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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224

2023년을 정리하던 날. 주문한 물이 오고 나서 한 시간 후 화장지와 각종세제가 도착했다. 티브이에서는 아침부터 연말 대청소를 어떻게 하면 쉽고 간편하게 할 수 있는지 그 노하우를 알려준다며 청소업체 프로들이 나와 청소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남들이 하듯이 연중행사처럼 해왔던 나는 올해 대청소를 하지 않을 생각이다. 2주 전부터 조금씩 해둔 덕분에 굳이 대청소라고 할 게 없었고 오늘은 그 외에 할 일들이 많았다. 일본인 친구들에게 연말선물로 보낼 김치를 버무리고 깍두기와 창난젓, 그리고 아이가 있는 집에는 오징어채도 달달하게 볶았다. 집에 챙겨두었던 아이스박스에 야무지게 묶어 챙겨 넣은 뒤, 자전거 앞 뒤에 싣고 우체국으로 달렸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다 깨달음에게 카톡이 왔길래 지금 우체국이라고 사진을 보냈더니 자기 거래처.. 2023. 12. 29.
아내가 바람이 났단다 깨달음 회사는 창립 때부터 대학 후배들과 함께 일을 해 왔다. 사무실을 요코하마에서 시부야로 옮겨 오면서 후배들을 고문으로 남기도하고 모두가 독립을 했다. 그들중에 깨달음과 가장 오랜 시간 함께 일을 해 온 마쯔다 상이 요즘 많이 힘들다. 나와 동갑인 마쯔다 상이 올 초에 이혼을 하고 시골에서 요양 같은 걸 한다고 그랬는데 지난달부터 부쩍 깨달음 회사에 나타나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가곤 했단다. 딸 두명도 일찍 시집을 가서 혼자 남아도는 시간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사무실에서 직원들 일을 같이 하기도 하고 맛집에서 피자를 서너 판씩 사 와서 먹기도 했단다. 그런 후배 모습이 안쓰러워서 두어 번 술자리를 가졌다는데 깨달음 말에 의하면 이혼 후 극심한 우울증이 생긴 것 같았다며 불면증에 시달려 수면제 없.. 2023. 12. 7.
해외 거주자만이 느끼는 것들 한 달 전부터 예약을 잡지 못했다. 집 앞에 있는 헤어숍을 자주 이용 했는데 하필 오늘은 자리가 없었다. 직접 전화를 해 어떻게 짜투리 시간이 남아 있지 않나 물었는데 내 담당 스타일리스트가 파마할 시간은 나질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예약이 가능할 곳을 찾아봤더니 한국 미용실이 한 곳 있었다. 코리아타운까지 가야 하는 게 약간 번거롭긴 했지만 오늘밖에 시간을 낼 수 없어서 예약을 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일본어로 말을 걸어와서 나도 그냥 일본어로 대답을 했다. 예약한 코스를 확인하고 미용사분이 오셔서 처음이냐, 어떻게 알고 오셨냐라는 통상적인 질문을 하셨다. 약 3시간 정도 걸린다며 차를 한 잔 주시면서 혹시나 배가 고프면 편하게 말하라고 했다. 나는 향긋한 둥굴레차를 마시고 내 머리엔 파마롤이.. 2023. 11. 27.
남편도 바꾸고 싶을 때가 있다. 이케부쿠로(池袋)에서 열린 전국 물산전(物産展) 해년마다 갔던 터라 올 해도 초대장이 왔길래 갔는데 기분 탓일까 해를 거듭할수록 방문객이 줄어들고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맛볼 수 있는 특산물은 물론 여기저기에서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는 맛집 중에 맛집들이 모였는데도 방문자들은 출품자들보다 적었다. 이벤트 관계자와 도우미가 어색하게 서 있고 푸드코트에도 자리가 많이 비어 있었다. [ 이러다 이 행사도 곧 문을 닫겠는데...] [ 응,, 맛있는 게 많이 있긴 한데.. 뭐가 문제일까...] [ 홍보가 부족한 것도 있고 다른 이벤트에 비해 끌림이 없다는 거겠지 ] 우린 달달한 몽블랑을 사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아마다덴키(ヤマダ電機)로 옮겼다. 지난번에 가스레인지가 고장이 나서 바꿨는데 이번에는 화장실 비대기(ウォ.. 2023. 11. 20.
