고 특히
자기가 좋아하는 키타노 타케시(北野 武)
단골집이라고 해서 이곳으로 정했단다.
주연이가 가장 좋아하는 게 초밥이니 당연히
초밥집을 갈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메뉴를 고른 게 좀 의아했다.
[ 너,, 양식,,, 원래 좋아했었나? ]
[ 아니.. 그냥 어제 검색하다가 언니가
지금껏 해왔던 것들과 정반대의 것들을 선택
해보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서 여기로 했어 ]
[ 잘했어 ]
음식들이 나오고 우린 또 말이 없어졌다.
맛있다는 말도, 맛없다는 말도 없이
그냥 조용히 숙제를 하듯 밥을 먹었다.
[ 언니는 근데 왜 실패했다고 했지? ]
[.................................... ]
다시 물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터라
목구멍으로 넘어가려던 치킨조각이
목에 턱 걸렸다.
주문한 콜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이렇게 말했다.
[ 그냥,, 막상 죽으려고 생각해 봤더니
안 해본 게 너무 많아서 억울하더라,,
그래서 남들 하는 것은 한 번씩 해봐야
여한이 없을 것 같더라고,, 그래서 그만뒀어,
그리고 내가 남을 너무 의식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부터는 나만 보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야지 했어 ]
27살, 내 생일을 넘긴 다음날,
죽음에 필요한 준비물을 챙겨
모 호텔방을 찾았던 그날,
술을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던 그날,
욕조에 물이 넘실넘실 채워져 가는 걸 보며
계속해서 술을 마셨던 그 늦가을 밤,
너무 울었는지 귀가 먹먹하고
갑자기 이명이 들려오던 그날,
몽롱한 상태에서 실천에 옮기려고 주섬주섬
검은 봉투에서 물건? 들을 꺼내고
나란히 침대 위에 줄을 세운 뒤에 술을 한 잔
더 마시려고 소주병을 따고 있을 때
내 방 초인종이 거칠게 울렸고 내 이름을
절규하듯 불러대던 친구의 목소리가
들리던 그날,
주연이는 내 27살, 그날 밤 속에
자꾸만 들어가려 했다.
[ 언니,, 난 하고 싶은 게 없어,,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해.. 모든 것에 대한
희망을 버렸어..]
[ 땅에 떨어진 희망은 다시 주우면 돼,
다들 떨어트리고 잃어버리고 살아,
다시 주어서 내 것으로 만들면 돼, 만약에
찾다가 못 찾으면 다른 걸로 대용하면 되고,
어려울 것도 복잡할 것도 없어, 하루종일
할 일이 없으면 좋아했던 타케시 감독
영화라도 틀어나,, 안 보더라도,,]
[ 나도 오랜만에 타케시 이름 보니까 뭔가
옛 생각도 좀 나고 그러긴 했어 ]
내가 일본에 살면서 생긴 습관들
영화 [ 理想郷]를 봤다. 한국에서는 [더 비스츠 ]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스페인과 프랑스의 합잡영화인 이 영화는 네덜란드 커플이 스페인 시골 산토알라에 정착하면서 일어났던 일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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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이는 아사쿠사에서 기모노 입은 여성들을
촬영하기도 하고, 즐비하게 늘어선 야타이(屋台)를
근접하게 다가가 셔터를 눌렀다.
몸이 기억하는 덕분에 사진 찍기가 취미였던
유학시절 포즈가 그대로 나왔다.
처음으로 하는 얘기
4교시 수업이 끝나고 점심을 먹고 난 후,5.6교시 체육시간에 입을체육복을 미리 갈아입고이어 달리기를 같이 할 친구들과 바통으로 까불고 있을 때 선생님이 오늘은 오후 수업이 없으니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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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네다공항 도착로비에서
주연이가 도착할 시간보다 훨씬일찍 나와서 방황하듯 공항 터미널을끝에서 끝까지 걷고 되돌아오길 반복했다.만나면 무슨 말을 먼저 걸어야 할지 몰라자꾸만 답을 찾고 싶어 마냥 걸었다.[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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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연이가 일본에서 장기 체류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가 무엇이며 다시 공부를 한다면
어느 학교, 어느 과가 좋은지 찾아놨던 것들을
그녀의 가방 속에 넣어줬다.
[ 호텔 가서 읽어 봐,, 그리고 내일 오전에
바로 또 움직일 거니까 웬만한 건 결정해 둬 ]
[ 응,, ]
그녀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분명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갈 수 있도록 아주 조금씩, 천천히
다가가 지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