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이 가득 남은 한국..
아침을 먹으러 가는 중에
유명한? 소금빵집에 앉아 깨달음은
애피타이저로 뚝딱 두 개를 먹어치웠다.
커피도 함께 마실거냐고 물었더니
청국장이 기다리니까 그냥 가겠단다.
마지막날, 아침은 청국장과 계란말이로 결정,
쿰쿰한 청국장을 한 숟가락 밥에 올려 비벼놓고
무생채를 올려 맛있게 먹었다.
[ 더 찐해도 괜찮은데, 맛이 연하네 ]
[ 이 정도면 찐한 거야 ]
[ 난 오리지널이 좋은데 ]
[ 요즘은 완전 시골 아니면 오리지널
찾기가 힘들어. 김치도 안 먹는 사람들이
늘었는데 청국장은 완전 호불호가 심해 ]
옛 것만 찾고 그리워하는 건 우리가
늙었다는 증거라는 얘길 나누며 식사를 했다.
[ 오늘은 어디 갈꺼야? ]
[ 영화 볼려고 ]
[ 무슨 영화? ]
[ 서울의 봄]
[ 일본어 자막 없는데 ]
[ 그래도 보고 싶어 ]
일본에서 이 영화에 대한 리뷰와
시대적 배경에 대한 기사를 많이 읽었고
무슨 내용을 다룬지 잘 알고 있어서
일본어 자막이 없어도 그날, 그 사건의
진실을 느끼고 싶다고 했다.
영화를 보고 싶다는 강한 깨달음의 의지를
꺾을 수 없어 근처 영화관에 갔더니
바로 볼 수 있는 티켓이 있어
맥주와 팝콘까지 준비해 줬다.
[ 한국어여서 이해하기 힘들 텐데 ]
[ 내년에 일본에서 상영하면 그때
또 볼 거니까 괜찮아, 근데 한국
영화관은 처음이어서 그런지 재밌다 ]
[ 뭐가? ]
[ 그냥,, 일본하고 좀 달라서 좋아]
영화가 상영되는 2시간 동안 깨달음은 맥주를
조심조심 마시며 영화를 다 보고 나왔다.
어땠냐고 물었더니 마지막 엔딩에 나온
사진 속 인물들을 보니까 정말 무섭다는
생각과 정의도 진실도 감춰진 게 많다며
내년 5월에 일본에서 개봉한다고 하니까
그때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뭘 의미하는지 자세히 볼 거라고 했다.
[ 다음은 어디 갈까? ]
[ 그 굴 전문집에 가자 ]
[그래 ]
택시를 타고 가는 중에 예약이 되는지
전화를 해봤더니 마침 한 자리가
비어있어서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늦은 오후시간인데 모든 테이블에 손님들이
가득했고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다.
막걸리를 한 병 거의 비울 때까지 음식은
나오지 않았지만 깨달음은 북적대는 사람들과
실내에 가득 찬 고소하고 기름진 냄새가
한국의 겨울을 느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보쌈에 나온 무말랭이에 굴전을 올려
먹으면서 엄지 척을 몇 번이나 하는 깨달음을
카운터에 계시던 아주머니가
포근한 눈으로 쳐다봤다.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그 아주머니가 남은
굴전을 포장해서 가라고 하셨고
깨달음은 일본에 가져갈 수 없다면서
배가 불러 다 못 먹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막걸리를 한 병만 마셨어야 했는데
술로 배를 채워버렸다고 뒤늦은 후회를 하며
지하철역으로 천천히 걸었다.
[ 대만족이야 ]
[ 응, 정말 맛있다 ]
[ 왜 같은 굴인데 한국 굴은 더 달지? ]
[ 세계의 굴 맛은 다 다르잖아 ]
[ 아,, 그런가,,]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아쉬움이 남은
깨달음은 커피를 한 잔 하자고 했다.
[ 서울에만 있었어도 3박 4일이 금방이네]
[ 광주에 갔어야 했는데.. ]
[ 어머니를 보는 것도 좋지만 당신
건강도 중요하니까..]
실은 난 이번 한국행에서 심한 독감에 걸렸다.
코로나 검사를 두 번이나 했지만 아니었고
독감 검사를 해도 독감이 아니었다.
중국에서 온 폐렴인가 싶어 병원을 옮겨
엑스레이를 찍어봤지만 폐렴도 아니었다.
정체불명의 심각한 감기?로 병원 측에서
노인에게 옮길 수 있다는 주의를 받고
계획했던 광주를 가지 못했다.
다음날, 우린 일찍 공항 라운지에서
아침을 간단히 먹으면서 일본으로 돌아가
바로 해야 할 스케줄을 공유했다.
12월에 정리해야 할 것들과 내년 3월까지
일정이 잡힌 프로젝트에 관한 얘길 나눴다.
[ 내년 4월에 제주도에서 가족들과
형님댁에서 고사리 뜯기로 했잖아 ]
[ 응 ]
[ 그때 우리 친구도 제주도 오라고 할까? ]
깨달음 동창들이 모두 퇴직을 하고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는데 아내들의 성화가
심해서 피신? 할 곳이 없냐는
문의를 많이 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서울에서 한 달 살기 같은 걸
하라고 권했다며 제주도도 괜찮을 것 같단다.
비행기에 탑승한 깨달음은 곧바로 잠이 들었다.
나도 약을 먹고 눈을 감았다.
늘 돌아오는 길엔 여운이 많이 남지만
이번은 유난히 깨달음에게
미안한 3박 4일이 되고 말았다.
깨달음은 괜찮다고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다 했다고 그랬지만 아쉬움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