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나 몰래 다 계획이 있었다.
지난주, 일본으로 돌아온 날부터 거의
매일 신년선물(お歳暮)이 도착하고 있다.
늘 같은 선물을 보내시는 분,
내가 좋아하는 걸 기억하고 보내시는 분,
매년 과일류만 보내시는 분,
과자류를 자주 보내시는 분 등등
대략, 상대의 취향에 맞게 보내기보다는
누가 받아도 무난한 선물들이 많다.
그래도 참 다행인 건 가공식품인
햄이나 소시지 같은 게 없어서 감사하다.
곶감을 바로 하나 먹어봤더니 아주 맛있다.
올 해는 생과일이 아닌 곶감을
보내셨는데 나쁘지 않았다.
카페인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내 몸은
이제 조금은 길들여져 날마다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있다.
커피 탓에 잠을 설치는 일은 많이 줄었지만
두 잔 이상 마시는 날은 심장박동이 심하게
요동치는 바람에 병원에서 하루에
한 잔만 마시라는 명령을 받았다.
주치의가 내 장기의 사이즈가 어른이 아닌
초등학생 사이즈처럼 작기 때문에
심장, 콩밭, 위, 간, 대장, 소장, 허파 등등
기능적인 면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용량이 작으니 그에 맞게 섭취를 해야 한다고
아주 리얼하게 설명을 해줬던 기억이 있다.
일단 선물들은 냉장고와 팬트리에 나눠
넣어두고 나는 깨달음이
부탁한 저금통을 열었다.
5백엔 동전과 지폐만 넣어 1년에 한 번씩
저금통을 털어 그대로 저축을 하기도 하고
여행경비로 쓰기도 하며 요 몇 년은 블로그
이웃님들 선물을 사는데도 사용되었었다.
우체국에 갈 일이 있으니 계좌에 넣으면
되겠냐고 카톡을 보냈더니 10만엔은 두고
나머지만 통장에 넣어달라고 했다.
외투를 걸치고 우체국에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깨달음에게서 전화가 와서는
자기가 몇 가지 선물을 샀다며
블로그 이웃님께 보내라고 했다.
[ 누구한테 보내? 보낼 거면 미리
공지 같은 걸 해야 공평한 건데..]
[ 그냥, 주소 보내주신 분 들 중에
보내면 되잖아,,]
[ 아니,,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주고
그러면 안 되지..]
[ 크리스마스 선물이니까 서프라이즈로
보내면 받는 사람도 기쁘지 않을까? ]
[ 알았어. 집에서 얘기해 ]
일단 전화를 끊었다. 생각지도 않은 말을
하는 바람에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웠다.
우린 2년 전, 블로그 이웃님들께 마지막으로
연하장을 보내드렸다. 마지막이라고 했던
이유 중에 가장 컸던 것은 블로그를
쉬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깨달음의 간절한 부탁? 에
또 계속해서 글을 올리게 되었고
작년에도 실은 공지는 하지 않았지만
이웃님들께 연하장을 보냈었다.
올 해도 조용히 보내드리려고 이미
준비를 하고 있던 터였는데 선물을 샀다고
하니 상당히 난감해졌다.
퇴근하고 돌아온 깨달음과 많은 얘길 나눴다.
결론은 함께 나누면서 사는 게 좋지 않냐는
산타클로스 같은 포근한 마음으로 마무리를 하고
깨달음이 사 온 선물을 포장했다.
어느 분에게 보낼 건지 머리가 아프다고 했더니
선물 못 받는 나머지 분들에게는 연하장을
보내면 되지 않겠냐고 어렵게 생각 말란다.
깨달음은,,, 전생에 뭐였을까..
분명 깨달음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
다 계획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