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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신랑(깨달음)294

남편은 나 몰래 다 계획이 있었다. 지난주, 일본으로 돌아온 날부터 거의 매일 신년선물(お歳暮)이 도착하고 있다. 늘 같은 선물을 보내시는 분, 내가 좋아하는 걸 기억하고 보내시는 분, 매년 과일류만 보내시는 분, 과자류를 자주 보내시는 분 등등 대략, 상대의 취향에 맞게 보내기보다는 누가 받아도 무난한 선물들이 많다. 그래도 참 다행인 건 가공식품인 햄이나 소시지 같은 게 없어서 감사하다. 곶감을 바로 하나 먹어봤더니 아주 맛있다. 올 해는 생과일이 아닌 곶감을 보내셨는데 나쁘지 않았다. 카페인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내 몸은 이제 조금은 길들여져 날마다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있다. 커피 탓에 잠을 설치는 일은 많이 줄었지만 두 잔 이상 마시는 날은 심장박동이 심하게 요동치는 바람에 병원에서 하루에 한 잔만 마시라는 명령을 받았다. 주치의.. 2023. 12. 22.
아쉬움이 가득 남은 한국.. 아침을 먹으러 가는 중에 유명한? 소금빵집에 앉아 깨달음은 애피타이저로 뚝딱 두 개를 먹어치웠다. 커피도 함께 마실거냐고 물었더니 청국장이 기다리니까 그냥 가겠단다. 마지막날, 아침은 청국장과 계란말이로 결정, 쿰쿰한 청국장을 한 숟가락 밥에 올려 비벼놓고 무생채를 올려 맛있게 먹었다. [ 더 찐해도 괜찮은데, 맛이 연하네 ] [ 이 정도면 찐한 거야 ] [ 난 오리지널이 좋은데 ] [ 요즘은 완전 시골 아니면 오리지널 찾기가 힘들어. 김치도 안 먹는 사람들이 늘었는데 청국장은 완전 호불호가 심해 ] 옛 것만 찾고 그리워하는 건 우리가 늙었다는 증거라는 얘길 나누며 식사를 했다. [ 오늘은 어디 갈꺼야? ] [ 영화 볼려고 ] [ 무슨 영화? ] [ 서울의 봄] [ 일본어 자막 없는데 ] [ 그래도 보고.. 2023. 12. 16.
깨달음,,,,파이팅!! 우리가 단골로 다녔던 소바야(蕎麦屋-메밀가게)가 코로나로 약 2년간 휴업에 들어갔다가 올여름에 리뉴얼 오픈을 했다. 워낙에 인기가 있던 가게다 보니 재오픈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단골들이 많아 좀처럼 예약잡기가 힘들었는데 오늘에서야 빈 좌석을 얻을 수 있었다. 홀에서 일하시던 파트타임 아주머니들은 안 계시고 아르바이트생이 긴장한 얼굴로 손님들을 응대하고 있었다. 우린 주인 아저씨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뭘 먹을까 새로 바뀐 메뉴판을 보고 있는데 점장이 니혼슈(日本酒)를 가져오더니 그동안 기다려주셔서 고맙다며 한 잔 가득 따라주셨다. 임시 휴업중에 공사를 하지 않았냐고 깨달음이 묻자 내부는 그대로 두고 주방과 화장실, 그리고 2층의 좌식을 모두 뜯어냈다고 했다. 우린 예전부터 먹었던 메뉴들을 위주로 주문을 했.. 2023. 10. 24.
남편이 혼밥을 싫어하는 이유를 알았다 퇴근길에 여행사에 함께 들린 우린 저녁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줄 서 있는 중화요리집에 따라 섰다. 5시에 영업이 시작됐는데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만석이 되었다. [ 이 집, 유명 한가봐,,] [ 그런 가봐,,] 이곳에 올 때마다 그냥 스쳐 지났던 곳인데 중화요리 노포였다. 모든 손님들이 우리 빼놓고 다들 단골인지 안부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회사에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을 주인아저씨께 소개하기도 했다. 2층까지 만석이라고 들어오는 손님에게 미안하다며 아저씨가 두 손을 모아 사과를 했다. 우리가 앉은 카운터석은 의자가 고정이 되어 있어 옆 사람과의 간격을 내 맘대로 조절할 수 없었다. [ 깨달음, 요즘 인플루엔자가 유행이야, 마스크 꼭 쓰고 다녀 ] [ 다음 주에 접종 예약했어. 그거 맞으면 돼 ] [ 그래.. 2023. 10. 3.
