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집밥14

병상일기-3 추억을 먹는다 지난달 16일, 다리를 다치고부터 유일하게 외출이 허용되었던 건 집 앞에서 날 기다리는 병원행 택시를 타는 것뿐이었다. 골절상을 입은 지 20일이 지나고 나니 시퍼렇던 멍도 많이 사라지고 통증도 가라앉았지만 복숭아뼈 주변 발목의 부기가 빠지지 않아 여전히 걷는 게 불편하다. 온전히 힘을 줄 수 없어 절뚝거리게 되고 그렇게 무리해서 움직이다 보면 욱신거려 밤이 되면 어김없이 냉찜질을 해야 한다. 어제는 아침에 잠에서 깨어 비몽사몽 기지개를 켜다 왼발의 근육에까지 힘이 들어가 아파서 죽을뻔했다. 인간이 기지개 켤 때마다 어떤 시스템으로 근육들이 작동하는지 새삼 인체의 신비에 경의를 표하는 시간이였다. 대상포진이 생긴 허벅지는 딱지가 점점 단단해져 거무스름한 빛이 진해져 가고 아침이면 수포가 생겼던 부위가 딱.. 2021. 7. 12.
그래서 집밥이 좋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가게 안은손님들이 많았다. 35도를 넘는 더위에 온 몸이 녹아버릴 것 같은 살인더위를 뚫고 찾아간 곳은 깨달음의 퇴원 축하를 위한, 그리고 먹고 싶어했던 감자탕을 먹기 위해서다.[ 여기가 당신이 오고 싶어 했던 곳이야? ][ 응, 여기가 재일교포 여자모델(안 미카)이 절찬을 했던 곳이야, 아주 옛날에 20년전엔가 한번 왔던 기억이 있는데 그 뒤로 잊고 있었거든. 근데 지난주에 테레비에서그 모델이 나와서 자기 인생에서 제일 맛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하는데다시 와 보고 싶었어 ] 난 솔직히 가게 입구에서부터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냥 깨달음 원하는대로 해주기 위해입을 다물었다. [ 깨달음, 퇴원을 축하해 ]먼저 막걸리로 건배를 하고 골뱅이무침과 감자탕을 주문했다.[ 메뉴가 진짜 많아, .. 2019. 8. 4.
엄마의 손맛은 다를 수밖에 없다 깨달음을 꼭 데리고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쿄의 코리아타운이라 불리우는 신오쿠보를 갔다. 어디를 갈 건지 간략하게 설명을 해서인지 깨달음도 잔뜩 기대에 차 있었다.이곳은 여전히 통행이 불편할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했고 치즈핫도그의 인기는 변함없었다. 새로 생긴 타이완 음료 타피오카 밀크티 가게와치즈퐁듀처럼 치즈를 가운데 올려놓고 각종 치킨을 빙 둘러 내놓는 UFO 치킨가게에도엄청난 줄이 서 있었다. [ 진짜, 사람 많다..치즈 핫도그가 아직까지도인기가 있네. ]깨달음은 중얼거리면서 한마디했다.인파속을 빠져나와 한국식품점에서 매운풋고추를사러 들어갔는데 이곳도 사람들로 북적북적,,[ 하라주쿠처럼 어린 학생들이 진짜 많다.완전 신오쿠보 이미지가 바뀌었어..이젠 아줌마들이 안 보이네...]그렇게 또 누군가에게 말하.. 2019. 6. 11.
일본에도 엄마의 집밥 같은 곳이 있다. 저녁약속이 있었던 깨달음은 저녁 9시가넘어서 집에 들어왔다.난 내 방에서 일을 하다가 들어왔냐는 인사를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있는데똑똑 노크소리가 나고 문을 살짝 열어뭔가를 통로 바닥에 놓고 갔다.[ 이거 뭐야? ][ 응, 받았어, 아마 냉장고에 넣어야 할 거야 ]그 말을 남기고 깨달음은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갔고 난 쇼핑백을 열었다. 프랑스과자와 비닐에 쌓인 정체불명의 음식..반찬 냄새가 풍기는 걸 봐서는 음식이 분명한데 누가에게서 받아올 걸까..하나씩 조심스레 풀어봤더니 생선조림, 죽순나물, 족발이 들어있었고 생선조림에는 작은 비닐에 국물까지 따로담겨져 있다. 다시 두껑을 닫고 샤워를 마친 깨달음에 물었다.[ 응, 그 신주쿠 요리집 마마가 줬어, 당신이 족발 좋아한다고 그랬던 걸 아직도기억하는 것.. 2019. 4. 11.
남편이 행복하다는 우리집 밥상 결혼을 하고 지금까지 깨달음은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 아침을 꼭 챙겨 먹는다.주말에도 외출을 하지 않을 때면 집에서평일처럼 세끼를 먹는게 당연하다고생각하는 삼식이파에 속한다.삼식이라는 단어의 뜻을 처음 알았을 때는참 쓸씁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집밥을 너무 좋아하는 깨달음에게아침, 낮, 저녁까지 세끼를 챙기고 있을 때면 그 삼식이가 바로 우리집에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아침 5시면 기상을 하는 깨달음은 거실에서 찬란하게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매일 한장씩 사진을 찍어 내게 보여준다.그리고 혼자서 도면을 치기도 하고 신문을읽다가 7시가 되면 샤워를 한다.그리고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시간에 맞춰난 아침상을 준비한다. 깨달음의 아침 식단은 대충 이렇다.멸치조림이나 젓갈류, 우메보시는 거의 매일식단에 오.. 2019. 1. 24.
