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오랜만이에요. 몇 년만이지? 2년?
아니 3년만인가? 진짜 오랜만이다.
잘 계셨어요?”
“응……. 네 블로그는 잘 보고 있어.”
“아, 그래요? 잘 계시죠? 근데 무슨 일이세요?”
“그냥, 네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그냥……”
언니의 목소리가 갑자기 젖어들기 시작하더니
잠시 침묵이 흘렀다. 분명 또 외롭다거나
너무 힘들다는 얘기를 할 것 같은 예감이 스쳤다.
일본인 남편과 결혼해서 올해 25년째인
영은(가명) 언니는
내가 기숙사 생활을 할 때 우리 기숙사 맞은편
아파트에 살던 언니다. 기숙사에 한국인 학생들이
사는 걸 알고 친해지고 싶어서 우리 기숙사를
기웃기웃거리다가 나와 알게 된 것이다.
내가 기숙사를 떠난 뒤에도 언니는 가끔
연락을 했는데, 몇 년 전 내 블로그 글이
다음 메인에 떴을 때 나라는 걸
한눈에 알아보고 그 후로 매일
정독하고 있다고 했다.
“왜? 무슨 일 있었어요?”나는 재차 물었다.
언니는 막내 딸이 고교2년생인데
집에만 틀어박힌지 6개월이 지났고
학교에 거의 가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지메를 당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하고 미국에 유학을
보내달라는 소리만 한 번 했다는 것이다.
언니는 1 년 전 남편이 교통사고로 입원하면서
생활 패턴이 달라졌고, 경제적으로 많이
곤란해졌다고 했다. 언니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나라도 좀 더 자주 연락하고 지낼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원래 외로움을 잘 타고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
가끔 통화할 때마다 안쓰러웠는데,
오늘 내용은 좀 심각했다.
그냥 나에게 얘길 하면 뭔가 시원하게
해결책을 내줄 것 같아서 전화를 했다는데……
그냥 답답하고 막막하기만 해서
눈물만 난다는 영은 언니.
“이젠 딸애도 머리가 커져서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아. 또 얘길 해봐야 나도 화가 나서
좋은 말도 안 나오고.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게
꼴 보기 싫어서 나가라고 하고 싶어도
자식이다보니 모질게도 못 하겠고…….”
영은 언니의 부탁은 이랬다.
야단치고 윽박질러도 좋으니까 애가
학교에 다시 나갈 수 있도록,
안 되면 사회생활이라도 할 수 있도록
딸을 좀 설득해줬으면 하는 거였다.
“엄마인 언니가 못하는 걸 내가 어떻게 해?”
나는 딱 잘라서 거절했다.
“아니야, 너는 강단이 있잖아.
너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전화한 거야.
그리고 넌 자식이 없어서 더 냉정하게
현실적인 얘기를 할 수 있을 거야.
네 말투가 좀 차갑고 매섭긴 하지만 정이 많아서
들을 땐 좀 아프겠지만
우리 딸도 네 말이라면 잘 들을 거야.”
“…….”
나는 아니라고 그 누구보다 언니가
딸의 마음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언니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얘길 했지만 언니의
목소리엔 절심함이 배어 있었다.
딸은 내적 갈등이 많았다.
엄마가 한국인이라는 것도 솔직히 불편해하고
부끄러워했다. 중학교 때는 이지메도 당했다.
엄마가 한국인이라는 것 때문에…….
그래서인지 영은 언니는 자신이 한국인이
아닌 것처럼 살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일어를 한마디 뱉으면 한국인 특유의
발음이 나오니까 되도록 말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고, 딸이 자랄 때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친구들에게 엄마가 한국인임을
말하지 말라고 입단속을 시켰다.
그러다보니 딸에겐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박혀버렸고,
자기 몸에 한국인의 피가 반이나 섞였다는
것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했다.
하긴 내가 영은 언니에게 왜 딸에게
한국말을 안 가르치냐고 물었을 때
한국어를 어디에 써먹으라고 가르치냐며
오히려 날 이상한 사람처럼 쳐다봤었다.
영은 언니는 일본에 왔을 때 많이 무시당했고,
그 상처를 자식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엄마가 한국인임을 알리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한일 커플 중 특히 엄마가 이렇게
자기 나라에 대한 긍지와 자긍심을 갖지 않고
부끄러워하며 자녀를 양육하면
그 자식들은 엄마와 똑같이 사고하며 성장한다.
영은 언니뿐만 아니라
우리 협회에 다니는 한국인 엄마들 중에도
한국어는 물론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굳이 자식들에게 알리려고 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결국 그들의 아이들은 우익들의
혐한 시위를 눈앞에서 보고 들으며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굉장히 혼란스러워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게 되었다.
부모가 먼저 당당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녀들에게
피아노, 발레, 영어학원을 보내듯이
먼저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줘야한다.
부모가 먼저 내 나라에 애정을 가지지
않고서는 자식들도 똑같은
설음과 아픈 절차를 밟게 될 수밖에 없다.
아이를 해외에서 낳고 키우면 당연히
정체성이 흔들리는 시기가 오기 마련이다.
비단, 일본 뿐만 아니라
모든 해외 거주자 부모님들이
먼저 내 나라, 내 언어가 무엇이였는지
재인식하는 게 옳바른 자녀 양육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자식이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어 할 때
그것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 부모의 몫이다.
이때 부모가 적극적이지 않으면 자녀는
성인이 되어서도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 헤매고 다니게 된다.
먼저 부모 자신이 내 나라에 대한 애착을
보이지 않는 이상 자녀들이 옳바른 가치관과
당당한 인격체로 성장시키기 어렵다는 게
현실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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