내 생일날, 남편이 털어놓은 고백 마지막 기항지는 나가사키(長崎)였다. 나가사키는 여행으로 세 번이나 왔던 터라 하선을 할까말까 망설이다 일단 안 내리는 걸로 하고 아침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거의 잠들 때까지 먹고 마시고를 반복하는 크루즈생활은 장점이며 단점이다. 운동기구에 따라 두 군데로 나눠진 스포츠짐은 유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는 서양인과 동양인 두 그룹으로 나눠져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매일 아침과 저녁은 코스로 정찬을 먹고 뷔페는 거의 24시간 풀가동이 되어 언제든지 골라 먹을 수 있고 수영장에는 피자와 햄버거가 냄새로 식욕을 자극하고 오후엔 티타임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달달한 디저트와 음료, 아이스크림들이 유혹한다. 그러다 보니 입이 한시도 쉴 틈이 없고 우린 특히 가는 곳마다 술을 마시다 보니 안주거리를 다운받은 어플로 주문.. 2023. 9. 25.
남편이 부른 한국 노래의 진심 추석연휴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말 그대로 휴식을 취했다. 늦더위가 사람을 지치게 한 탓인지 우린 연휴라지만 무언가를 할 의욕마저 상실해 버린 것처럼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뒹굴뒹굴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가스불 켜고 음식을 하는 것도 사람을 지치게 하다 보니 전자렌지에 돌려서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이나 외식을 하면서 연휴를 보냈다. 그러다 우연히 티브이에서 나온 모츠나베(もつ鍋-곱창전골)를 같이 보다가 곱창 좋아하는 깨달음이 도저히 못 참겠다며 후쿠오카(福岡)를 가자고했고 마침 검색해 보니 바로 갈 수 있는 티켓이 있어 속옷만 몇가지 캐리어에 구겨넣고 바로 공항으로 달렸다. 예전엔 미리 계획 세워 갔던 여행을 요즘은 기분 내키는 대로, 몸이 움직이는 대로 시간 되는대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본.. 2023. 8. 21.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사는 남편을 보며 장마가 시작된 도쿄는 오늘도 비가 내렸다. 오전 중에 내리던 비가 오후면 잠깐 개이다가 밤이 되면 추적추적 아침까지 내린다. 주말인 토요일은 잔뜩 흐린날씨이긴 했지만 다행히 비가 오질 않아 나는 깨달음과 한 약속을 지키기위해 약속장소에 미리 나가 쇼핑을 했다. 약속시간 20분 전, 깨달음에게서 역에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오길래 서둘러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먼저 쇼코슈(紹興酒 소흥주)로 건배를 하고 깨달음이 먹고 싶다는 메뉴들을 주문했다. [ 오늘은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날인거지? ] [ 응, 당신 하고 싶은 거, 먹고 은 거, 가고 싶은 곳,, 맘대로 하는 날이야, 아버지의 날이니까 ] 일본은 한국처럼 어버이날이 있지 않고 어머니의 날, 아버지의 날이 나눠져 있다. 어머니의 날.. 2023. 6. 12.
