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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거주자16

우리의 노후를 남편이 결정했다 아침부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며칠 전 성남 모란시장 장날에 남편과 함께 다녀왔는데 그날 하루종일 내 얘길 했었다며 날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되어간다고 허무하다며 푸념을 늘어났다. 우리 친구들 중에 가장 먼저 할머니가 된 이 친구는 올 해 초, 30년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전업주부를 하기 시작했다. 일 손을 놓지 않고 살았던 탓인지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게 어색하기만 하다더니 손녀딸 돌보느라 딸 집에 왔다 갔다 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가버리고 만단다. [ 너랑, 그때 팥죽 먹었잖아, 이번에는 그 옆집에서 먹어봤는데 더 맛있는 거 있지..] [ 칼국수는 안 먹었어? ] [ 남편이 먹었어. 막걸리도 한 잔 하고 ] [ 재밌었겠다 ] [ 우리 남편이 일본 한 번 가보고 싶다고 노래를.. 2023. 6. 1.
정말 한일관계가 좋아질까? 아침부터 8천보이상 걸어서 피곤한 것도 있고 그냥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인터콘티넨탈 호텔 중식당에 앉아 우선 따끈한 차를 한 잔 마셨다. 서로의 기분에 따라, 그날의 흐름에 따라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는 게 이제 일상처럼 편해졌다. 코로나로 인해 생활패턴이 많이 바뀌었고 물 흐르듯 자연스레 그 날의 분위기에 묻어가며 살기로 했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우리 둘 다 요즘은 몸을 꼼지락 거리며 음식 만드는 것도 귀찮아져 되도록이면 편하고 쉽게 살자는 쪽으로 생각을 전환했다. 빈 속에 마시는 쇼코슈(紹興酒)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며 찌릿했다. [ 어땠어? 깨달음, 오늘 본 물건은? ] [ 음,,, 마음에 든 게 없네...] [ 나도 그러네..] 노후는 임대수입으로 좀 편하게 살아볼 얄팍한 계산.. 2022. 3. 21.
이 블로그는 남편 것? 365일 영업을 하는 우체국 본점 덕분에 오늘도 집에서 바로 소포를 보낼 수 있었다. 한국으로 보내는 소포는 무게가 있어 이런 서비스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게 참 고맙다. 깨달음은 아저씨가 엘리베이터를 탈 때까지 지켜보고 현관문을 닫았다. [ 무사히 잘 도착하겠지? ] [ 그러겠지, 전화번호를 몰라 적지 않아서 좀 불안한데 지금까지 별 문제없었으니까 괜찮겠지..] 예정에 없던 소포를 보낸 건 온전히 깨달음 때문이었다. 그저께 아사쿠사(浅草) 현장을 다녀오는 길에 샀다며 블로그 이웃님들께 보냈으면 한다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사왔다. 지난 연말, 이웃님들께 연하장을 보낼 때 다 보내고 없을 것 같아 또 사 왔다며 손거울, 손지갑들을 내밀었다. 내가 괜찮다고 사 오지 말라고 해도 사 온다는 걸 알기에 더 .. 2022. 2. 21.
일본어,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작년 여름, 골절상을 입을 때부터 병원을 다닐 때면 택시를 타는 버릇이 생겼다. 쉬엄쉬엄 운동삼아 걸어도 되는 거리이지만 깨달음과 둘이면 전철보다 택시를 타는 게 교통비는 물론 여러모로 효율적이다. 검사 결과만 듣고 나오면 되는데 깨달음은 동행하길 원했다. 로비에 들어서면 항상 두번씩 재던 혈압을 오늘은 자신의 혈압이 높다는 걸 인정하는지 한 번으로 끝냈다. 대기실 티브이에선 코로나 감염자가 9만명을 넘어갔고 이번주내로 곧 10만으로 늘어날거라 예상되는데 어떤 대책이 현명한지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내 검사 결과는 아주 짧고 심플했다. 3개월에 한 번씩 받는 갑상선 호르몬은 별 문제없었고, 4년 전 자궁근종 수술한 부위에 또 뭔가가 생긴 것 같다고 했던 산부인과에서도 수술을 요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2022. 2. 3.
