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5

일본인 남편이 생각하는 부모의 역할 갑자기 후배가 일본을 찾아 왔다.아이와 남편은 두고 혼자서 밤비행기를 타고왔다가 예전에 아이가 다녔던 학교도 가보고교회, 그리고 동네 커피숍에서 커피도 마시고한가한 시간을 보내다가 막상 다시 한국으로돌아가려고 했더니 나를 만나야겠다는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 와인 한 잔 더 할래? ][ 응, 오늘은 취하지도 않네 ]생각할 것도 많고, 그냥 답답한 마음에서훌쩍 떠나왔는데도 별다른 답이 없다며와인잔만 만지작 거린다. 고등학교 1학년 여고생을 준 후배는 딸의 장래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아이를 생각해서 이민을 가는 게 좋을지,유학을 보내는 게 건 나은지...아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고 섣불리 진로를 꿈을 쫒으라는 말도 못하고,무작정 아이에게 맡기는 것도 그렇고머릿속이 많이 복잡하다고 했다.결국엔 아이가 .. 2019. 5. 1.
한국에서 남편의 꿈에 나타난 사람 엄마집에 도착해서 바로 깨달음은 선물꾸러미를 풀어 엄마에게 며칠 늦은 생신 선물을 전해드렸다.[ 오메,이 비싼 놈을,,사지 마라 그래도 사네..나같은 늙은이가 좋은 놈 해봐야 소용없는디 ]좀 밝은 색을 샀는데 어머니 피부에 맞을지 모르겠다며 깨달음이 한 번 둘러 보시라고권했지만 엄마는 좋은 옷 입고 정식으로해보겠다며 그것보다 어서 식사를 하러 가자며 해물찜 식당으로 서둘러 갔다. 집으로 돌아온 깨달음은 쇼파에 다리를 한쪽을걸치고 까딱까딱 하면서 한국말뿐인 드라마를 마치 줄거리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웃으면서 늦은 시간까지 TV를 봤다. 다음날은 모든 가족들이 오는 날이여서아침부터 엄마는 분주히 움직였다.[ 엄마, 뭐 하지 말라고 전화까지 드렸는데뭘 이렇게 많이 준비하셨어? ][ 어제 저녁은 식당에서 먹었응께.. 2019. 2. 28.
못다 부른 아빠 이야기 아빠가 치매 진단을 받은 건 16년전이었다. 내가 일본 유학을 오기 전 마지막으로 모시고 갔던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았다. 유학생활을 하면서 해마다 한 번씩은 한국에 가려고 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아빠가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건 진단을 받고 8년 후였다. 한국에 갈 때마다 병실에 누워 계시는 아빠 얼굴에 내 얼굴을 갖다 댔는데 어느 날 부터인가 아빠가 싫어하셨다. 그래도 난 사랑에 굶주린 아이처럼 아빠의 볼을 만지고 아빠의 이마와 귓가에 뽀뽀를 해드렸다.“엄마, 아빠 냄새 그대로다.”“그대로냐? 오늘 샤워도 안 시켰는디 냄새 안 나냐?”“응, 지금 아빠 냄새가 너무 좋아.”어릴 적에 맡았던 아빠 냄새가 병상에 계셔도 그대로인 게 신기할 정도였다. 우리 아빤 술, 담배도 못하셔서 친구들과 어울려 .. 2016. 11. 1.
조카의 성장을 안타까워 하는 남편 지난 주가 조카 태현이 생일이였단다. 나도 깜빡 잊고 있었다. 옆에 있던 깨달음에게 말했더니 내 전화기에 입을 갖다 대고 특유의 발음으로 생일축하를 해줬다. [ 태현이~ 샌 추카 하미다~~] 뭐가 갖고 싶냐고 물었더니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여서 장남감도 필요없단다. 고학년이니 뭐가 좋을까 둘이 고민을 좀 하다가 서점으로 향했다. 태현이는 어릴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그림도 썩 잘 그린다. 크고 작은 대회에서 상도 많이 받아 오고 있으며 태현이 꿈은 카 디자이너이다. (모 신문사 주최 미술대회에서 최우수상 받은 태현 작품) 그래서 뭔가 그림 그리기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찾아 둘이서 신중하게 책을 구입하고 다음은 화방에 들렀다. 집에 돌아와 나는 소포박스를 준비 중인데 깨달음은 책 한 권, 한 권을 .. 2015. 3. 30.
당신의 딸이였기에 전 행복했습니다. 밖에서 신나게 뛰어 놀다 집으로 들어 가면 꽁꽁 언 내 손을 두 손으로 꼬옥 감싸 따뜻한 입김을 불어 주시던 우리 아빠. 추운 겨울날 등교하는 자식들을 위해 연탄불 부뚜막에 5명의 신발을 가지런히 올려 따끈하게 데워 주셨던 우리 아빠. 모처럼 끓인 동태국에 몸통은 자식들 그릇에 덜어 주고 당신은 대가리만 빨아 드셨던 우리 아빠. 지각하는 날 위해 자전거로 학교까지 바려다 주시고 내가 교실에 들어 갈 때까지 계속 지켜 봐 주시던 우리 아빠. 소풍가는 날이면 집 근처 구멍가게에서 외상으로 과자랑 알사탕을 사와 엄마에게 욕을 한바가지 얻어 들으면서도 방긋 웃어 주셨던 우리 아빠. 중,고등학교 때 납부금을 못내 칠판에 내 이름이 적힐 때마다 능력없는 부모 만나 이런 쪽팔림을 당한다고 아빠를 얼마나 원망했던가,,.. 2014.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