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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커플221

일본인에게 크리스마스날은,,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리러 온 깨달음이 헌금함에 서서 지폐를 조심스레 넣었다. 다른 교인들은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 봉투에 헌금을 넣는데 자기는 그냥 돈이 보이게 넣으려니 왠지 쑥스러웠다며 봉투를 준비해 올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매주 나를 따라 교회에 참석하는 깨달음은 설교시간에 자주 졸아서 내가 도중에 몇 번 깨우곤 한다. 오늘도 변함없이 설교가 시작되자 꾸벅꾸벅 졸다가 내 눈치를 한번 보고는 참으려고 애를 쓰다가 다시 또 졸았다. 예배를 마치고 식사를 하기 위해 오다이바로 이동하는 길에 캐롤이 울려 퍼지자 깨달음은 콧노래를 부르며 흥얼거렸다. 크리스마스다운 분위기를 어디서 가장 많이 느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택했다며 내가 뷔폐를 썩 좋아하지 않지만 예약되는 곳이 이곳밖에 없었다며 음식보다 와인이 괜찮.. 2023. 12. 25.
한국에서도 나온 남편의 고질병 3박 4일 서울에 있는 동안, 깨달음은 아침식사를 뚝배기집에서 해결했다. 첫날 아침에 자기는 된장찌개를, 나에게는 김치찌개를 주문하라고 해서 두 가지 맛을 봤다. 둘째 날, 자기는 순두부를 시키고 나에게는 또 김치찌개를 시키기를 원했다. 된장, 순두부, 김치찌개를 다 먹을 요량으로 자기 입맛에 맞은 주문을 부탁했다. 그렇게 둘째 날, 식사를 하고 있는데 전날과 마찬가지로 여기저기서 일본어가 들렸고 그 날도 일본인으로 가득했다. 밖에서 줄을 서 있는 사람들도 일본인이었다. 우리가 반쯤 먹어갈 때쯤 아들, 딸과 같이 온 일본인 가족 4명이 옆 테이블에 앉았고 그들은 번역기를 돌려가며 우렁 된장찌개의 우렁이 뭔지 얘기를 하다가 순두부 2개 된장찌개 2개를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고 각자 먹고 있는데 깨달음이 힐.. 2023. 12. 19.
한국 시간은 늘 빠르다 공항에 도착해서도 깨달음은 거래처에 전화를 하느라 바빴다. 난 옆에서 통화가 끝나기를 멍하니 기다렸고 그런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배터리를 주라고 왼손을 내밀었다. 핸드폰에 배터리를 연결해 다시 거래처에 전화를 하기도 하고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통화가 끝나고 팩스를 한 장 보내고 싶다고 공항 내를 두리번거리다 호텔이 확실할 것 같다며 호텔로 이동했다. 호텔에 들어와서도 깨달음은 다시 일처리를 하느라 일본에서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시간을 보냈고 난 깨달음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파스타집에서 미리 대기를 하고 있었다. 예약 없이 들어가기 힘들다는 곳이다 보니 줄을 설 수밖에 없었다. 깨달음이 일을 마무리하는 시간과 얼추 비슷하게 자리가 났고 늦은 점심으로 파스타를 먹었다. 기존에 먹어봤던 파스타.. 2023. 12. 14.
역시, 남편은 사장님이었다. 청소를 하고 잠시 음악을 듣고 있다가 얇은 코트만 걸쳐 입고 집을 나왔다. 창 밖으로 비친 가을 하늘이 너무 맑아서 그냥 내버려두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깨달음은 주말에도 열심히 회사에 나가 입원 중인 직원의 일거리를 처리하느라 평일처럼 출근을 했고 난 온전히 혼자서 주말을 맞이했다. 나 혼자 가는 곳은 항상 루틴처럼 정해진 코스와 장소이지만 난 그래도 집에서 가까워서인지 마음이 편하다. 오다이바(お台場)는 바다라고 하기엔 바다스럽지 않은 곳이긴 한데 날이 좋아서인지 스텐드업 패들을 하고 있었다. 수질이 안 좋기로 유명해서 물에 들어갈 생각을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2년 전, 오키나와(沖縄)에서 카누를 탔을 때 그 짜릿함이 상기되어서인지 갑자기 나도 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 주변을 둘러봤더니 스.. 2023. 10. 29.