남편은 코리아타운을 그래서 갔다. 이곳은 내일, 월요일까지 연휴이지만 잠잠했던 코로나 감염자가 폭증하기 시작하면서 우린 또 스테이 홈을 실행 중이다. 오늘 아침, 신정연휴 때 3단 찬합에 만들어 둔 오세치(おせち명절 음식)를 깨달음이 점점 질려했고 먹을 때마다 정말 내년에는 오세치를 만들지 않을 거라고 자기 자신에게 맹세하듯 몇 번이고 되뇌이며 매년, 오세치 만들지 말자고 했던 내 말을 들었어야했다며 너무 후회된다고 했다. [ 나,, 오늘은 정말 다른 거 먹고 싶다. 입맛을 바꿔줄 만한 거 ] [ 뭐 먹고 싶어? ] [ 신라면, 매운맛으로 죽어가는 입맛을 찾아야 될 것 같아 ] 그렇게 질려하는 깨달음을 위해 냉동실에 얼려둔 새우와 전복, 문어로 해물라면과 떡갈비를 구웠다. 라면을 정신없이 먹다가 남은 오세치가 생각났는지 내일까지 먹어치워.. 2022. 1. 10.
우린 한국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을까.. 아침 일찍 필요한 것들이 몇 가지 있어 코스트코에 들렀다. 이른 시간대는 쇼핑객들이 별로 없어 선호하는 우린 크리스마스트리 앞에 멈춰 서 올 해는 큰 통닭구이를 하는게 어떻겠냐는 애길 했다. 피자 한조각을 사려고 잠시 줄을 섰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도 좀 신경이 쓰였고 늦여름이 계속된 탓에 옷이며 침구류를 지금까지 바꾸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 오늘 하기로 해서였다. 각자의 침대 커버부터 카펫까지 모두 가을 옷을 입히고 세탁기를 돌렸다. 1년 365일이 참 빠르다. 계절에 맞춰 침구를 갈아 덮고, 두꺼운 옷들을 꺼내 입었던 텀들이 점점 짧게만 느껴지는 건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매년 새로운 사계절이지만 습관처럼 반복되는 새 옷입히기가 엊그제 같은.. 2021. 9. 27.
병상일기-3 추억을 먹는다 지난달 16일, 다리를 다치고부터 유일하게 외출이 허용되었던 건 집 앞에서 날 기다리는 병원행 택시를 타는 것뿐이었다. 골절상을 입은 지 20일이 지나고 나니 시퍼렇던 멍도 많이 사라지고 통증도 가라앉았지만 복숭아뼈 주변 발목의 부기가 빠지지 않아 여전히 걷는 게 불편하다. 온전히 힘을 줄 수 없어 절뚝거리게 되고 그렇게 무리해서 움직이다 보면 욱신거려 밤이 되면 어김없이 냉찜질을 해야 한다. 어제는 아침에 잠에서 깨어 비몽사몽 기지개를 켜다 왼발의 근육에까지 힘이 들어가 아파서 죽을뻔했다. 인간이 기지개 켤 때마다 어떤 시스템으로 근육들이 작동하는지 새삼 인체의 신비에 경의를 표하는 시간이였다. 대상포진이 생긴 허벅지는 딱지가 점점 단단해져 거무스름한 빛이 진해져 가고 아침이면 수포가 생겼던 부위가 딱.. 2021. 7. 12.
일본판 주민등록증을 받던 날 2020년 8월 28일, 깨달음과 함께 마이넘버 카드를 신청했다. 한국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이 카드는 모든 행정업무가 아주 간단히 처리된다는 장점이 있어 신청하게 됐는데 5개월이 지나서야 교부 통지서가 도착했다. 작년 연말쯤 깨달음이 구약소에 전화를 해 언제쯤 받을 수 있는지 확인했을 때 언제라는 답변을 못 드리겠다고 해서 그냥 잊고 있었는데 통지가 왔다. 한국의 주민등록증과 다른 점은 지문을 등록하지 않기 때문에 신원확인을 할 수 없어 어찌 보면 단순히 말 그대로 개인 식별번호가 주어지는 카드이다. 이 카드엔 전자증명서(인증서)가 탑재되어 있어 전자서명이나 증명, 즉 인감도장 역할을 병행하고 있지만, 운전면허증과 여권으로도 충분히 증명이 되므로 굳이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이 전체의 60%를.. 2021. 2. 6.
