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남편은 사장님이었다.
청소를 하고 잠시 음악을 듣고 있다가
얇은 코트만 걸쳐 입고 집을 나왔다.
창 밖으로 비친 가을 하늘이 너무 맑아서
그냥 내버려두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깨달음은 주말에도 열심히 회사에 나가
입원 중인 직원의 일거리를 처리하느라
평일처럼 출근을 했고 난 온전히
혼자서 주말을 맞이했다.
나 혼자 가는 곳은 항상 루틴처럼 정해진
코스와 장소이지만 난 그래도 집에서
가까워서인지 마음이 편하다.
오다이바(お台場)는 바다라고 하기엔
바다스럽지 않은 곳이긴 한데
날이 좋아서인지 스텐드업 패들을 하고 있었다.
수질이 안 좋기로 유명해서 물에 들어갈
생각을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2년 전, 오키나와(沖縄)에서 카누를 탔을 때
그 짜릿함이 상기되어서인지 갑자기 나도
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 주변을 둘러봤더니
스쿨도 있고 장비도 모두 렌털할 수 있었다.
더 추워지기 전에 꼭 한 번 해 볼 생각에 일단
사진을 한 장 찍고
카페에 앉아 맥주를 한 잔 시켰다.
해변 모래사장쪽에선 비치발리볼을 하는
사람들의 함성이 들려오고 카페 스피커에선
레게 음악이 흘러나왔다.
더워서 코트를 벗어 두고 쌉쌀한 맥주를
한 모금 삼켰더니 꿀맛이어서 나도 모르게
깨달음에게 카톡을 보내려다
요즘 심기가 많이 불편한 그를
자극시켜선 안 될 것 같아 참았다.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눈에 띄였고 강아지와 산책하는
어린 꼬마들이 꽤 많이 지나갔다.
바람도 적당히 불어오고 간헐적이긴 하지만
비릿한 바다냄새가 맥주와 잘 어울렸다.
그렇게 멍하게 한 시간쯤 있다가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서점을 가려다가 아직 다 읽지 않은
책들이 쌓여가고 있다는 생각에 발길을 돌려
아쿠아센터로 향했다.
집에 있는 수조 앞에서도 기본 30분 정도는
앉아 감상할 정도이다 보니
수족관만큼이나 아쿠아센터를 좋아한다.
3일 전 미키마우스 플래티가 새끼들을
낳아서 치어들이 꼬물거리는 것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문을 열고 들어 갔더니 점장이
나를 보고 씨익 한 번 웃는다.
내가 치어들을 자주 가져다줘서인지
나를 볼 때마다 이 일을 전문적으로
해보라고 권하는데 난 항상 사양했다.
언제나처럼 말없이 수조 주변을 돌며 하나씩
하나씩 빠짐없이 검열하듯이 살피고 있는데
점장이 잘 지내시냐고 말을 걸어왔다.
[ 저희 또 새끼 낳은데. 좀 더 크면 가져올게요 ]
[ 그래요? 참,,, 잘 키우신단 말이야,,]
[ 다음 주 중에 한 번 또 올게요 ]
[ 그러세요 ]
아쿠아센터를 나와 시간을 보니
2시가 막 넘어가고 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새로 생긴 한국요릿집에 들어가
주문을 하고 깨달음에게 식사는 했는지
카톡을 보냈더니 막 퇴근하려는 참이었다며
내가 있는 곳으로 오겠다고 했다.
깨달음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
주문한 음식을 조금 늦게 내 달라고 했더니
흔쾌히 오케이 해주셨다.
그래도 그냥 앉아 있기 미안해서 막걸리와
해물전을 주문해 놓고 기다렸다.
30분이 지나서 도착한 깨달음은 막걸리를
물처럼 마시면서 여름 날씨 때문에
더워 죽겠다며 막걸리를 또 들이켰다.
[ 깨달음, 내일도 회사 갈 거야? ]
[ 아니,, 그 여직원이 다음 주에 출근해서
입원하기 전에 자기가 마무리할 것은 하겠대]
[ 왔다 갔다 해도 괜찮을까? ]
[ 응, 의사한테 허락받았대, 그래도
걱정돼서 괜찮다고 오지 말라고 했는데
그 여직원 알지? 당신하고 성격 똑같은 거,,
링거 꼽은 채로도 올 사람이잖아,,]
[. ............................... ]
[ 그렇게 성격이 강한 애는 당신 이후로
처음이야, 가끔 난 그 애가
한국인인가 싶을 때가 있어 ]
[ 지금 나를, 그리고 한국인을 까는 거네 ]
[ 아니야, 나는 그런 끈기와 곤조가 있는
여성들이 내 주변에 있어서 행복하다는 소리야,
기어코 병원 옮기기 전에 회사 나온다잖아 ]
그래도 못 나오게 하는 게 오너인 당신이
배풀어야할 배려가 아니냐고 직원을 생각하면
안정을 취하라고 하는 게 먼저라고 했더니
자기한테 뿐만 아니라 거래처에도
회사에 출근해서 처리하겠다고 모두에게
알렸다며 그녀가 보낸 메일을 보여줬다.
[ 못 나오게 해서 안 나올 애가 아니라는 걸
당신도 알잖아, 우리 회사에서 지금껏
밤샘하는 직원은 유일하게
그 여직원뿐이었어. 지금은 안 하지만,
밤샘 작업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을 해도
그날 마무리할 것은 그날에 끝내야 한다면서
일을 하는데 완전히 당신 보는 것 같았어 ]
[ 그만해.. 별로 칭찬으로 안 들려..]
[ 아니라니깐, 난 지금 칭찬하는 거야,
거래처에서도 그 여직원 하고 일하고 싶다는
요청이 얼마나 많은데, 일을
똑부러지게 하니까, 실제로 그 직원이
맡고 있는 거래처가 가장 많아 ]
[ 알았어,,, 얼른 먹어 ]
배가 많이 고팠는지 깨달음은 돌솥 비빔밥을
허겁지겁 먹으면서 내 삼계탕 국물을
연신 떠먹었다가 다시 생각났는지
또 얘기를 했다.
[ 아, 오해하지 마, 그 여직원이 회사에
나온다는 건 다음 주 월요일, 화요일 이틀뿐이고
11월부터는 다시 입원치료하는 거야 ]
[ 알았어 ]
[ 그리고 그녀가 직접 해야 할 일이 있어서
회사에 나온다는 거야,,]
[ 알았다고,,]
아픈 직원에게 일을 시키는 악덕 경영자가
아니라는 걸 강조하고 싶어서인지
부가설명을 계속했다.
깨달음도 회사를 경영하는 오너로서 책임감이
강하고 온 정열을 다 바쳐서 일하는
직원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경영자는 경영자의 눈으로 판단할 것이다
내가 남편으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깨달음은
역시나 사장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