남편도 울고 엄마도 울고.. 도착시간을 훌쩍 넘어도 깨달음은 입국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중국항공, 일본항공까지 같은 시간대에 도착을 했으나 코로나 전처럼 입국장을 빠져나오는데 두 시간정도 기다릴 각오를 해서 초조하지도 않았다. 1시간 40분이 지나서야 나오는 깨달음 얼굴은 꽤나 밝아보였다. 바로 호텔로 가기 위해 공항철도를 탔다. 지금껏 숙소는 김포공항을 편히 오갈 수 있는 5호선이 다니는 곳으로 호텔을 정했는데 이번엔 KTX를 타야 해서 서울역으로 했다. 호텔에 짐을 풀어 놓고 깨달음이 먹방 리스트에 적어놓았던 가게에 찾아가 먼저 소주로 목을 축이고 주문한 꼬막을 먹었는데 한 번 먹어보고는 젓가락을 놓았다. [ 왜? ] [ 맛이가 없어 ] 깨달음이 한국말로 하길래 들릴 수 있으니 그런 말은 일본어로 하라고 했더니 한국어로 해야 손.. 2023. 4. 15.
일본 남자도 별 반 다를 게 없다. 3일 전부터 복통을 동반한 설사를 했던 깨달음은 이틀간 금식을 했다. 코로나인지, 아니면 식중독인지, 그냥 단순한 배탈인지 신경이 쓰이는데 깨달음은 그냥 배탈 난 거라고 요 며칠 더워서 차가운 얼음 음료를 많이 마셔서라는데 신빙성이 없었다. 왜냐면 원래부터 사시사철, 한겨울에도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사람인데 차가운 음료 탓으로 돌리는 건 납득이 안 갔다. 식중독일지 모르니까 병원에 가보라는데 내가 준 약을 먹어서 괜찮아지고 있다고 했다. 지사제를 하루 먹었더니 설사는 멈췄는데 배가 여전히 기분 나쁘게 아프다고 해서 문득 구충제를 먹은 지가 언제인가 싶어 생각해 봤더니 먹을 때가 된 거 같아 건넸었다. 그렇게 구충제를 먹고 하루가 지난 어젯밤, 잠들기 전에 상태가 어떤지 물었더니 다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아.. 2023. 4. 2.
올 해 남편 생일은 이렇게 끝났다 아침을 먹은 후 호텔을 나와 우린 전철을 타고 아오모리(青森)로 향했다. 주변이 온통 눈으로 덮인 논과 밭을 약 1시간정도 달려 도착한 우린 역 맞은편에 있는 재래시장에 들어갔다. 큰 규모의 시장은 아니었지만 싱싱한 가리비와 아오모리 사과를 사고 싶어서 들렀다. 한 바퀴를 휙 돌아보고 깨달음은 제일 크고 빨간 사과를 회사에 택배로 보냈다. 우리가 먹을 것은 적당한 사이즈로 골랐고 싱싱한 가리비와 연어도 함께 구입했다. 그리고 깨달음이 꼭 가고 싶다는 아오모리현립미술관(青森県立美術館)을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전시 작품을 보는 것도 목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여러 곳에서 상을 받은 이 건물과 사인 디자인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온 천지가 눈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눈 길은 계속.. 2023. 3. 6.
요즘 남편의 하루는 이렇게 바뀌었다. 예배를 마치고 점심으로 뭘 먹을까 고민하며 터벅터벅 걸어 나오다 역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결정했다. 늘 지나칠 때마다 분위기가 괜찮아 한 번쯤 와봐야지 했던 곳이었다. 호텔 로비엔 외국인들이 체크인을 하려고 길게 줄이 서 있었다. 샐러드를 먹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깨달음이 여기 사우나가 있는지 검색을 하다가 한국 찜질방 같은 곳에서 하루종일 땀을 빼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자주 애용하는 암반욕 사우나도 좋지만 한국처럼 여러 방으로 나눠진 곳에서 땀을 빼면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고 했다. 요즘 깨달음은 많이 바쁘다. 작년 연말, 깨달음 회사를 앞으로 맡아야 할 야마무라(山村) 상이 심부전 진단을 받았고 그 직원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자기가 일을 대신 하다 보니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도면을 수정하고 체크하.. 2023. 2. 12.