친구가 없는 사람들의 특징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코로나 핑계로 돌리는 것도 우스웠다. 약속날짜도 내가, 약속장소도 내가 결정해 주길 원해서 예약을 하고 좀 이른 저녁에 그녀를 만났다. 꼭 필요할 때만 연락을 하는 그녀를 보는 날도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했다. 보자마자 호들갑을 떨며 내 팔을 잡아 끄는 것도, 앉자마자 자기 얘길 하며 감정이 격해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는 것도 웃을 때 손뼉을 치는 것도 내가 깨달음과 어떻게 만났는지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묻는 거마저도 변함이 없었다. 지난번 만났을 때 했던 말들은 기억하지 못한 채 자기 말만 하는 그녀는 그대로였다. [ 케이야, 너 다리는 다 나았어? ] [ 다리? 골절상 입은 거 벌써 2년전이야..] [ 아,,그랬지..내가 깜빡했다 ] [ 뭘 깜빡이야, 6개월전에 만나.. 2023. 9. 5.
애정결핍이라고 하니... 신주쿠역(新宿駅) 개찰구를 나오자 온통 북소리와 경쾌한 음악소리가 도로를 점령한 채 축제열기가 뜨거웠다. 4년 만에 열린 신주쿠 에이사(エイサー) 축제가 있는 줄 모른채로 미션 임파서블을 보기 위해 나왔는데 사람들로 특히 외국인 관광객이 거기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에이사 축제는 유명한 오키나와(沖縄) 전통행사로 크고 작은북을 치면서 남녀춤꾼들이 오키나와 민속악기인 산신(三線)에 맞춰 거리를 돌며 북과 함께 춤을 추는 축제이다. 둥, 둥 울리는 북소리도 그렇지만 그에 맞춰 절도 있는 춤을 선보이는데 음악도 그렇고 보는 이들도 같이 신명이 나게 만든다. 3시간의 긴 영화를 보고 나온 우린 일단 북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았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한 팀이 되어 창의적인 춤을 추기도 하고 익살맞은 춤도 추는데 .. 2023. 7. 31.
우리의 노후를 남편이 결정했다 아침부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며칠 전 성남 모란시장 장날에 남편과 함께 다녀왔는데 그날 하루종일 내 얘길 했었다며 날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되어간다고 허무하다며 푸념을 늘어났다. 우리 친구들 중에 가장 먼저 할머니가 된 이 친구는 올 해 초, 30년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전업주부를 하기 시작했다. 일 손을 놓지 않고 살았던 탓인지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게 어색하기만 하다더니 손녀딸 돌보느라 딸 집에 왔다 갔다 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가버리고 만단다. [ 너랑, 그때 팥죽 먹었잖아, 이번에는 그 옆집에서 먹어봤는데 더 맛있는 거 있지..] [ 칼국수는 안 먹었어? ] [ 남편이 먹었어. 막걸리도 한 잔 하고 ] [ 재밌었겠다 ] [ 우리 남편이 일본 한 번 가보고 싶다고 노래를.. 2023. 6. 1.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 이른 저녁을 먹고 내가 캐리어에 짐을 넣고 있는 동안, 깨달음은 내 방에 왔다가 말없이 빼꼼 내다보기를 두어 번 했다. 난 한국 날씨를 다시 검색해 보고 약간 얇은 다운재킷을 챙겨 넣었다. 제주도에서 5년 전에 했던 한 달 살기를 이번엔 서울에서 해 볼 생각인데 짐을 꾸리다 보니 가져갈 게 많은 것 같은데 그냥 최대한 가볍게 가자는 생각에 꼭 필요한 것들만 다시 추려서 넣었다. 그렇게 간단하게 짐을 싸는데도 꽤나 시간이 지났던 것 같다. 가방을 다 챙기고 깨달음에게 가 봤더니 깨달음도 캐리어에 옷을 넣고 있었다. 뭐 하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짐을 챙긴단다. [ 당신이 왜 챙겨? ] [ 나도 3박 4일 가잖아 ] [ 그러긴 하는데 아직 일주일 남았잖아 ] [ 그냥,,, 당신이 짐 싸는 거 보니까 나도 지금 .. 2023. 4. 6.
