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남편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8월 15일, 이곳은 추석이었지만 우린
평소처럼 출근을 했다.
실은 11일부터 연휴였고 언제나처럼
공휴일에 연연하지 않고 우린
자신의 시간에 충실했다.
어딘가를 가고 싶은 마음보다
질식할 것 같은 폭염에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았던 게 컸었다.
몸에 수분을 모두 말려버릴 듯 내려쬐는
태양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집에서
보양식을 먹으며 나름의 피서를 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마음 한켠엔 언제
요양원에서 전화가 올지 몰라 대기조처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고
이래저래 심란한 마음으로 놀 기분이
아니였음이 더 솔직할 것이다.
매일처럼 전화를 하시고 곧 죽는다, 곧 죽는다
하시던 아버님이 급하게 입원을 하셨다.
퇴원하시고 지금 안정을 취하고 있는 중이라고
연휴 시작되던 날 전화가 왔었다.
그리고 어젯밤, 면회를 허락한다는
연락을 받고 바로 시골로 내려가기 위해
신칸센을 탔다.
코로나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은
찾아보길 힘들만큼 사람들은 아침을
먹느라 각자 테이블에 도시락을 꺼내놓고
즐겁게 얘길하며 식사를 했다.
우린, 조심하자는 차원에서 식사는
집에서 해결하고 신칸센 안에서는
음료만 마시기로 했다.
아무리 조심해도 걸릴 사람은 걸리고
제 멋대로 소독도 하지 않고 관리를 안 해도
안 걸린사람은 안 걸린다는 복불복 같은
얘기들이 떠돌고 있지만 그래도
걸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해서인지
난 신칸센 안에서 마스크를
끝까지 벗지 않았다.
[ 깨달음, 지난번 아버님이랑 통화할 때
평소와 같지 않았어? ]
[ 그랬지...]
[ 근데 왜 갑자기 입원하셨던 거야? ]
[ 기침이 심해서 폐렴 증상이 있었다네 ]
[ 지금은 어떻게 안 좋은 거야? ]
[ 퇴원후부터 휠체어에도 못 앉고
그냥 누워만 계신다고 그러더라고,,
그리고 완전히 이유식처럼 죽만 드신대 ]
오후가 돼서야 시골에 도착해 바로
요양원에 들어서자 간호사 두 분이 우릴
기다리셨는지 한 분은 코로나 검사를
또 한 분은 신청처 작성을 도와주셨다.
코에 면봉을 넣어 검사를 하는데
깨달음은 아주 엄살스럽게 몇 번이고
아프다며 그만 넣으라고 초딩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알코올을 잔뜩 뿌리고 면허용
가운을 걸치고서야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 아버지, 나 왔어, 눈 떠 봐요,
아버지, 깨달음 왔다니까 , 졸려요? ]
오른쪽엔 영양제 주사를 맞고 있었고
코에 산소 줄이 끼워 있었다.
두어 번 아버님을 불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자
간호사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식사는 쌀죽이긴 하지만 잘 드시는 편인데
혼자서 휠체어에 이젠 못 앉으시고
대소변도 자력으론 힘든 상태이고
하루종일 주무시는 시간이 늘었다고 했다.
시어머니가 거쳐가셨던 과정이 그대로
반복되는 듯해서 듣고 있는 내내
난 오버랩되는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지 않으려 도리질을 했다.
15분의 면회시간이 끝나갈 무렵, 아버님이
눈을 떠 깨달음과 대화를 했고 내가 손을
잡아드리자 눈물을 흘리셨다.
[ 아버님, 내년까지 버티시기로 저랑
약속했잖아요 ]
[ 그래.. 그래야지..]
[ 뭐가 드시고 싶으세요? ]
[ 응, 비와(びわ-비파 열매)가 먹고 싶구나]
[ 알았어요. 제가 바로 보내드릴게요 ]
아버님 방을 나와 우린 담당 간호사와
입원 전후 상태와 앞으로의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보고를 받고 얘길 나눴다.
[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나빠 질 수 있나요? ]
[ 고령이셔서 회복이 늦는 것도 있고,,
그래도 식사를 입으로 하시려는 걸 보면
많이 좋아진 상황입니다 ]
깨달음은 어머님 때처럼 영양제를 언제까지
맞는 게 좋은지, 그리고 언제쯤 마지막을
준비하는 게 좋을지에 관해서도 물었다.
그렇게 20분정도 얘기를 마치고
관계자분들께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나누고 바로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버스와 신칸센을 갈아 타고 다시 도쿄로
돌아온 우린 늦은 점심 겸, 저녁을 먹었다.
빈 속에 마신 술탓인지 깨달음 얼굴이
바로 빨갛게 달아올랐다.
난 아무 말 없이 술잔을 채웠다.
[ 아버지를 보는데 엄마 생각이 났어,,
엄마는 많이 고통스러웠는데... 아버지는
아직까지 먹고 싶은 게 있는 걸 보면
올 해는 무사히 버티실 것 같지? ]
내게 묻는 건지, 자신에게 묻는 건지
알 수 없는 톤으로 혼잣말처럼 말끝이 흐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깨달음 손을
가만히 잡고 걸었다.
내가 지금 깨달음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