5년간의 아쉬움을 떨쳐버린 날 예배를 마치고 깨달음이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했다. 자기 회사가 공사를 하려다 못한 곳을 다시 한번 가서 보고 싶단다. 00역 앞에 세워진 쇼핑몰과 상업시설이 함께 있는 지하 2층 지상 41층의 타워맨션으로 그 공사를 따내지 위해 5년간 공을 들였지만 끝내 남의 회사로 넘어갔던 씁쓸한 기억의 건물이라고 했다. 왜 갑자기 가고 싶은 건지 물었더니 자기 회사와 같이 공사에 참여하려고 했던 거래처 사장님과 오랜만에 저녁을 먹으며 그때 일을 회상했었는데 함께 했던 5년의 시간을 다시 상기시켜 보고 싶어 졌단다. 역에 도착하자 깨달음은 감회가 새로운 듯 천천히 둘러보며 완공때 몇 번 왔을 때와 별로 변한게 없다며 건물 구석 구석을 살폈다. 2019년 완공 되기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며 이곳에 올 때마다 그 .. 2023. 1. 23.
남편은 매년 같은 소원을 빈다 하우스텐보스의 개장시장은 9시지만 숙박객에게는 30분 먼저 입장할 수 있다길래 우린 이른 아침을 먹고 호텔 탐방에 나섰다. 아침에 보는 테마파크는 저녁과는 사뭇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건물마다 일루미네이션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던 형형색색의 네온은 사라지고 아침은 차분하고도 고즈넉했다. 9시가 되자 수학여행을 온 여고생들이 교복 치맛단을 펄렁거리며 단체로 어디론가 뛰어갔다. 그녀들이 향한 곳은 3층으로 된 회전목마가 음악에 맞춰 돌고 있었다. 깨달음이 3층은 처음 본다며 타보고 싶다길래 혼자 타라고 했더니 싫단다. [ 깨달음, 재미없어, 저거 ] [ 그래도 기념으로 타고 싶은데 ] [ 혼자 타 ] [ 저기 여학생들 많은데 아저씨가 혼자 타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 [ 그러네.. 알았어, 그럼 같이 .. 2022. 12. 25.
뿌듯하고 행복한 남편의 하루 내가 예배를 보는 동안 , 깨달음은 사무실에서 작년에 산 쿠마노테(熊の手)를 가져오기로 했다. 하나조노진자(花園神社)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가 즐비하게 늘어선 포장마차 먹거리를 사는 사람, 그 음식을 근처에서 앉아 먹고 있는 사람, 진풍경을 찍는 사람, 라이브로 영상을 올리는 사람들로 서로 얽혀 걸을 수가 없어 그냥 신사 안에서 만나기로 했다. 작년까지만해도 진자 입구에 코로나 방역으로 손소독제가 올려진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올 해는 그런 문구조차도 없이 코로나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쿠마노테는 사업을 하거나 자영업자들이 사업번창을 위해 사업장에 놓아두는 일종의 장식품이다. 곰발바닥 모양으로 생긴 갈쿠리로 복을 긁어 모은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쿠마노테는 판매하는 곳마다 장식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 2022. 11. 28.
남편은 과연 서울에 또 갈 수 있을까? 삿포로는 생각만큼 춥지 않았다. 무르익은 가을을 만끽하기에 좋은 날씨였다. 우린 호텔을 나와 중심가를 좀 걷다가 마지막 식사를 하기 위해 대게 전문집으로 갔다. 이번 홋카이도 3박 4일을 뒤돌아보니 일하는라 미팅하고 이동하느라 제대로 편하게 맛있는 걸 먹지 못한 게 계속해 마음에 걸렸다며 마지막은 내가 좋아하는 대게를 먹자고 했다. 홋카이도 대게 중에서도 유명한 털게(毛ガニ)를 주문하고 우린 니혼슈로 목을 축였다. 꽤나 바쁘게 움직인 탓에 서로 조금 지친 상태였다. 깨달음은 깨달음대로.. 묵묵히 음식들을 먹다가 일 얘기를 잠깐 하고 연말 스케줄도에 관해서도 나눴던 것 같다. 깨달음이 크리스마스전에 잠깐 한국에 몰래? 다녀오는 게 어떻겠냐고 하길래 가는 건 좋지만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가는 건 내 마음이.. 2022. 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