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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시부모님의 유산과 시동생

by 일본의 케이 2023.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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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우편함에 들어있는 소포상자를 꺼내 

깨달음 방에 두었다.

서방님에게서 온 것이었는데 묵직한 게

두꺼운 책이 들어있는 느낌이였다.

그렇지 않아도 서방님이 지난주 깨달음에게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들어놓았던 보험 증서를

회사로 보내왔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회사가 아닌 집으로 뭘 보낸 건지 약간

궁금하기도 했지만  시댁일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던 터라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퇴근하고 돌아온 깨달음에게 저녁을 

차려주고 난 할 일이 있어 내 방에서 

 파일을 정리하고 있었다.

일을 그만두어도 직책만 없어질 뿐

보란티어로 앞으로도 얼굴은 계속 보고

지내야 하기 때문에 마무리도 깔끔하게

뒷정리를 해야 했다.

내가 원하고 노력해서 쓰게 되는 감투는

감사하지만 어쩌다 보니 얻게 된 감투는

늘 내 옷이 아닌 듯 불편했었다.

내 노력에 비해 댓가가 너무 커서 부담스러웠고

남들은 부러워하는 자리였지만 난

심리적으로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초심을 되찾고 싶다는 말로 예쁘게

포장을 씌워 모든 걸 내려놓기로 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난 점점 

감정이 메말라가는지 아주 사무적이고

 의무적인 딱딱한 인간이 되어가는 듯싶어

나 스스로에게 경종을 울리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몇 번 찾아오겠지만

난 이번 기회를 노년을 새롭게 만들어 가기위한

좋은 시간이 될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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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한 이상이 아닌 좀 더 구체적이고

체계화 된 노후 설계를 위한 것이기에

퇴사결정에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저녁 9시경, 다시 거실로 나갔는데 

깨달음이 안경을 쓰고 뭔가를 보고 있었다.

힐끗 보니 통장이 보이는데 시어머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서방님이 보낸 게

시부모님의 통장이랑 입출내역서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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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도 첫 통장은 안 보내고

잔액만 남은 통장을 보냈네..]

깨달음이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 서방님은 예전에도 그랬잖아 ]

[ 내가 작년 11월부터  보내라 그랬는데 

하도 안 보내길래, 재산이 얼마 남았든 모두 

너 다 가지라고, 손 안 될 테니까 일단

통장이랑 내역서 보내라고 했더니  또 중요한

통장은 빼놓고 입출금 내역도 앞부분이 없어 ]

[ 깨달음,, 나한테 얘기하지 말아 줘.

두 형제가 알아서 하라고 했잖아,, ]

[ 근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이 자식이

왜 이렇게 돈에 집착을 하는지 모르겠네 ]

부모님 재산에 손대지 않겠다고 했더니 이제야

통장을 보냈다는 말에 더  듣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지금껏 시댁 식구로 생각하고 있던

 서방님에 대한 이미지가 깨지는 것도 싫고

인간의 밑바닥이 드러날  것 같아서 싫었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부터 

재산에 대한 얘기를 깨달음이 서방님과

잠깐씩 했던 건 알고 있었다.

애초부터 깨달음은 장남인 자신보다 동생이

부모님을 더 보살폈기 때문에 부모님 재산은

동생에게 주겠다는 말을 했었다.

자기는 대학 때부터 계속 도쿄에서 지내왔고

동생은 교토에 살았지만 시댁과 거리상으로

가까워 무슨 일이 생기면 늘 동생이 찾아가

시부모님의 애로상항을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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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도 재산에 대해 그러려니 생각했는데

 2020년 초, 갑자기 시부모님 요양원비가

부족하다며 우리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부모님의 전재산을 서방님이 갖고 있었고

요양원비는 두 분의 연금으로 충당하기

때문에 돈이 부족할 일이 전혀 없는데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알고 싶어

그때 처음으로 깨달음이 통장과

입출금 내력을 보내달라고 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통장의 첫 장은 없고

끝페이지만 복사를 해서 보내왔었다.

 

일본 여행 오시는 분들께 부탁 드립니다

깨달음과 2박 3일의 홋카이도를 다녀왔다. 저녁이면 샷포로 중심가에서 술을 마시고 쇼핑을 했고 다음날은 오타루에 들러 조카가 낳은 아들에게 줄 오르골도 하나 사고 깨달음이 좋아하는 생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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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부터 난  서방님의 민낯이 드러나는 게

보고 싶지 않아 깨달음에게

두 형제가 알아서 하라고 선을 그었다.

그래서 오늘 깨달음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이번만큼은 도대체 부모님 재산이 얼마였는지

알아낼 거라며 격양된 목소리로

통장을 펼쳐 보여줘도 난 모른 채 했다.

돈의 행방이 왜 이렇게 됐는지 따지고,

묻고 싶은 게 많겠지만 이미 두 분은

돌아가셨고 깨달음은 동생에게

모질게 추궁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일본에선 각방을 쓰는 이유가 따로 있다

블로그를 하다 보면 여러 질문을 받곤 한다. 내가 20년 이상 일본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과 배우자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도 같은 궁금증을 갖고 계시는 분들이 많다. 가끔 내게 메일을 주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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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앞에서는 일본인도 똑같았다

2주전,아니 올 해를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부부에게 머리 아픈 일이 생겼다. 시부모님의 모든 재산을 두분이 요양원으로 들어가셨던 3년전부터 서방님께 맡겨 모든 걸 관리하셨다. 서방님에게 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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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남기신 유산이 얼마든

처음 마음 먹었던 것처럼 동생에게 

 모든 재산을  줄 것이다.

난 두 분이 유언장을 남기지 않으셔서

한편으론 다행이라 생각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데 돈 앞에 서면

형제, 자매의 피를 혼탁하게 만드는 것 같다.

혹 깨달음이 동생의 실체를 알게 되더라도

실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돈이라는 것은 인간의 도덕적 가치를

만들어주지 않는 게 맞는 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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