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하면 되지? ]
내가 설명하기도 전에 깨달음은 장갑을 끼고
김치에 속을 넣고 비비기 시작했다.
[ 진짜 잘 하네...]
[ 이젠 김치담기는 식은 죽 먹기야,
한국 남편들보다 내가 더 잘 할걸? ]
[ ........................ ]
[마지막 겉장으로 이렇게 둘러씌우면 되지?
내가 여기 깍두기랑 오이, 모두 버무릴테니까
당신은 다른 일 해~]
깨달음이 이렇게 솔선수범해서 일을 시작한
것은 다름이 아닌 다음날, 우리집에서
한국요리 홈파티가 있기 때문이였다.
해년마다 해왔던 홈파티를 올 해도 어김없이
신년회라는 이름으로 하게 되었다.
이틀전부터 코리아타운에서 장을 봐 왔고,
파티 준비를 시작하고 있다.
어제는 사다 놓은 마늘도 깨끗이 까고
주방에 있는 칼도 갈아주었다.
원래 집안일을 잘 도와주는 편이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나 혼자서 손님을 치르는 게 힘들다는 걸 알고,
또 자기 회사 직원들과 관련자들이 초대
되다보니 자기가 뭔가 일을 많이 해야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였다.
파티날, 아침 일찍 창문도 말끔히 청소를 하고,
컵과 그릇들도 꺼내 반짝반짝 운이나게 닦은
다음 옷을 갈아입고 테이블 세팅을 했다.
오후, 4시, 손님들이 모두 모였고,
깨달음은 시원한 막걸리를 한 잔씩
나눠 드리며 올 한해도 잘 부탁한다는
인사와 함께 건배를 외쳤다.
지금 설계중인 호텔의 진행상황과
투숙객들의 의견들에 관한 얘기들이 오갔고
올해도 직원들 해외연수를 갈 생각인데
어디가 좋은지, 각자 가고 싶은 곳들을
자유롭게 얘기했다.
건축학적으로 볼거리가 많은 곳은 싱가폴이나
중국의 상해 건물들이 볼만하다고 했고
또 다른 직원은 베트남이나 태국에 가고 싶다는
의견이 나온 것 같다.
나에게도 어디가 좋겠냐고 물었지만 주방에서
다음에 내 놓을 잡채와 해물파전을 만드느라
듣는 둥 마는 둥 정신이 없었다.
부들부들 한 갈비찜이 맛있다며
여직원이 레시피가 꼭 알고 싶다고 해서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깨달음이
갑자기 판타스틱 듀오를 틀어달라고 했다.
[ 왜? ]
[ 한국 가수들이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지
들려 주고 싶어서 그래..]
[ 지금 바쁘잖아,,]
[ 그래도 잠깐 틀어 줘..]
그렇게 시작된 한국 TV방송에 대해 깨달음이
자기가 아는 모든 프로들을 설명하자
두달전 새로 입사한 여직원 야마모토 상이
케이팝과 빅뱅, 그리고 한국 오락프로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자주 본다고했다.
그러자 이 때다 싶어 깨달음이 아는 척을 하며
사랑짱이 어릴적 예뻤는데 지금은 별로고
대한,민국, 만세 아빠가 자식들을
아주 엄하게 잘 키우더라, 지금은 이 동국의
대박이가 제일 귀엽다고 하자
야마모토 상이 자기는 타블로가 나올 때부터
봤다고 지금껏 출연했던 꼬마들 이름을 술술 대자
깨달음이 마치 게임에서 진 사람처럼
갑자기 입을 다물고 그녀의 얘기를 들었다.
[ 저 가수 분도 알아요, 이 선희씨죠? ]
깨달음이 머뭇거리며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 네..이선희씨 맞아요, 야마모토 상은
한국에 대해 잘 아시나 봐요 ]
[ 실은, 저 케이팝뿐만 아니라 한국 팬이에요 ]
깨달음이 처음 듣는 얘기라며
회사에 들어온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아서
전혀 파악하지 못했고 회사에서는 그런 사적인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괜시리 멋쩍어 했다.