결혼 10년이 넘으면 이렇게 변한다 3일 연속 여긴 비가 내린다. 만개한 벚꽃을 보기 위해 빗속에서도사람들은 우산을 받쳐 들고 벚꽃 명소에 모여들었다. 우리 부부는 이번달까지 마감해야 할 일들이 많아 각자 자기 방에 꼼짝 않고 박혀서 일을 하다 해가 져서야 피로도 풀 겸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왔다. 쌀쌀한 날씨에는 따끈한 소주 오유와리(お湯割り)가 제격이다. 눈앞에서 바로바로 구워주는 제철 야채들은 달달한 육즙이 터져나와 술이 물처럼 들어간다. 깨달음은 연이은 프레젠테이션이 있어 직원과 연습을 하는데 자기가 지적한 부분을 수정하지 않고 고집을 피워서 머리 아프다고 했다. [ 당신이 프레젠 하는 법을 알려주면 좋은데 ] [ 나는 내 일에만 잘해.. 건축은 몰라 ] [ 아니, 프레젠 방식을 모른 것 같애.. 아무리 설계디자인이 좋아도 오너에게.. 2023. 3. 26.
한일커플,,한일관계,,남편과 나 주말아침부터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20도 안팎으로 따뜻했는데 이날은 비와함께 다시 겨울이 찾아온 듯 바람결이 차가웠다. 한 달전쯤 신청한 주일한국문화원 이벤트에 당첨이 된 우리는 근 3년 만에 문화원을 찾았다. 코로나 전에도 간간히 이벤트에 참여하곤 했는데 내내 잠잠하다 올봄부터 다시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이벤트는 한일청년전통음악가들의 연주회였다. 일본 측은 물론 한국에서 오신 젊은 예술가? 분들의 이력이 상당히 화려해 무료로 관람하는 게 왠지 미안할 정도였는데 운 좋게 우리가 당첨이 되어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역을 빠져나와 문화원으로 향해 걷는데 빗줄기가 더 거칠게 몰아쳤다. 깨달음이 좋아하는 붕어빵집을 지나치려다 혹시나 해서 먹을 거냐고 물었더니 먹겠다.. 2023. 3. 20.
부모는 늘 자식을 후회하게 만든다 신주쿠에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깨달음이 자기도 오겠다고 해서 기다렸다가 이세탄 백화점 지하로 내려갔다. 마른 생선을 좀 살 요량이었는데 입구에서부터 웬 사람들이 가득하던지 뭔 일인가 했는데 화이트데이였다. 10대부터 70대까지 남자분들이 초콜릿을 사기 위해 아기자기하고 화려한 매장에 다들 줄을 서고 있었다. 두리번거리던 깨달음도 화이트데이인걸 이제야 알았다며 기웃거리더니 내가 좋아하는 화이트초코가 있는지 찾아보란다. [ 깨달음, 나 괜찮아, 우리 원래 잘 안 챙겼잖아] [ 그래도 왔으니까 하나 골라 ] 맛있게 생긴 걸로 하나 사자는 말에 뭐가 있는지 보려는데 사람들이 유리 진열장에 줄을 서서 기다리느라 뭘 파는지 제대로 보기도 힘들어 그냥 괜찮다고 생선코너 쪽으로 이동했다. 원래부터 발렌타인이나 화이트.. 2023. 3. 15.