일본에 어린이 식당이 있는 이유 일본에는 어린이 식당(こども 食堂)이 있다. 2012년부터 시작된 이 식당은 빈곤가정이나 모자가정, 가정 해체, 저소득층, 이혼등으로 인해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아동이 늘어나면서 빈곤아동대책법이 제정되고 결식아동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다. 그 시작은 2010년, 채소가게를 운영하던 곤도씨(近藤さん)가 바나나로 끼니를 때우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남은 부식을 이용해서 식사를 준비해 매주 목요일 하루만 운영을 시작했다. 메뉴는 그날 남은 재료에 따라 다르지만 영양 바렌스를 생각애 음식을 만들었고 가게 뒤쪽에서는 식사를 마친 아이들이모여서 공부도 하고 카드놀이를 하며 지낸다. 편모가정, 건강이 안 좋은 부모를 둔 아이들, 일 때문에 귀가가 늦은 부모밑의 아이들.... 여러 이유로 .. 2018. 12. 18.
일본 아가씨가 반해버린 의외의 한국 식당 내 주위의 일본인 지인들은 모두가 한번쯤 한국을 다녀온 경험이 있고 그 중에는 1년에 정기적으로 쇼핑이나 먹거리투어를 하는 친구도 꽤 있다. 굳이 내게 관광, 먹거리등을 묻지 않아도 그들은 한국에 대해 아주 상세히 알고 있으며 요즘 유행의 흐름이 어떤지 나보다 더 잘 파악하고 있을 정도이다. 오늘 내가 만난 그녀는 뒤늦게 한국의 케이팝 매력에 빠져 한국에 관심을 보이는 30대 초반의 아가씨였다.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 외에는 방탄소년단 노래를 들으며 일어나고 잠이 들며 주말은 밤새 라이브영상을 보는데 너무 좋아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고 한다. 이전부터 한국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드디어 이번 9월 중순에 한국에 가는데 막상 혼자 가려고 하니 궁금한 것들도.. 2018. 8. 24.
남편이 생각하는 소중한 한끼 제주도를 다녀온 이후, 우리는 외식이 잦아졌다그곳에서 삼시세끼 거의 외식을 했는데 무조건 끼니 때우기 식이 아닌소중한 한끼를 먹기 위해 몸과 마음, 정신건강까지 채워줄 음식을 찾아 먹었다.되도록이면 유기농으로,남들이 말하는 맛집보다는 우리 몸이원하고 입이 즐거워하는 음식에 분위기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었다. 그렇게 조금 다른 생활패턴을 경험한 우리는좀 더 둘만의 시간을 즐기자는 생각을 같이했고 그래서 외식이 늘어났다.연일 찌는 듯한 더위에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 기력도 없고 둘 뿐이다보니 가볍게 식사하면서 와인 한잔씩 하는게 훨씬 경제적이고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작년까지만 해도 삼복더위에 꼭 집밥을 하려고 고집했는데 좀 지혜롭게 살기로 했다.오늘은 집 근처 레스토.. 2018. 7. 21.
뒤늦은 남편의 생일날, 그리고 눈물 한국에서 돌아오자마자, 깨달음은 나고야와 홋카이도 출장이 연달아 있었다.나는 나대로 바빠서 둘이 진지한 얘길나눌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뭐 먹고 싶어? ][ 게...홋카이도에서 못 먹고 왔거든 ][ 알았어. 예약해 둘게, 늦지 말고 와 ]가게 앞에서 카톡을 했더니 오는 중이라고 했다.예약석이 무대 바로 앞인 덕분에고또(일본의 가야금) 연주를 눈 앞에서보고 들을 수 있어 좋았다. [ 라이브가 있으니까 더 좋은데][ 응,오늘 당신 생일축하하러 온 줄 아시나 봐]스탭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고 케잌에 촛불을 켰다.[ 생일 축하해~많이 늦였지만,~~]어색한 미소를 한채로 얼른 촛불을 끄고 메시지를 읽는다.[ 오~~애정이 듬뿍 담겼네..고마워~~]이때 우리 테이블 담당 스탭이 기념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고 우리 서로.. 2018. 3. 12.