남편이 매일 사 오는 것들 결혼을 하고 신혼때부터 깨달음은 퇴근하는 길에 뭔가를 사들고 왔다. 신기해서 왜 사오냐고 물으면 당신이 좋아하는 거니까라고 말할 때도 있고 맛있게 보여서라던가 세일하길래라는 이유를 댔었다 결혼 10년을 향해가는 지금까지도 깨달음은 변함없이 빈 손으로 들어오질 않는다. 주로 과일을 위주로 사가지고 오는 편인데 배추와 무를 사 온 날은 약간 황당해서 뭐 먹고 싶은 게 있었냐고 물어봤더니 깍두기가 더 떨어질 건 같아서 사왔다고 했다. [ 배추는 왜 샀어? ] [ 음,,겉절이하면 맛있잖아,,] [ 겉절이 먹고 싶었어? ] [ 아니, 꼭 그런 건 아닌데 그냥 배추는 나물도 할 수 있고 뭐든지 해 먹을 수 있으니까 샀어 ] 회사를 나와 역 지하 백화점이나 옆 건물 상가에서 사온다는데 그래서인지 식빵을 사올 때도 있.. 2020. 9. 24.
일본살이를 그만 두고 싶은 이유 깨달음이 출근하며 현관문을 닫자마자 난 설거지를 후다닥 해치우고 잽싸게 청소기로 거실만 대충대충 밀어냈다. 그리고 전날 챙겨둔 사진과 여권을 다시한번 확인하고, 물 한병, 책 한권을 밀어넣고 집을 나섰다. 출입국관리국에 가기 위해 서두른다고 서둘렀건만 도착했을 때는 10시 20분이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너무 낯설어서 잠시 어리둥절했는데 바리게이트가 쳐져있는 곳으로 졸졸 따라갔더니 건물 입구에서 번호표를 한장씩 나눠주었다. 코로나로 건물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수를 15분 간격으로 들여보낸다고 한다. 나는 1시에 들어갈 수 있다는 번호표를 받고 2시간 반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잠시 멍했다. 집에 다시 다녀올까,,아니 커피숍에 가 있을까,, 여러 생각하며 일단 번호표를 부여잡고 .. 2020. 8. 3.
해외생활이 길어질수록 가장 그리운 것 메일을 읽은 후배와 통화를 했다.[ 언니,,그냥 내일 당장 오면 안돼요? 지금 그렇게 힘든데 왜 6월부터야? ][ 5월 28일까지 스케쥴 있어서 못 움직여..][ 가슴은 도대체 원인을 모른대요? ][ 응,,원인을 확실히 모르겠대..그냥 호르몬 불균형으로 혈관이 과다하게증가되서 생기는 현상일 수도 있다고 그랬어어째든, 악성이나 그런 건 아니래서 다행이야 ][ 아이고,,힘들어서 어떡해..계속 일이 생기네..근데 먹는 것까지 힘드니... ][ 그니까,,그게 제일 힘든 것 같애.내가 입이 짧아 많이 먹는 사람이 아닌데..한 끼 먹으려면 내 손으로 모두 준비를 해야하니.오죽하면 입원까지 생각을 했겠냐,,근데,,입원을 해도 한국음식이 나오는 것도아니고 가만히 침대에 누워만 있을 것인데,,내가 필요로 한 건 그런 휴.. 2018. 5. 11.