얘기를 나눠보니 야마모토 상이야말로
원조 한류팬으로 한국음식도 깨달음만큼
잘 알고 있었고 한국여행도 1년에 한번씩
꼭 가서 일본인들이 거의 없는 장소와 먹거리를
찾아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옆에서 깨달음이 갑자기 홍어는 먹어 봤냐고
묻자, 그런 음식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아직
먹어보진 못했고 산낙지를 많이 먹었다고
답했고 깨달음이 전라도 음식에 대해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들을 풀어놓았다.
난 둘의 대화를 주방에서 들으며
닭이 잘 삶아졌는지 확인을 하고 적당히
잘 퍼진 녹두와 함께 닭백숙을 내 놓았다.
모두가 함성을 지르고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으며 질문이 쏟아졌다
[ 이게 무슨 요리에요? 처음 봤어요..]
[ 닭한마리라는 요리 아닌가요? ]
[ 삼계탕은 많이 먹어봤는데 이건 처음 봐요]
[ 이게, 닭백숙이라고 녹두를 넣고 삶은 건데,
삼계탕하고는 차원이 다른 거야~ 한국에 가면
백숙전문집이 많이 있는데 도심하고 좀
떨어진 한적한 곳에 가정집처럼 생긴 곳에서
닭을 키우고 바로 잡아서 이렇게 백숙을 해주는데
나도 처음 먹어보고 좀 놀랬어.
근데, 맛이 삼계탕보다 훨씬 맛있어,
닭고기도 맛있지만 녹두죽이 일품이지 ]
내가 하려는 설명을 깨달음이 옆에서 다 해버렸다.
[ 너무 맛있어요..입안에서 녹아요,
닭이 어쩌면 이렇게 부들부들하데요..
녹두하고 궁합이 환상인데요,
이 나무처럼 생긴 게 뭐에요? ]
한방재료를 설명하다 삼계탕용 속재료를
판매한다고 보여줬더니 어디서 파는 건지
남자 직원들까지 아주 흥미롭게 속재료를
들여다보고 사진을 찍었다.
[ 그래서 한방 냄새가 나는 거군요 ]
[ 이건 찹쌀이죠? 찹쌀에 녹두향이 배였어요 ]
[ 근데,,만들기가 힘들지 않아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
[ 이 전용 속재료를 넣고 마늘도 좀 넣고 40분에서
1시간 삶아주시면 돼요. 닭의 크기에 따라
조리시간이 차이가 있지만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 일본에서도 속재료를 파나요? ]
[ 코리아타운에 가면 팔 거에요, 저는 한국에서
가져왔어요, 혹 필요하면 제가 구입해 드릴게요 ]
[ 아니에요, 저희 이번주에 바로 코리아타운
가기로 지금 약속했어요.히히 ]
녹두죽을 음미하면서 몇 번이나 맛있다고
좋아하던 직원들이 부끄러운 듯, 리필을
원한다며 빈그릇을 내밀었다.
다들, 맛있게 음식을 먹으며 올해 목표가
뭔지에 관한 대화들을 나누며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준비한 냉면이 있는데
드실 분들 있냐고 물었더니 먹겠다며
다들 손을 들었다.
배는 불러도 면종류는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며
그대신 양을 S사이즈로 해달라고 했다.
면의 양을 좀 줄이고 삶은 달걀과 수육,
김치까지 올려 내 놓았다.
[ 이 국물에,,도대체 뭘 넣은거에요? ]
[ 내가 냉면을 좋아해서 꽤 많은 곳에서 먹어
봤는데 이건 완전 차원이 다른데요? 이 국물을
어떻게 만든 거에요? 알고 싶어요 ]
[ 지난 12월, 한국 동생집에서 동치미를
가져왔는데 그 국물을 넣었어요]
[ 동치미가 뭐에요? ]
내가 설명을 하고 있는데 깨달음이 얼른
이미지 사진을 검색해서 직원들에게 보여주며
겨울에 김장김치 담듯이 동치미도 이렇게
겨울철에 담는 김치류의 일종이며 항아리에
넣고 숙성을 시키고, 이 국물이랑 찐고구마를
먹으면 그것 역시도 환상적이라고
친절히 설명을 했다.
