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사람은 또 그렇게 산다
성큼 다가온 가을바람이 반가우면서도 씁쓸하다.
주말엔 침대커버를 바꾸고 여름옷들을
정리했다. 버린다고 버리는데도
2년 넘게 안 입은 채로 그대로인 옷들이
꽤나 있어 한 보따리 싸놓고 책들도 내놓았다.
내 방을 빼꼼히 엿보던 깨달음이
맛있는 거 먹으러
오다하라(小田原)에 가자고 했다.
신칸센을 타면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지만
굳이 거기까지 가야 하는지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묻지 않고 따라나섰다.
신칸센 안에서 깨달음이 자기는
이와시(イワシ 정어리) 사시미를 먹을 거니까
내게는 튀김을 먹어보라고 했다.
와인으로 간단히 목을 축이고
사시미를 한 점 먹어보고는 입에서
녹는다면서 정말 맛있단다.
등 푸른 생선인 고등어, 정어리, 정갱이를
번갈아 먹으며 와인보다는 역시
니혼슈(日本酒)가 더 잘 맞을 거라며
늘 마시던 브랜드를 주문했다.
당신이 맛있게 잘 먹으니까 좋다고 했더니
산 사람은 또 이렇게 맛있는 거 먹으면서
살아가는 거라면서 너무 신경 쓰지 말란다.
아버님 장례식 날, 화장이 끝나는 동안
동생 내외와 근처 소바전문점에서
식사하면서 2시간 남짓 시간을 보내며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날 동생이 맛집이라고 해서
따라갔던 소바집에서 소바를 먹었을 때,
한 입 입에 넣는 순간,
자신의 슬픔 감정과는 달리
너무너무 맛있다고 느껴졌다며
아, 아버지는 지금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
있는데도 살아있는 자식들은 이렇게
맛있는 걸 먹으며 만족해하고
배를 채우는 게 허무하면서도 어떠한 죽음도
살아있는 자들에게 무용지물이구나,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는 걸 알았단다.
자신의 부모, 형제가 죽어 아무리 슬퍼도
시간이 흐르면 남은 사람들은 자연스레
배가 고파오고 잠이 오는 거라고,,
그게 ,,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살아가기 위한 방식이라고,,,
깨달음은 이어서 우리 친정아버지 장례식 때를
얘기했다. 상조회 음식이 유난히 맛있어
조문 온 사람들도 몇 번이고 리필해서 먹고
가족들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며
자기도 이번에 소바를 먹으면서
산 사람은 또 이렇게 살아가야 하지
않겠냐 싶었단다.
[ 그때, 소바 먹고 나서 안주거리
몇 개 시켜 술도 한 잔씩 마셨잖아 ]
[ 그랬지.. 술을 한 잔 하고 싶더라고....]
[ 근데,, 당신 유골함 들고 있을 때 너무
슬퍼 보이더라..,]
[ 눈물이 났지.. 고맙기도 하고,,
또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도 하고,, 그랬어,
이제 괜찮아.. 이렇게 맛있는 거
먹으러 여기까지 왔잖아 ]
내 앞에서는 마음 가는 대로 감정이
시키는 대로 해도 괜찮다고 했는데
정말 아무렇지 않단다.
우린 따끈한 국물로 마무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커피숍에서 달달한 것들을 주문하더니
내게 먹어보라며 케이크에
생크림을 발라 입에 넣어주면서
살아 있는 동안, 맛있는 거 먹으면서
재밌고 행복하게 살자는 깨달음.
나도 대답 대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떠
넣어줬다.
================================
삶과 죽음이 종잇장처럼 가볍게
느껴졌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저희는 살아 있는 동안, 가족은 물론
내 주변 사람들에게 더 친절하고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실천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염려해주신 덕분에 깨달음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입니다.
아버님께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을 한 만큼 또 바삐 움직이겠죠.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아낌없이 주신
격려와 응원에 보답하며 살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