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옛 것을 찾는 이유
거실에 놓여있는 야쿠르트와 편지..
웬 편지일까 했다가 생각해 봤더니
뭔지 알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늘 음력 생일로 했으니
음력으로 하자고 해년마다 말하지만
깨달음에게 한 번 기억된 9월 23일은
음력, 양력 없이 그냥 아내의 생일날이다.
그런데 10월이 시작되고 오늘에서야
편지를 쓴 걸 보니
깜빡했던 모양이다.
편지에는 축하가 늦어서 미안하다는
사과와 요즘 자기 마음이 어떤지
상당히 센치멘탈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인만큼 깨달음도
꽤나 감성적인 표현들로 축하를 해주었다.
[ 깨달음,, 근데 야쿠르트는 뭐야? ]
[ 아침에 편지봉투 사러 갔다가
그냥 샀어.. 당신이 좋아하니까 ]
[ 문득 내 생일이 생각났어? ]
[ 응,,,10월 스케줄 정리하다가
당신 생일 지나친 게 생각났어. 미안 ]
[ 괜찮아,, 난 음력으로도 충분해 ]
음력은 음력이고 자기가 아는 양력을
못 치렀으니 맛있는 거 먹자길래
회사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날이 덥다가 춥다가 갑자기
비가 왔다가 찬바람이 불었다가 다시
한여름처럼 뜨거운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옷을 뭘 입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그냥 원피스에 가디건을 걸치고 나갔다.
깨달음 회사와 가까워 자주 애용하는
그릴 레스토랑에서
우린 낮부터 와인을 마셨다.
[ 생일 선물 생각해 뒀어? ]
[ 아니..]
딱히 갖고 싶은 게 없었다.
[ 그럼 한국 가서 살 거야? ]
[ 아니,, 정말 지금은 필요한 게 없어 ]
[ 그래도 생각해 놔,,]
그나저나 이번에 한국에 가면 뭘 할 건지
뭘 먹을 건지 계획해 뒀냐고 물었더니
이미 티켓팅할 때부터 머릿속에
정리를 해뒀단다.
[ 가 볼 곳은 은평 한옥마을이고 먹을 것은
아침부터 꼬막, 저녁에도 꼬막,
그리고 미나리 해물파전,,,
아,, 우에다 (上田)가 한국 간다
그랬는데 내가 얘기했어? ]
[ 아니 ]
우에다 상은 건축학과 교수로 그쪽에선
꽤나 명성을 얻은 깨달음 동창이다.
지금도 학교에 재직 중인데 졸업생들
10명을 데리고 한국의 건축문화
세미나를 떠난다면서 깨달음에게도
같이 가자고 했단다.
안동과 경주에 있는 옛 건축물들을 보고
마지막날은 서울에서 있다가
돌아오는 4박 5일간의 여정이고
통역은 서울의 모 대학 건축학 교수가
함께 하기로 했단다.
[ 같이 간다고 하지 왜 안 간다고 그랬어? ]
[ 나는 20년, 아니 30년 전에 다니면서
다 공부하고 왔잖아, 더 공부할 게 없어,
우에다가 원래부터 건축학과 애들 데리고
한국 건축물 견학시키고
가르치는 걸 아주 잘했어 ]
[ 아,, 그랬어..]
이제 나이도 있으니 쉬엄쉬엄 하는 게
어떠냐고 우에다 상에게 조언을 했는데
학생들에게 건축의 기본을 보여줘야지
건축가로서 첫걸음을 뗄 수 있는 거라고
한국에 가면 보여주고 싶은 옛 건축물
외에도 계속해서 생겨나는 독특하고
센스 있는 현대 건물들이 수도 없이 많아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고 했단다.
깨달음은 자기가 처음으로 안동 민속마을을
갔을 때 기억이 지금도 선명히 각인되어
있다며 학생들이 가서 직접 눈으로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올 거란다.
[ 옛 것을 그대로 보존하는 게 중요해,
그게 문화 자산이 되고, 후손들에게도
큰 자랑이고 유산이 되니까,, 내가 인사동을
정말 좋아했는데 바뀐 뒤로 안 가잖아 ]
당신이 가고 싶다는 은평 한옥 마을은
옛 것이 아닌 새로 만들어진 한옥마을
이라고 했더니 알고 있다면서 어떻게
한옥을 변형시켰는지, 디자인적인
면을 볼 거란다. 그 외에 가고 싶은 곳도
생각해 두라고 하니까 이번에는
오래된 노포들을 찾아 다니면서
음식 맛도 보고 그 집, 그 가게를
구경해 보고 싶다고 했다.
[ 좋아, 나도 노포 좋아해..
근데. 약간 지저분할 수도 있어 ]
[ 그게 세월에서 오는 맛이지.. 할머니집
가면 약간 지저분하면서도 정감이 가고
마음이 편해지잖아, 난 그런 게 더 좋아 ]
옛 것이 주는 정서는 돈으로 살 수 없다며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고
과거의 시간들이 사라지기 전에, 현대화로
리모델링 되기 전에
많이 보고 간직하고 싶단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점점 오래 된 것만 찾게
된다는 깨달음 말에 나도 공감이 갔다.
자꾸만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묘한 애착과 향수가 생기고
그리워지는 마음들.
한국의 옛 건축물을 찾아 학생들에게
알려주는 우에다 상과는
다른 유형이지만 우리도
지나간 추억들을 상기시켜주는 것에
마음이 쓰이고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