(다음에서 퍼 온 사진)
[한국은 정말 다양한 김치가 있네요.
.난 이 무우로 만든 동치미를 처음봐요 ]
남자직원의 이 말에 다들 한국에서 먹어봤던
김치종류 얘기가 나왔다.
[ 나는 언젠가 한국 식당에서 반찬으로
나온 파김치랑 색이 갈색으로 변한 고추를
양념으로 버물린 고추김치 같은 걸 먹어봤어요 ]
고추장아찌를 얘기하는 듯 해서 장아찌에 관한
설명도 내가 잠깐 했다.
[ 나는 갓김치랑 깻잎김치가 향이 있어 좋아해요 ]
[ 작은 무가 달린 김치도 먹어 봤어요 ]
[ 나는 설렁탕 먹을 때 나오는 큰 무김치를
제일 좋아해요. 근데 일본 슈퍼에서는 안 팔아요 ]
[ 한국에는 김치종류가 100가지가 넘는다고
하던데 그게 진짜인가 봐요.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김치류는 배추, 무우, 오이가
기본인데 다른 야채로 다양한 절임음식을
만드는 걸 보면 역시 절임문화뿐만 아니라
식재료를 응용하는 게 아주 발달된 것 같아요.
아까 저 닭백숙도 그렇고,
녹두를 넣는다는 게 너무 신선하고 좋았어요,
오늘 많이 배우고 가네요 ]
[ 이 냉면국물이 완전 중독성이 있네요..]
[ 절대로 일본에서는 맛 볼 수 없는 맛이에요]
[ 이젠 갈비집에서 냉면 못 먹을 것 같아요
이걸 먹어봐서...어떡해..아껴 먹고 싶어요~]
그렇게 냉면도 4명이 리필을 했고
모두 다 배가 너무 나와서 술이 안 들어간다며
다리를 펴도 되겠냐며 내게 양해를 구했다.
그렇게 즐거운 홈파티를 끝낸 시간이 저녁 9시,
4시에 시작해 5시간을 먹고, 마시고, 즐겼다.
다들 돌아간 뒤 난 설거지를 하고
깨달음은 테이블을 정리하며 내게 말을 걸었다.
[ 야마모토 상이 한국을 잘 아는 것 같애.
음식도 그렇고, 연예프로까지...근데, 다들
젊어서 그런지 그렇게 잘 먹을지 몰랐어.
닭백숙이랑 녹두죽도 깨끗이 다 비웠잖아,,..
이젠 삼계탕이랑 냉면은 우리집 아니면
안 먹겠다고 할 정도니,당신이 수고했어,고마워~]
[ 아니야,,다들 맛있게 먹어 주니까 나도 좋았어,
조금 힘들긴해도 이렇게 홈파티를 하면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애..]
[ 그래서 다들 우리집에 오고 싶어 하잖아,,
근데 내가 아무에게나 먹게 하고 싶지 않아서
맛을 아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거야,
그래야 한국요리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으니까 ]
아무튼, 당신 너무 고생했고 진짜 맛있었어~]
주방에 모든 설거지를 끝내고 나와보니 깨달음은
피곤해서 그대로 뻗어 잠이 든 건지,
자는 척을 하는 건지 알수 없었지만 꼼짝않고
한참을 저 자세로 누워있었다.
매해 일본인들을 초대해 한국요리 홈파티를
하면서 느끼는 건 음식문화만큼은 국적을 떠나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과
굳이 여러말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여직원 두명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자기네들과
한국여행을 함께 해주라는 것과 한국을 너무
좋아하는 자기네 친구들에게 닭백죽 만드는
요리강좌를 열어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다.
냉냉해진 한일관계가 계속되면서 한일커플로서
가슴 한켠 답답함이 자리하고 있지만 이렇게나마
음식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올해도 가져본다.
손님을 초대하는게 조금은 피곤한 일이지만
그래도 그만큼 보람이 있는 일이기에
우리 부부는 내년에도 계속해서
홈파티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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