해외생활에서 향수병을 이기는 방법 한달 전 오스트리아에 사시는 지니님이소포를 보내주셨다.뚜껑을 열어보기도 전에 상큼한 민트 냄새가풍겼고 열어보려고 테이프 끝을 찾는데세관에서 열어봤다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왜 열어 봤을까? ]내 말에 상자를 들어 끙끙 냄새를 맡아본 깨달음이한번도 맡아보지 못한 고급 민트향이 나서궁금해서 열어봤을 거라고 했다. 참,,너무 많이도 보내셨다.집에서 직접 말린 허브와 꽃차까지..무엇보다 놀랜 건, 내용물에 상세한 설명이예쁘게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이 분 당신보다 더 세밀하신 분이시네~]깨달음이 옆에서 연속해서 감탄을 했다.[ 역시 한국사람들은 대단해,이렇게 착실하고 꼼꼼하신 분이 있네..진짜 대단하신 분이다,유럽의 작은 슈퍼를 옮겨 온 것 같애..뭘 이렇게 많이 보내신거야? ] 하나하나 꺼내 내가 설.. 2017. 3. 16.
드디어, 저희 부부의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간단히 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부재중 우편함에 우리집 소포가 들어 있었다.난 먼저 들어오고 깨달음이 현관에서부터 문을 대자로 열어둔 채로 내 이름을 숨차게 불렀다.[ 아이고 무거워~책인가 봐,,,출판사에서 보낸 거야? ][ 응,,생각보다 빨리 왔네.....][ 블로그 책이지? ][ 응,,]자리에 앉자마자 박스를 풀었다. 박스를 열자, 곱게 인쇄된 책과 함께생막걸리가 세병이나 들어 있었다.출판사와의 건배주를 함께 나누지 못함이아쉽다는 실장님이 넣어 보내신크리스마스 카드였다. 그리고 드디어 책을 한 권 손에 들자마자깨달음이 책속에 얼굴을 파묻고 [ 오메,,오메,,,]하며 눈물을 터트렸다.[ ........................ ][ 왜 당신이 울어...내가 울어야 되는데..][.. 2016. 12. 25.
일본의 어버이날, 우리가 해드린 것 황금연휴 마지막 날, 우린 시댁을 가기로 결정했다. 아버님 건강이 많이 좋아지셔서 퇴원을 해도 좋다는 주치의의 설명이 있었고, 어버이날도 겸해서 시댁행을 택했다. 아버님이 계시는 요양병원에 도착했을 땐 점심시간이였고 어르신들이 다들 모여서 식사를 하고 계셨다. 우린 식사시간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병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버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우리를 보자, 아이처럼 좋아하시며 보조보행기를 밀고 우리쪽으로 걸어오셨다. 물리치료 횟수를 늘린 덕분에 보행도 많이 좋아지고 혈당치도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직접 뵈니 정말 놀랄만큼 정상으로 돌아오신 듯했다. [ 어~아버지, 인자 잘 걷네~~ 허리도 바로 펴지고~완전 다 나았네...] 깨달음 목소리가 하이톤이 되면서 아버님을 가까운 소파에 앉.. 2016. 5. 7.
별거 아닌 걸로 우린 행복해 한다 장마 끝자락에 서 있는 이곳은 어제도 새벽까지 비가 내렸다. 추워서 잠시 잠이 깬 깨달음이 긴 팔 잠옷으로 바꿔 입을 정도로 기온이 많이 떨어졌다. 오늘도 아침부터 비가 왔다가 잠시 멈추다가,,, 꾸무럭거리는 날씨이긴 했지만 모처럼 주말에 쉬는 깨달음이 날 도와서 가방에 박스들을 넣어 주었다. 매주 3,4개의 박스를 들고 주말 영업하는 우체국까지 나 혼자 갔었는데 오늘은 자기가 하겠다고 자청을 했다. 밖에 비가 오는지 몇 번 확인을 하고 오후 일기예보도 체크를 한다음 깨달음은 케리어 가방을 끌고 난 쇼핑백에 박스를 넣어 집을 나섰다. 우체국은 의외로 붐볐다. 순번을 기다리면서 깨달음이 영문으로 적힌 이름을 읽으면서 한국이름이 아니라고 해외생활이 오래되신 것 같다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두개는 미국.. 2015. 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