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년이 넘으면 이렇게 변한다
3일 연속 여긴 비가 내린다.
만개한 벚꽃을 보기 위해 빗속에서도사람들은
우산을 받쳐 들고 벚꽃 명소에 모여들었다.
우리 부부는 이번달까지 마감해야 할 일들이
많아 각자 자기 방에 꼼짝 않고 박혀서
일을 하다 해가 져서야 피로도 풀 겸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왔다.
쌀쌀한 날씨에는 따끈한 소주
오유와리(お湯割り)가 제격이다.
눈앞에서 바로바로 구워주는 제철 야채들은
달달한 육즙이 터져나와 술이 물처럼 들어간다.
깨달음은 연이은 프레젠테이션이 있어 직원과
연습을 하는데 자기가 지적한 부분을
수정하지 않고 고집을 피워서
머리 아프다고 했다.
[ 당신이 프레젠 하는 법을 알려주면 좋은데 ]
[ 나는 내 일에만 잘해.. 건축은 몰라 ]
[ 아니, 프레젠 방식을 모른 것 같애..
아무리 설계디자인이 좋아도 오너에게
설명을 잘 못하면 전달이 안 되거든..]
[ 알아, 무슨 말인지..]
대학시절, 그리고 대학원 때도 프레젠테이션
수업은 늘 따라다녔다.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설명하고 어필해야 하는지 속칭 말발?로
작품에 숨을 불어넣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프레젠 모습을 녹화해서 얼굴의 각도며
버릇들, 제스처까지 세밀한 지도를 받았다.
일본에서 지도교수는 프레젠은
작품이 가지고 있는 미흡한 곳을
말로 메꿔나가야 하는 능력이라고 하셨다.
그 덕분에 난 프레젠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서 깨달음이 내게 부탁을 했다.
그렇게 일 얘길 하다가 갑자기 깨달음이
엊그제 3월 25일, 제대로 축하 못했다며
다시 건배하자고 잔을 들었다.
[ 아, 우리 혼인신고 한 날,,]
[ 수고했어. 12년간 ]
[ 당신도 수고했어, 나랑 사느라...]
[ 근데.. 우리 요 몇 년 전부터는 전혀
싸우지 않은 거 같지? ]
[ 싸울 일이 없지. 아니. 싸울 일을 안 만들었지
서로가,, 너무 잘 아니까]
[ 맞아,,]
코로나가 시작되던 3년 전부터
같이 있는 시간이 상당히 많이 늘어났지만
우린 싸우지 않았다.
자잘한 말다툼은 있었지만 싸움으로까진 가지
않고 서로가 그냥 덮고 삼키고 넘어갔다.
싸움의 원인이 매번 같았기에
싸울 이유가 없어졌던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가 싸움거리를 만들지
않고 온화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잠자기 10분 전에 서로에게 감사함을
3개씩 직접 전하는 룰을 만든 게 되면서
변화가 왔던 것 같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감사하다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상대의 행동 하나하나에
담긴 고마움을 찾으려 하고 한 번씩 더
깊게 생각할 기회가 되었다.
어느 날 깨달음이 빨래를 예쁘게
개어줘서 고마워라고 했을 때
그게 뭐가 고마워할 일인가 싶었는데
그냥 지나쳐갈 작은 것들부터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걸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당연시 생각했던 것들,
늘상 하는 일들에도 빠지지 않고
감사함을 표하고 있다.
깨달음은 내가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집에 돌아와 줘서 고맙다고 할 때가
기분이 좋단다.
[ 역시 결혼 10년이 지나면 다들 그러려니
하고 살겠지? ]
[ 불만이 없어서 싸움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살아보면 고쳐지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어찌보면 포기하고 사는 거지 ]
[ 맞아, 그럼, 내가 고쳤으면 하는 게
아직도 있어? ]
[ 있지... 근데 그냥 이젠 그러려니 해 ]
깨달음 뭐냐고 말해보라며 다그쳤다.
[ 깨달음,,지금은 불만도 아니고 그냥 당신의
습관이라 생각하니까 아무렇지도 않아 ]
[ 그니까 뭐야, 내가 고칠게 ]
[ 아니야, 지금은 진짜 괜찮아, 반대로
당신은 나한테 고쳤으면 하는 거 있어? ]
[ 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술을 한 모금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 당신은 가끔 눈으로 말할 때가 있어..
난 그게 무서워... 그냥 말을 하면 좋은데
눈으로 말을 하니까..]
[ 알았어.. 이젠 눈이 아닌 입으로 할게 ]
우린 신혼 때 왜 그리도 다툼이 많았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위태로웠는데
10년을 넘게 같이 살아오면서 서로가
양보하고 내려놓는 법을 터득한 게 아니냐며
인내하고 잘 참아준 것에 감사하는
의미로 다시 건배를 했다.
내가 그려놓은 남편, 내가 생각하는 아내가
만들어질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서로를
힘들게 만들었던 지난 시간들,,
그런 시간들 속에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반복되는 학습을 통해 지금에
우리부부가 만들어졌다.
오늘은 지금껏 잘 이겨내 왔으니
참 잘했다는 격려와 위로를 해주자며
서로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깨달음,, 수고했어. 그리고 고마워.
잘 버텨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