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영업을 하는 우체국 본점 덕분에
오늘도 집에서 바로 소포를 보낼 수 있었다.
한국으로 보내는 소포는 무게가 있어 이런
서비스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게 참 고맙다.
깨달음은 아저씨가 엘리베이터를 탈 때까지
지켜보고 현관문을 닫았다.
[ 무사히 잘 도착하겠지? ]
[ 그러겠지, 전화번호를 몰라 적지 않아서 좀
불안한데 지금까지 별 문제없었으니까
괜찮겠지..]
예정에 없던 소포를 보낸 건 온전히
깨달음 때문이었다. 그저께 아사쿠사(浅草)
현장을 다녀오는 길에 샀다며 블로그 이웃님들께
보냈으면 한다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사왔다.
지난 연말, 이웃님들께 연하장을 보낼 때
다 보내고 없을 것 같아 또 사 왔다며
손거울, 손지갑들을 내밀었다.
내가 괜찮다고 사 오지 말라고 해도
사 온다는 걸 알기에 더 이상 묻지 않고
같이 마트를 다녀왔다.
깨달음이 일본스러운 먹거리들을 골라
소포 박스를 채웠고 박스를 포장하는 동안
난 간단히 메모를 남기며 문득 며칠 전
어느 분이 보낸 메일을 떠올렸다.
작년에 연하장을 신청했는데 못 받았다며
선물도 받고 싶었다고 근데 연하장도 못 받아
속상하시다며 선물을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이나 기준 같은 게 있으면
알려달라는 메일이었다.
답변을 어떻게 해드려야 할지 몰라 지금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오늘
소포를 보내면서 그분이 떠올랐다.
부산에 사신다는 것 외에 그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어떤 마음으로 우리 블로그를
찾아오시는지, 아무런 소통이 없었던
상황에서 그분께 선물을 드릴 수는 없었다.
마트를 나와 집 근처 새로 생긴
타이완 레스토랑에 들러 차를 마시며
깨달음에게 이젠 저런 선물들 그만 사라고
했더니 지난주에 블로그 이웃님이 보내주신
소포를 받고 기분이 좋았다고 그래서
자기도 보답하고 싶어 산 거라고 했다.
[ 깨달음. 오늘 보낸 두 분은 어떤 분인줄 알아? ]
[ 몰라, 근데 당신이 아까 얘기해 줬잖아,
어떤 분들이라고.. ]
[ 그랬지, 근데.. 받는 분도 부담 느낄 수 있어..
그니까 이제 안 보낼 생각이야 ]
[ 왜? ]
멀뚱멀뚱 천진한 표정을 하고 묻는 깨달음에게
복잡한 내 머릿속을 설명하기가 벅찼다.
[ 당신은 소포 받으면 좋아?
과자 들어 있어서 좋은 거지? ]
[ 꼭 그런 건 아닌데 그분들과의 관계가 더
가까워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아.. ]
[ 나도 그건 같은 생각이야.. ]
[ 난 항상 누룽지랑 김을 잊지 않고
보내주시는 이웃님 소포가 제일 반가워,
누룽지는 매일 먹는 거니까. .. 그래서 한국에
가면 한번 만나서 식사라도 하고 싶은데
당신이 전혀 만나려고 하지 않잖아 ]
[ ............................................... ]
[ 지난번에 인천분은 부들부들한
잠옷도 보내주셨잖아. 한국에서
온 소포는 보물상자처럼 뭐가 들었는지
모르니까 열어 볼 때마다 두근거리고 즐거워 ]
깨달음은 이웃님을 지역이나 직업으로 분류해
암기하고 있다. 대구에 사시는 분은 대구분,
제주도분, 간호사님, 건축사님 등으로,,
지금 즐거움에 관한 얘길 하는 게 아닌데
좀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도 깨달음은
나와 다른 생각들로 행복한 상태였다.
[ 깨달음, 당신은 막 주고 싶은 게 많은 가 봐]
[ 응, 받았으면 돌려드려야지 ]
[ 맞아, 맞는데,,사람을 너무 믿는 것 같아서 ]
[ 속이는 사람들이 있어? ]
[ 아니..그게 아니라,,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있어서 나는 좀 무서울 때가 있어 ]
깨달음은 직접 블로그를 운영하지 않기에
어떤 일이 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예전에 악성댓글이 많이 달렸다는 건 외에
내가 상세히 말하지 않았기에 모르는 게 많다.
그래서도 저렇게 잊지 않고 선물들을 사고
보내기를 멈추려하지 않는 것 같다.
중간에 있는 난 약간 골치가 아프긴 하지만
안 좋은 일들은 끝까지 모르게 할 생각이다.
우리 블로그는 10년이 넘었지만
참 많은 분들이 그대로 찾아오신다. 물론
떠나신 분들도 많지만 여전히 우리 블로그를
응원해주시고 지켜봐 주시는 분들이 더 많다.
몇 년씩 같은 블로그를 꾸준히 찾아와
힘을 실어주시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더더욱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댓글을 달았다가 바로 지우시는 분들을
볼 때마다 저와 닮은 데가 많으시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일면식은 없지만 달아주시는
댓글이나 메일을 통해 이웃님들을
나름대로 그려보곤 한다.
블로그 생활, 10년을 하다 보면 몇 번이고
닫아버리고 싶은 시련들이 찾아오지만
이 블로그의 주인공인 깨달음이 저리도
행복해하고 이웃님들을 알뜰히 챙기니 난
글쓰기를 계속해야 될 것 같다.
-------------------------------------------------
지난주에 보이스피싱에 관한 글을 올렸는데
제 아이디가 해킹 당한 게 아니였음을
어제 오전 확인했습니다.
걱정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일본인 신랑(깨달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편은 여러모로 부자다 (0) | 2022.03.28 |
---|---|
드디어 남편이 한국어를 시작했다 (8) | 2022.03.07 |
요즘, 남편이 자주보는 유튜브 (0) | 2022.02.07 |
귀찮아도 먹는 건 즐겁다 (0) | 2022.01.03 |
깨서방은 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0) | 2021.12.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