내가 일본에 살면서 생긴 습관들 영화 [ 理想郷]를 봤다. 한국에서는 [더 비스츠 ]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스페인과 프랑스의 합잡영화인 이 영화는 네덜란드 커플이 스페인 시골 산토알라에 정착하면서 일어났던 일을 영화한 것으로 2016년 상영된 다큐 [Santoalla]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2022년 스페인 고야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도쿄 국제 영화제에서도 3관왕을 차지한 수작이다. 영화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지식인인 프랑스 부부는 평화롭고 소박한 삶을 위해 스페인 북서부 마을로 이사를 오고 유기농 작물을 팔며 여가시간을 즐긴다. 하지만 마을에 풍력발전기를 설치하는 문제로 주민과 반대의견을 내며 이 마을의 토착민 형제와 갈등이 시작된다. 시골의 텃새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라고 하기엔.. 2023. 11. 17.
일본인들 사이에는 없다는 그것 내가 변해가고 있는 건지,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건지 내 자신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철을 갈아타기 위해 서 있는데 한국인 관광객들이 맞은편 선로에서 들어오는 전철을 사진에 담으면서 야마노테선(山手線)은 서울의 2호선 지하철과 같은 거라며 가이드북을 보기도 하고 카메라 앵글을 바꿔가며 사진 찍느라 분주했다. 이분들은 서울에서 오셨나라는 아무 뜻도 의미도 없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우에노(上野) 의 아메요코(アメ横)는 한국의 남대문 시장같은 곳인데 오늘 난 이곳에서 약속이 있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만나자고 먼저 연락을 하는 일이 좀처럼 없는데 요즘 변해가고 내 감정의 흐름에 사고를 맡긴 채로 실행에 옮기고 있다. [ 케이짱, 너무 오랜만이다. 연락 줘서 진짜 고마워 ] [ 그냥,,갑자기 잘 계시나.. 2023. 11. 1.
남편이 혼밥을 싫어하는 이유를 알았다 퇴근길에 여행사에 함께 들린 우린 저녁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줄 서 있는 중화요리집에 따라 섰다. 5시에 영업이 시작됐는데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만석이 되었다. [ 이 집, 유명 한가봐,,] [ 그런 가봐,,] 이곳에 올 때마다 그냥 스쳐 지났던 곳인데 중화요리 노포였다. 모든 손님들이 우리 빼놓고 다들 단골인지 안부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회사에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을 주인아저씨께 소개하기도 했다. 2층까지 만석이라고 들어오는 손님에게 미안하다며 아저씨가 두 손을 모아 사과를 했다. 우리가 앉은 카운터석은 의자가 고정이 되어 있어 옆 사람과의 간격을 내 맘대로 조절할 수 없었다. [ 깨달음, 요즘 인플루엔자가 유행이야, 마스크 꼭 쓰고 다녀 ] [ 다음 주에 접종 예약했어. 그거 맞으면 돼 ] [ 그래.. 2023. 10. 3.
10년이면 많은 게 바뀐다. 2주 전부터 가스레인지 상태가 좋지 않았다. 3구 중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레인지가 접촉불량인지 점화되지 않았다. 기사분 출장료 4천엔과 체크사항을 적어둔 메모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난 일 때문에 나왔고 깨달음에게 맡겼다. 일하고 있는 중에 사진이 몇 장 날아왔다. 기사님이 다 뜯어보고는 고치는 단계를 넘었다고 그냥 교체하라고 했다며 티브이처럼 가스레인지도 수명이 10년인데 우리 가스레인지는 13년 전 모델이라고 했단다. [ 깨달음, 이번 기회에 IH로 바꾸면 어떨까? ] [ 깔끔하고 좋긴 한데 지진이 나면 전기가 바로 끊겨서 아무것도 못해. 그니까 가스가 좋아 ] [ 그래?... 나 IH로 바꾸고 싶었는데..] [ IH로 바꾼 사람들 휴대용 가스버너를 두대씩 상비해 놓은데.. 지진 대비용으로 ] 난 .. 2023. 9. 16.
