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노후를 남편이 결정했다
아침부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며칠 전 성남 모란시장 장날에 남편과 함께
다녀왔는데 그날 하루종일 내 얘길 했었다며
날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되어간다고 허무하다며
푸념을 늘어났다.
우리 친구들 중에 가장 먼저 할머니가 된
이 친구는 올 해 초, 30년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전업주부를 하기
시작했다. 일 손을 놓지 않고 살았던 탓인지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게 어색하기만 하다더니
손녀딸 돌보느라 딸 집에 왔다 갔다 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가버리고 만단다.
[ 너랑, 그때 팥죽 먹었잖아, 이번에는
그 옆집에서 먹어봤는데 더 맛있는 거 있지..]
[ 칼국수는 안 먹었어? ]
[ 남편이 먹었어. 막걸리도 한 잔 하고 ]
[ 재밌었겠다 ]
[ 우리 남편이 일본 한 번 가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데 나랏일 하는 사람이라서
시간을 마음대로 낼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내가 혼자 갔다 오겠다고 하니까
절대 못 가게 하는 거야. 자기랑 같이 가자고 ]
[ 그래? 혼자 보내줄 것 같던데 아니네.. ]
친구는 남편이 얼마나 고지식한지 뒷담화를
하다가 자기 딸이 이사를 하는데
요즘 집 값이 너무 비싸다는 얘기와
손녀의 성장이 빠르다는 얘기를 섞어가며 했다.
[ 근데. 케이야,,너 노후는 어떻게 한다 그랬지?
한국에서 살 거지? 아니면 계속
일본에서 살 거야? ]
[ 나도 아직 잘 모르겠어..]
[ 깨서방이랑 같이 한국에서 살아라,,
그래야 같이 놀지....]
같이 놀자는 말이 너무 솔직하고 순박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통화를 마치고 난 집을 나와 세무서 직원과
간단한 미팅을 끝내고 깨달음 퇴근 시간에
맞춰 집 근처 새로 생긴
이자카야에 먼저 들어갔다.
친구가 궁금해하는 노후를 나는 한국에서
돌아와 지금까지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실버타운 정보를
하나둘씩 모아두고 있던 중이었고 최종적으로
노후 정착을 위해 택해야 할 나라가 과연
한국이 될지, 일본이 될지 우리 부부에게
가장 좋은 선택지가 어디가 될지
신중하게 탐색을 하고 있던 터였다.
깨달음과 맥주를 한 잔씩 하면서 친구와 나눈
얘기를 꺼내고 깨달음 생각들을 물었다.
노후는 어디에서 보낼지...
결론을 말하자면 깨달음은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한다. 그렇다고
완전 이주가 아닌 거주지가 한국이고
일본은 언제든지 오고 갈 수 있도록
거처를 남겨 둔 상태로 지내고 싶단다.
하지만, 실버타운에 들어갈 것 같으면
굳이 한국에 갈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한단다.
[ 실버타운에 들어갈 거면 일본, 그냥
자유롭게 살 거면 한국이라는 뜻이야? ]
[ 응 , 한국 실버타운에 들어가면 나는 한국어가
서툴러서 재미없을 것 같아서 ]
[ 그건 그러네..]
[ 근데..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당신이
여기 일본에서 실버타운 들어가
사는 것도 정말 재미없을 것 같아,
그니까 실버타운은 마지막 보류로
남겨놓고 그냥 노후를 즐기면서
보내려면 나도 좋고 당신도 좋은
한국이 딱 좋지. 안 그래? ]
[ 나야, 한국에서 살면 좋지..근데 당신이
걱정이라면 걱정이고..]
이런저런 얘길 하다 깨달음이 다시 자기
생각을 털어놨다.
[ 그냥, 한국에서 사는 게 정답 같아.
혹 실버타운 들어가도 난 친화력이 좋으니까
금방 친해질 것이고,, 마지막은 어차피
어디에서 죽으나 별 의미가 없으니까 ]
[ 한국에서 죽어도 괜찮다는 거야? ]
[ 응 ]
우린 예전부터 마지막은 각자의 나라에서
마무리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공통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깨달음의 심경이
변화한 것은 부모님이 두 분 돌아가시고
나니까 모든 게 부질없다는 생각도 들고
그냥 살아 있을 때 재밌게 즐기면서 살다
죽으면 그곳이 어디든 무슨 상관이있나
싶어 졌단다.
깨달음은 한국에서 살면 할 일이 많아서
바쁠 거란다. 곳곳에 맛집탐방도 해야하고
각 지역에 특산물을 먹으러
찾아다닐 것이고 안 가본 곳을 방방곡곡
다녀봐야 하고, 울릉도를 포함해 섬투어도
해야 돼서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 한국으로
가느냐가 가장 큰 관건이라며
그걸 고민하자고 했다.
앞으로 몇 년 후에 가는 게 좋을지 그 시기를
결정하는 게 우선이라는 깨달음.
[ 3년 후? 아님, 2년 후? 내가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가야 되는데,, 그래야
재밌게 놀 수 있는데..]
[ 그러긴 해..건강했을 때 가는 게 좋지 ]
[ 그럼 정말 서둘러야 될 것 같은데..
회사도 정리하고 해야하니까...]
깨달음이 노후를, 그리고 마지막을 한국에서
보내겠다는 결심을 하기까지는 꽤 많은
생각들이 응축되어 있음을 느꼈다.
회사를 정리하는데 결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지만 마음정리?를 하는데는 더 많은
시간을 요할 것이다.
깨달음이 원하는 한국에서의 노후생활이
과연 언제쯤이나 성사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