나이를 먹어도 남편은 변하지 않았다. 이번주 월요일, 퇴근하고 5시 뉴스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티브이가 먹통이 되었다. 뭔가 뚝 끊어지는 소리와 동시에 화면은 나오지 않고 소리만 들려서 여길 만져보고 저길 두드려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한 시간 후, 퇴근하고 돌아온 깨달음이 좀 맞아야 말을 들을지 모른다며 손바닥으로 툭툭 때려보았지만 여전히 무반응. 라디오라고 생각하고 일단 전원을 켜 둔 상태로 설명서를 읽어 내려가는데 연식이 오래되면 나타나는 증상이며 수리를 맡겨야 한다고 적혀 있는데 생각해보니 우리가 결혼하고 샀으니 10년이 넘었고, 그것은 이미 수명이 다 됐다는 뜻이었다. 새것을 사야 될 것 같아서 신형 모델을 검색하는데 옆에서 깨달음이 정말 티브이 수명이 10년 정도인지 확인해 보겠다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마른걸레로 앞.. 2023. 3. 11.
남편에게 좀 특별한 생일 선물을 했다 신칸센을 타기 위해 도쿄역으로 향한 우린 이동하는 동안 먹고 마실 간식거리를 사느라 도쿄역내를 두 번이나 돌았다. 깨달음은 각 지방의 특산물로 만들어진 도시락들이 즐비한 가게로 갔고 난 차가운 도시락을 좋아하지 않아서 갓 구워낸 빵과 샌드위치를 샀다. [ 이 도시락 따끈하게 데워먹는 거야] [ 그래? ] [ 당신도 한 입 먹으라고 내가 이거 골랐어 ] [ 그냥 당신 좋아하는 거 사라니까 ] [ 나 굴 좋아하잖아, 이 거 굴 솥밥이야, 당신도 먹고 나도 먹고 좋잖아 ] 우리가 모든 일을 잠시 중단하고 신칸센을 탄 이유는 깨달음 생일을 맞아 잠시 휴식이라는 선물을 주기 위해서였다. 올해 들어 깨달음이 일을 너무 많이 한 덕분에 피곤이 쌓인 것도 있어 생일 선물로 뭐가 좋을지 궁리하다가 온천이 어떠냐고 넌즈시.. 2023. 3. 3.
조금만 더 무뎌지자, 그래야 산다 1년 4개월 만에 입술 헤르페스가 생겼다. 대상포진이 생겼던 2021년, 그 해 겨울을 끝으로 잠잠하더니 다시 나타났다. 10명 중 3,4명이 가지고 있다는 재발성 구순포진은 흔한 질환이긴 하다. 헤르페스 바이러스에 한번 감염되면 평생 그 사람의 몸속에 존재했다가 스트레스나 피곤함, 특히 면역력이 떨이지면 바이러스가 활성화돼서 입술에 물집이 생긴다. 스트레스와 영양섭취의 불균형에서 오는 거라는 걸 알기에 잘 챙겨 먹고 신경을 쓴 덕분에 1년을 넘게 잘 넘어갔는데 몸이 다시 신호를 보내왔다. 물집이 생기고 일주일이 지나자 물집에 딱지가 생겨 거의 나아가고 있는데 이번에는 혓바늘이 돋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시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는 먼저 입술 상태를 확인하고는 거의 다 나았는데 오늘은 왜 왔냐고 물었다. [.. 2023. 2. 27.
5년간의 아쉬움을 떨쳐버린 날 예배를 마치고 깨달음이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했다. 자기 회사가 공사를 하려다 못한 곳을 다시 한번 가서 보고 싶단다. 00역 앞에 세워진 쇼핑몰과 상업시설이 함께 있는 지하 2층 지상 41층의 타워맨션으로 그 공사를 따내지 위해 5년간 공을 들였지만 끝내 남의 회사로 넘어갔던 씁쓸한 기억의 건물이라고 했다. 왜 갑자기 가고 싶은 건지 물었더니 자기 회사와 같이 공사에 참여하려고 했던 거래처 사장님과 오랜만에 저녁을 먹으며 그때 일을 회상했었는데 함께 했던 5년의 시간을 다시 상기시켜 보고 싶어 졌단다. 역에 도착하자 깨달음은 감회가 새로운 듯 천천히 둘러보며 완공때 몇 번 왔을 때와 별로 변한게 없다며 건물 구석 구석을 살폈다. 2019년 완공 되기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며 이곳에 올 때마다 그 .. 2023. 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