이제부터 김치는 사먹기로 했다. 김치 택배가 왔다. 깨달음 거래처에서 보내온 것인데 재일동포라고 했다. 일본에서 살면서 김치 선물을 받아본 건 처음이라 약간 얼떨떨한데 깨달음에게 거래서 최사장이 추석선물 겸 공사 부탁한다고 겸사겸사 인사차 보낸 것 같다고 했다. 김치 회사 이름이 나카요시다. 이 김치의 수익금은 치바조선초등교에 지원금으로 쓰이고 있다는 내용과 사진, 편지지가 들어있고, 내용물은 배추, 깍두기, 무말랭이, 진미채, 창난젓, 냉면이었다. 모두 반찬통에 담으면서 하나씩 먹어봤더니 김치가 아주 상큼하고 간이 딱 맞아 입맛을 돋우는 맛이었다. 깍두기도 고소한 젓갈냄새가 나면서 상당히 맛깔스러웠다. 진미채는 내 입에 꽤나 달았고 창난젓은 늘 먹던 맛과 별반 차이가 없이 양념맛이 좋았다. 저녁식사 때 반찬으로 내놓은 걸 조금씩 맛을.. 2023. 9. 11.
친구가 없는 사람들의 특징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코로나 핑계로 돌리는 것도 우스웠다. 약속날짜도 내가, 약속장소도 내가 결정해 주길 원해서 예약을 하고 좀 이른 저녁에 그녀를 만났다. 꼭 필요할 때만 연락을 하는 그녀를 보는 날도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했다. 보자마자 호들갑을 떨며 내 팔을 잡아 끄는 것도, 앉자마자 자기 얘길 하며 감정이 격해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는 것도 웃을 때 손뼉을 치는 것도 내가 깨달음과 어떻게 만났는지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묻는 거마저도 변함이 없었다. 지난번 만났을 때 했던 말들은 기억하지 못한 채 자기 말만 하는 그녀는 그대로였다. [ 케이야, 너 다리는 다 나았어? ] [ 다리? 골절상 입은 거 벌써 2년전이야..] [ 아,,그랬지..내가 깜빡했다 ] [ 뭘 깜빡이야, 6개월전에 만나.. 2023. 9. 5.
모든 부모는 자식보다 더 아프다 오랜만에 연락을 주셔서 솔직히 반가웠다. 그녀의 가족이 가와사키(川崎)로 이사를 했고 코로나 때문에도 볼 수가 없었다. 자기 집 근처에 맛있는 고깃집에서 보자길래 두말없이 약속을 잡았다. 가게 카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녀는 5년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서 있었다. [ 오랜만이에요, 스즈키(鈴木) 상 ] [ 케이짱,, 오랜만이야~ ] 습관적으로 스즈카 상이라고 뱉고 나서야 낫짱으로 불러라고 했던 게 떠올랐지만 나보다 연배인 그녀를 친구처럼 부르긴 좀 어색했다. [ 스즈키상, 근데 왜 이렇게 예뻐졌어요? 살이 많이 빠지셨네요 ] [ 그래? 다이어트 좀 했지 ] 우리 맛있다는 소고기의 각종 부위를 주문하고 그간에 못다 한 얘기들을 풀어놓았다. 난, 무엇보다 그녀의 아들 소식이 궁금했다. 자폐증이 있는.. 2023. 8. 30.
