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언니에게 민폐를 끼쳤다
깨달음이 일본으로 돌아가고 난 후,
나는 매일처럼 청국장과 된장찌개를
번갈아 먹으며 아침을 시작했다.
일본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청국장이었던 만큼
날마다 한 끼씩 먹는데도 아직까지
물리지 않았다.
오늘은 뭐 먹었냐고 내 끼니를 걱정해 주는
자매들에게 청국장 사진을 올리면
날마다 청국장만 먹고 다니냐며
핀잔을 듣긴 하지만, 한국에 있는 동안은
누가 뭐래도 계속해서 먹을 생각이다.
일본에서는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 같은 게 있었다.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더불어져 좀처럼
메워지지 않았던 허허로움을
된장찌개와 청국장으로 채워가고 있다.
어느 날은 시장에 들러 번데기를 한 컵
사서 컵 채로 입에 털어 먹기도 했다.
깨달음이 유일하게 못 먹는 한국 먹거리 중에
하나인데 난 가끔씩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이것 역시, 코리아타운에 가면 캔으로
구입할 수 있지만 이렇게 아줌마가
뜨끈 뜨근하게 컵에 퍼주는 번데기를
먹어야 먹은 것 같은 만족감이 들었다.
또 어느 날은 찜질방에서 머릿속에 생각들을
내려놓고 땀을 빼곤 했다.
이번에 한국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내 시간에 맞춰 눈을 뜨고,
먹고 싶었던 것을 먹고
가고 싶었던 곳에 천천히 여유롭게
둘러보고 싶었다.
5년 전, 제주도에서의 한 달 살기가
정신적인 힐링을 위해서였다면 이번
서울행은 허기진 몸과 마음을
충전하고자 떠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외에 꼭 해결해야 할
중요한 일도 하나 있었다.
그것은 10년 전부터 언니가 관리해 왔던
내 아파트를 언니가 아닌 내가 감당하도록
바꾸기 위하는 일이었다.
10년 전, 재개발 아파트를 샀던 터라
조합원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꽤나 많았다.
내가 해외에 살다 보니 그 모든 일은
언니가 대리인으로 출석하고
서류를 보내고 도장을 찍고 세금을 내고,,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입주가 시작되서도 세입자와 계약을
하는 것까지 언니가 대행을 해야 했다.
더 이상은 언니에게 민폐를 끼쳐서는
안되기에 모든 것들을 내가 처리할 수
있도록 먼저 부동산에 들렀다.
대리인이었던 언니 이름이 아닌 내 이름으로
연락처도 언니가 아닌 나와 할 수 있도록
모두 바꿨다.
그리고 10년 동안 차곡차곡 모아둔
서류 및, 영수증, 통장, 그리고 주민등록증을
받기 위해 언니집으로 이동했다.
두꺼운 서류철이 두권, 그 외에
각종 고지서들과 안내장들,,,
서류를 꺼내 언니가 하나씩 설명을 하는데
난 미안하다는 말조차 할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이 너무 가볍게 느껴져서..
이 많은 것들을 언니가 내 대신해 왔는데
어떻게 죄스런 마음을 표해야 할지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서류가방을 챙겨 나와 식사를 하며
그동안 있었던 세세한 얘기를 나눴다.
내 아파트 일을 대신해 주는 것과 겹쳐
결혼해서 해외 주재원으로 나가 있는 큰 딸,
그 딸의 아파트까지 대리인으로 언니가
맡아서 하다 보니 골치가 아팠다고 한다.
거기에 언니 소유의 오피스텔 세입자와
트러블이 생겨 재판까지 가고
난리였다며 심리적으로 아주
복잡한 상황이었음을 털어놓는데
미안한 마음만 더해갔다.
진작에 내가 언니에게서 떨어져 나왔어야
했는데 이래저래 많은 부분 의지하고
기대고 있었음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식사를 마치고 여동생과 함께 언니와 형부가
노후를 즐기기 위해 마련했다는
별장으로 이동했다.
텃밭에 상추와 열무를 심고,
마당에는 사과나무를 심고,,
주말이면 형부와 이곳에 와서 농사일?을
한다는데 해보니 은근히 재밌다며 내게도
이런 전원생활이 어떠냐고 묻길래
깨서방도 나도, 논 밭일엔 전혀
흥미가 없다고 하자 자매가 같이 근처에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우린 한 귀퉁이에 걸쳐놓은 가마솥을 보며
어릴 적 우리 집 앞마당에 있었던 솥단지가
떠오른다며 추억들을 꺼내 수다를 떨었다.
해가 져서야 호텔로 돌아온 나는
깨달음과 긴 통화를 했다.
형부와 같이 올해 환갑이 된 언니에게
사죄의 선물? 같은 걸 하고 싶은데
10년간 수고해 주심을 어떻게 보상해
드려야 내 마음이 편하고 받는 언니도
기분 좋게 받을 수 있는지..
뭐가 좋을지 둘이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언니야,,10년간, 너무 고생했어.나 때문에..
정말,, 미안하고,,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내 언니여서...
PS-혹시 언니에게 어떤 선물이 괜찮을지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신 분은
저에게 좀 알려주실래요.
방명록 열어 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