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요즘 유행하는 재해 물병
일본에서 태풍이나 지진이 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한국에 있는 가족, 친구, 지인들이
항상 안부를 묻는다.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태풍이 온다고
대비하고 조심하라는 경고가
며칠간 계속됐지만
우리 부부는 그냥 평소처럼 지냈다.
비상식량을 사 두거나, 휴지나 일상용품을
준비해 두라며 뉴스에서는 비상시 일주일을
지내기 위해 필요한 용품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우린 아주 기본적인 것들은 늘 준비해 둔
상태여서인지 차분하게 태풍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 태풍 완전 무섭던데 잘 지나갔어? ]
[ 응,,,비가 좀 심하게 오긴 왔는데
그냥 무탈하게 지나갔어 ]
[ 지진도 잦다며? 곧 큰 지진 온다고
한국에서도 몇 번 방송하더라,,]
[ 응,,뭐,,그러러니 해..]
[ 아이고,진짜 걱정이다..]
[ 아니야,,뭐 25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젠
익숙해.. 지진이든, 태풍이든,,]
친구와 통화를 마치고 났는데 뭔지 모를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지진에 대한 불안감이 전혀 없다면
거짓이지만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발생시에 어떻게 대처하고 이겨내는가를
늘 염두해두고 살아온 것 같다.
특히 2011년 동일본 지진을
직접 경험한 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말 나온 김에 수납장에 넣어 둔
재난용 비상 배낭을 꺼냈다.
지난번에 유통기한이 지난 물을 버리고
다시 채워두지 않았던 것도 체크하고
더 필요한 게 있나 찬찬히 살폈다.
깨달음 가방에는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넣어두어서인지 너무 무거울 것 같아
내 배낭으로 물티슈와 간이화장실을
옮겨 넣었다.
그러다 지난주 내내 티브이에서
가정마다 꼭 사람 수대로 한 병씩
만들어 두라는 재해 물병이 생각났다.
정말 최소한의 물건들과 꼭 필요한 것만
물병 속에 넣어 가방이나 차에 넣어두면
비상용으로 안성맞춤이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
물병은 컵대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고
부피가 작으니 비상시에 간편하면서
유용하게 사용될 거라했다.
나도 준비를 해야 될 것 같아서 검색을
해봤더니 물병 속에 넣는 건 각자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호루라기와 플래시, 체온보호를 위한 시트,
연양갱, 돈, 마스크 등을 넣었다.
비상시에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항상 가방 속에 넣어 두고 다녀야 할
물건이라면 무엇이 좋을까 다시 검색을
해가며 생각하다 물병을 꺼냈다.
사이즈는 딱 좋은데 막상 넣으려고 하니
통 안은 보기보다 작았다.
플래시, 방안시트, 호루라기, 돈, 그리고
연양갱 대신 말린 가리비, 밴드, 위생팩을
넣는데 위생팩이 커서 5장씩 뜯어
10장을 돌돌 말아 담았다.
무겁지도 않아 가방에 넣고 다녀도
위화감은 없을 것 같았다.
물티슈와 손소독제를 넣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간소화가 목적이니
그냥 뚜껑을 닫았다.
비상 배낭에는 웬만한 것들이 다 들어가
있어 조금은 안심감이 들었는데 이렇게
초간소화에 맞게 필요한 것만 넣어보니
살아남기 위해 인간에게 필요한 게 정작
무엇인가라는 원초적인 의문이 들었다.
올 4월, 에히메현 근해에서 규모 6.6 지진이
발생했고 8월에는 치바 현과
후쿠시마 현에서 3도 이상의
지진이 있었다.
지난 달, 8월 초 도쿄를 중심으로
간토 지역에서부터
남부 규슈의 태평양 연안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규모 8.0 이상의 거대
지진 발생 경계령이 발표된 이후부터
이 비상 물통이 유행처럼 번졌고
뉴스에서도 한 사람에 한 병씩
꼭 챙겨 두라는 당부를 했었다.
조금은 늦은 감이 있지만 내일은
압축타월, 연양갱, 로프를 사서
깨달음용 물병을 만들어 둘 생각이다.
내가 일본에 사는 동안엔
비상 배낭을 메는 일이 없었으면 하고
이 물병을 열어 호루라기를 불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