남편을 춤추게 만든 한국식 집밥 [ 모두 좋아지셨네요. 빈혈수치도 정상치에 가깝고,,이젠 예전처럼 활동하셔도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철분제는 당분간 드셔야 해요] [ 네, 감사합니다] 담당의가 다음달 예약표를 작성하는동안 깨달음과 마주보며 무언의 미소를 서로에게 보냈다. 병원을 나와 그길로 바로 초밥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자고 했더니 축하의미로 초밥을 먹어야 한다면서 마냥 들 떠 있었다. 초밥이 나오자 내가 좋아하는 성게말이를 내 접시에 올려주는 깨달음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 당신, 고생했어..이제까지..고마워..] [ 아니야,,당신이 빨리 낫는 게 중요했지... 별 문제없이 회복이 됐다고 하니까 참 다행이야,,] [ 응,이제부터 아프지 않고, 당신에게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 줄게..한달가량 외식만 하느라 당신이 애를 .. 2017. 9. 18.
국제커플의 식탁에서 보이는 부부관계 아침 8시면 난 깨달음 아침상을 차린다.서로가 특별한 스케쥴이 없는 한매일 아침 이렇게 아침을 준비한다.접시에 반찬들을 놓고 그릴에 생선을 구우며국을 데우면서 문뜩 이곳이 한국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북엇국과 조기 구어지는 냄새가잠시 이곳이 외국이란 걸 잊게 한다.우리집 일주일 식단은 대충 이렇다. 미역줄기볶음, 멸치볶음, 콩조림, 창란젓, 무우말랭이, 샐러드, 조기구이, 동치미 (조식) 고등어구이, 깻잎, 우메보시, 갓김치, 콩조림, 생선초절임. 김샐러드, 묵은김치 조림 (조식) 계란후라이, 김치, 멸치볶음, 마늘 장아찌, 우메보시취나물, 토란대나물, 샐러드, 연어구이, 미역국 치즈버섯, 미역초무침, 두부조림, 낫또,야끼소바, 꽃게탕 (석식) 새우볶음, 샐러드, 무 갈은 것, 사과 샐러드,.. 2017. 2. 10.
한국식 집밥을 고집했던 남편만의 이유. 아침에 일어나면 난 식사준비를 바로 한다. 평일은 물론 주말, 공휴일도 내 아침 준비는 변함이 없다. 내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깨달음은 샤워를 하고 샤워가 끝나면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맨 다음 의자에 앉는다. 난 그 시간에 맞춰 밥과 국을 푸고, 깨달음은 젓가락을 들고 [잘 먹겠습니다]를 얘기하고 먹기 시작한다. 샐러드, 멸치볶음, 갓김치, 다시마조림, 북어포 조림, 동치미, 계란후라이, 미역국. 샐러드, 명란구이, 동치미, 우메보시, 멸치조림, 미니햄버거, 바지락국. 샐러드, 마늘장아찌, 청경채나물, 생선초조림, 멸치볶음, 계란국, 생선어묵. 밥이 먹기 싫다고 하는 날은 포도, 바나나, 사과, 시금치나물, 감자샐러드, 미니 햄버거, 두부국 샐러드, 우메보시,배추나물, 생선초조림, 겉절이 , 연.. 2014. 12. 29.
한국을 떠올리게하는 일본 이자카야 수업이 끝나고 깨달음과 합류한 곳은 내가 치료를 시작하기 전날까지 다녔던 이자카야였다. 오후6시를 막 지난 시간인데도 빈 좌석은 예약해 둔 우리 좌석뿐이였다. [ 이랏샤이~~] 분주하게 움직이시던 마마가 날 잠깐 쳐다보시더니 뭔가 얘기를 하시려다가 안쪽 테이블에서 마마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얼른 그쪽으로 가신다. 깨달음은 생맥주를 난 쥬스를, 그리고 몇가지 간단한 음식을 주문하고 건배를 하자 깨달음이 자기 맥주잔을 내밀며 한 모금 해보란다. 치료가 끝나면 예전처럼 술술 술이 잘 넘어갈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러질 못했다. 내가 고개를 저었더니 바로 잔을 거둔다. 카운터 안에서는 마마가 분주히 음식을 만들고, 나르고 계셨고 여기저기서 [ 오카아상~] [ 오카아상~]을 부른다. 이곳에 오시는 손님들은 마.. 2014. 10. 10.
역시 한국식 집밥이 최고이다. 요즘 바쁘다는 이유로 외식이 잦았다. 집에와 만들면 금방인데 밖에서 먹는 버릇을 하다보니 주방에 서서 뚝딱거리는 게 귀찮아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역시 집맛이 최고라는 걸 우리 서로 잘 알고 있기에 지난주부터 저녁준비를 다시 시작했다. 깨달음이 좋아해서도 그렇지만 주로 메인은 한식위주다. 청량고추 빼놓고는 왠만한 매운 것도 아주 잘 먹어주는 깨달음 덕분에 메뉴선택에 고민은 별로 하지 않는다. 어젯밤엔 심플한 찜닭을 했더니 당면을 더 넣어 달라고 그래서 추가해서 넣어줬다. 깨달음은 모든 면을 너무 사랑한다. 아니 밀가루 음식을 진짜 좋아한다. 라면, 소면, 소바, 우동, 쫄면, 비빔면, 국수, 짜장면, 냉면, 수제비 등등,,, 당면을 후루룩쩝쩝 맛나게 먹더니 요즘은 날이 더워졌으니, 내일은 삼계탕이나 .. 2014. 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