후쿠오카는 먹거리 천국이다 후쿠오카 둘째 날, 전날 숙취가 남은 우린 아침부터 나가사키 짬뽕으로 시린 속을 달랬다. 마신 양으로 따지면 적었지만 맥주, 소주, 니혼슈, 와인까지 섞어먹은 탓인지 아침이 개운하지 않았다. 말없이 짬뽕 국물을 먹으면서도 깨달음은 오늘이 마지막이니 먹방을 제대로 해보자면서 뭘 먹을 건지 일단 대충 목록을 말했다. 식사를 하고 나와 쇼핑센터로 옮겨간 우린 깨달음이 새로 사고 싶다는 심플한 샌들을 사고 약간의 쇼핑을 더했다. 물가가 도쿄에 비하면 엄청 싸다면서 좀처럼 쇼핑에 관심 없는 깨달음이 적극적으로 텀블러와 메모장, 필기도구 그리고 비타민제까지 이것저것 구매했다. 그리고 전날 리스트에 올려두었던 나카스 리버크루즈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30분 정도 후쿠오카 시내를 도는 코스로 저녁 6시 이후.. 2023. 8. 25.
남편이 부른 한국 노래의 진심 추석연휴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말 그대로 휴식을 취했다. 늦더위가 사람을 지치게 한 탓인지 우린 연휴라지만 무언가를 할 의욕마저 상실해 버린 것처럼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뒹굴뒹굴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가스불 켜고 음식을 하는 것도 사람을 지치게 하다 보니 전자렌지에 돌려서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이나 외식을 하면서 연휴를 보냈다. 그러다 우연히 티브이에서 나온 모츠나베(もつ鍋-곱창전골)를 같이 보다가 곱창 좋아하는 깨달음이 도저히 못 참겠다며 후쿠오카(福岡)를 가자고했고 마침 검색해 보니 바로 갈 수 있는 티켓이 있어 속옷만 몇가지 캐리어에 구겨넣고 바로 공항으로 달렸다. 예전엔 미리 계획 세워 갔던 여행을 요즘은 기분 내키는 대로, 몸이 움직이는 대로 시간 되는대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본.. 2023. 8. 21.
시부모님 1주기, 모든 걸 덮었으면 좋겠다 늘 그렇듯 우린 아침 일찍 신칸센을 탔다. 전날 잠을 설친 탓인지 아침부터 더운 탓인지 유쾌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서방님에게서 시부모님 1주기를 한다며 날짜를 알려온 온 것은 2주 전이었다. 우리 스케줄도 묻지 않고 통보만 해 오는 서방님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냥 그러러니하자 했다. 시부모님도 두 분 모두 돌아가시고 서방님을 볼 날이 앞으로 얼마나 있겠냐 싶은 것도 있고 언제가 될지 모를 마지막까지 가족으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는 나만의 인간관계 마무리를 유지하고 싶었다. 나고야에 도착해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뛰는데 등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깨달음도 땀 범벅이 된 채로 버스에 올라타 바로 쓰러지듯 잠을 청했다. 배가 고파왔지만 점심을 먹을 시간이 없었고 버스안에서 뭘 먹는.. 2023. 7. 10.
우리의 노후를 남편이 결정했다 아침부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며칠 전 성남 모란시장 장날에 남편과 함께 다녀왔는데 그날 하루종일 내 얘길 했었다며 날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되어간다고 허무하다며 푸념을 늘어났다. 우리 친구들 중에 가장 먼저 할머니가 된 이 친구는 올 해 초, 30년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전업주부를 하기 시작했다. 일 손을 놓지 않고 살았던 탓인지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게 어색하기만 하다더니 손녀딸 돌보느라 딸 집에 왔다 갔다 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가버리고 만단다. [ 너랑, 그때 팥죽 먹었잖아, 이번에는 그 옆집에서 먹어봤는데 더 맛있는 거 있지..] [ 칼국수는 안 먹었어? ] [ 남편이 먹었어. 막걸리도 한 잔 하고 ] [ 재밌었겠다 ] [ 우리 남편이 일본 한 번 가보고 싶다고 노래를.. 2023. 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