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백수가 된다면 뭘 할까?

일본의 케이 2023. 1. 30. 20:56
728x90
728x170

그린차(グリーン車)에 올라탄 우린 편의점에서

사 온 초코볼을 말없이 나눠 먹었다.

그냥 바다 보러 가자는 한마디에 

출발 3분전에 후다닥 전철을 탔다.

늘 그렇듯 목적지는  정하지 않고 

그 상황에, 그 시간에, 그 분위기에 맞춰

감각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우리 부부.

 

종착역까지 노선도를 보면서

요코하마(横浜)를 갈까 잠깐 망설이다가 

오랜만에 가마쿠라(鎌倉)를 가보기로 했다.

50분쯤 달려 가마쿠라 역에 내렸는데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이 눈에 띄였고

 캐리어를 끌면서 한 손엔 핸드폰으로

목적지를 찾은 이들이 많았다.

[ 여기 5년 만에 왔나? 별로 안 변했네 ]

[ 근데 분위기가 바뀌었는데..]

예전에는 일본의 옛 풍경이 느껴지는 가게가

많았는데  지금은 젊은 층과 관광객을 타켓으로

하는 인기 상품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 고로케를 여기저기서 파네..]

[ 간단히 먹기 쉽고 장사가 잘 되니까

너나없이 다들 파니까 특색이 없어졌네 ]

우리가 좋아했던 쯔게모노(漬物) 전문점이

두 곳 모두 사라지고 그 자리엔

고양이카페가 자리하고 있었고 다른 곳은

똥모양?의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상점가에 있는 가게들을 둘러보며

아사쿠사(浅草)보다 못한 것 같다고 했더니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가마쿠라는

그 대신 다이부쯔(大仏)가 있어서

그걸 보러 오니까  올 만한 가치가 있다며

내게 보러 갈 거냐고 물었다.

300x250

[ 아니 ]

[ 일본 3대 대불상 중에 하나야 ]

[ 알아, 근데 올 때마다 봤잖아, 한국에서

친구들, 가족들 오면 맨날 데리고 와서

 더 안 봐도 돼 ]

[ 그러긴 하네, 그럼 슬램덩크 배경지인

철도 건널목 볼 거야? ]

[ 아니, 관심 없어 ]

[ 아, 당신 만화 같은 것도 싫어했지 ]

내가 그쪽으로는 전혀 무관심인  걸

다시 확인한 듯한 깨달음은 

상가를 돌아 나와 바다 쪽으로

가는 길을 가리켰다.

바람도 차가운데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서 놀랐다.

추위보다 파도를 가르는 그 즐거움이

훨씬 크기 때문에 나왔을 거라며

보기만 해도 추워진다고 깨달음이

뒷걸음질을 쳤다. 

반응형

그렇게 멍하니 서서 바닷소리를 듣고 있는데

깨달음이 배가  고프다며

뭐 좀 먹으러 가자고 했다.

점심은 훌쩍 지났고 저녁을 먹기엔

좀 이른 시간이어서 간단히

요기를 하려고 장소를 옮겼다.

난 샌드위치를, 깨달음은 후렌치토스트를

주문해서 서로 조금씩 나눠 먹다가

갑자기 제주도 앞바다가 눈앞에

펼쳐진 곳에 별장이 있었으면 하냐고 물었다.

[ 아니야, 별로... ]

[ 당신이 바다를 좋아하니까 물었어 ]

[ 예전에는 좋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어 ]

깨달음이 날 한 번 쳐다보더니 조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요즘 내 모습이 좀 뭐랄까

사는 재미가 없는 사람처럼 보였단다.

기운도 없고, 생기도 없고 의욕도

없어 보였다며 무슨 고민 있으면

털어놓아보란다.

728x90

[ 없어..]

[ 진짜로? ]

[ 응]

[ 2월, 아버지 기일 때 한국 못 가서 그래?]

[ 아니야, 뭐 4월에 가잖아, 나보다 당신이

서운한 거 아니야? ] 

2월에 한국에 갈 예정이었는데

깨달음 회사 직원이 심부전으로 위험한

상태여서 회사를 비우기 힘들다고 해

4월로 스케줄을 변경했다.

나 혼자만이라도 다녀오라고 그랬지만

나 역시도 쉬기에는 애매하게 날이

겹쳐서 그만뒀다. 

요즘, 난 특별히 우울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재밌는 일도 없는 건 사실이다.

 

일본에서 20년을 살아보니

[ 케이야, 괜찮아? 일본 또 심각해 지더라.. 어쩌냐?] [ 그냥 조심하고 있어 ] [ 한국에 나올 수도 없고,,정말 답답하겠다 ] [ 응, 이젠 그냥 포기했어..한국에는 언제갈지 기약을 못할 것 같애 ] [ 그

keijapan.tistory.com

매일 아무 탈 없이 하루를 맞이하고 

마무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단지, 하나 염두에 두고 있다면

 올 해를 끝으로 정식으로? 백수가 되면

뭘 해야 할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는데

깨달음이 그런 멍한 모습에

신경 쓰였던 것 같다.

 

김치를 일본인들은 이렇게 먹는다

언제나처럼 오늘도 깨달음은 중요한? 서류를 내 노트북에 올려놓았다. 작년에 우린 세무사에게 재산정리?를 부탁했다. 재산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쓸 만큼은 아니지만 코로나가 지속되면서 둘이

keijapan.tistory.com

 

생전 처음,,구급차를 탔다.

구급차를 탔다. 밤 11시 27분, 멀쩡히 걸을 수 있는데 규정상 침대에 누워야 한다며 구급대원이 조심스레 날 눕혔다. 검지 손가락엔 산소포화도기를 끼우고 가슴엔 심장박동측정기를 잽싸게 붙이

keijapan.tistory.com

[ 나,,백수 되면 뭐 하지? ]

[ 하고 싶은 거 하면 되지 ]

 내가 뭘 하고 싶었는지도 잊어버린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깨달음은 골프를 쳐라, 여행을 떠나라,

태권도를 배워라, 도예공방을 다녀라 등등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섞어가며

계속해서 말을 해왔다.

정말, 백수가 되면 뭘 해야 할까...

사고가 정지된 것 처럼 막막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