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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은 날마다 축제가 열린다 시나가와진자 마쯔리가(品川神社祭り) 이번주에 있을 거라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길거리 곳곳에 붙어 있던 포스터와 신문과 함께 들어오는 지역 정보지에도 4년 만에 열리는 시나가와 마쯔리를 홍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 전, 난 깨달음과 마쯔리 투어를 할 만큼 좋아했는데 언젠가부터 관심이 사라졌었다. 볼 만큼 봤고 즐길 만큼 즐겼다면 건방진 표현이지만 중년이라는 나이가 되고 보니 사람들이 밀집하고 몰려있는 곳에 섞이는 게 불편했다. 축제에 만끽하기 위해 밀려드는 인파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게 젊었을 때는 텐션이 올라가고 분위기에 휩쓸려 좋았는데 이젠 늙었는지 사람들과 부딪히고 부비는 게 싫어서 자연스레 피하게 되었고 특히나 인파가 가장 많이 몰리는 하나미(花見 벚꽃구경) 하나비(花火 불꽃놀이) 3대 마.. 2023. 6. 5.
우리의 노후를 남편이 결정했다 아침부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며칠 전 성남 모란시장 장날에 남편과 함께 다녀왔는데 그날 하루종일 내 얘길 했었다며 날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되어간다고 허무하다며 푸념을 늘어났다. 우리 친구들 중에 가장 먼저 할머니가 된 이 친구는 올 해 초, 30년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전업주부를 하기 시작했다. 일 손을 놓지 않고 살았던 탓인지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게 어색하기만 하다더니 손녀딸 돌보느라 딸 집에 왔다 갔다 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가버리고 만단다. [ 너랑, 그때 팥죽 먹었잖아, 이번에는 그 옆집에서 먹어봤는데 더 맛있는 거 있지..] [ 칼국수는 안 먹었어? ] [ 남편이 먹었어. 막걸리도 한 잔 하고 ] [ 재밌었겠다 ] [ 우리 남편이 일본 한 번 가보고 싶다고 노래를.. 2023. 6. 1.
일본의 이 문화는 여전히 불편하다 깨달음은 내가 없었던 주말에 빠지지 않고 영화감상을 했단다. 토요일은 아침부터 집을 나서서 상영시간에 맞춰 신주쿠(新宿)에서 시부야(渋谷)로 옮겨가며 보기도 하고 배우 최민식 씨가 주연으로 나온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보려고 평일날, 개봉관을 가기위해 퇴근을 일찍하고 유일한 취미생활 즐겼다고 한다. 이번주도 깨달음이 보고 싶어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집 근처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어가며 2시간 30분간의 상영시간을 지루함 없이 보고 나왔다. 그리고 근처 라멘가게에서 쯔케멘(つけ麵)을 먹으며 영화후기를 서로 얘기하다 약속이나 한 듯 가게를 나와 암반욕(岩盤浴)을 하러 갔다. 한국의 찜질방과 같은 느낌의 목욕시설인데 한국처럼 다양한 찜질방으로 구성되어 있는 건 아니고 암반욕과 천연돌이 깔린 방이 나뉘어져 있고 .. 2023. 5. 23.
역시 엄마에겐 딸이 최고다 아침에 눈을 떠 사방을 살피고서야 이곳이 내 방인걸 인식했다. 한국에서 돌아와 2주가 지나가는데 지금도 가끔 잠에서 깨어나면 이곳이 어딘가 엄마집인지, 호텔인지, 제주도인지 착각을 하고 있는 나를 마주한다. 어젯밤 꿈엔 자매들과 함께 어느 바닷가가 보이는 곳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장소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산등성이에서 엄마랑 잡담을 하는 꿈을 꿨다. 일본으로 유학오기 22년 전에도 나는 성인이었고 그 당시 언니들은 결혼해서 자녀를 키우는데 바쁜 시기였다. 지금은 자녀들도 하나둘 결혼을 하고 마음적으로 여유로운 시간들을 가질 수 있어 자매들이 모여 같이 자고 같은 공간에서 깔깔거리며 웃음꽃을 피울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많지 않았는데 이번에 내가 합류할 수 있어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중심축엔 항상.. 2023. 5. 19.
내가 한국에서 외국인 취급을 당한 이유 난 재래시장을 참 좋아한다. 20대에도 마음이 심란하고 사는 게 무언지 갈피를 못 잡을 때면 자연스레 재래시장으로 발길이 옮겨갔다. 그곳에 가면 농, 수산물을 펼쳐놓고 목청 높여가며 땀범벅이 된 상인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삶의 원동력을 느낀다고나 할까 그분들에게서 나는 진한 사람냄새가 무겁게만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곤 했다. 그래서 나는 서울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도 시간만 나면 시장투어를 했다. 서울에서는 청량리시장,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을 갔고 수원에 친구를 만나 모란시장까지 다녀왔었다. 제주도에서는 민속시장과 동문시장을 광주에서는 말바우시장을 갔다. 지역마다 취급하는 물건들도 다르지만 상인들, 그리고 그 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색깔도 다양해서 볼거리가 많은 만큼 다가오는 체감도.. 2023. 5. 12.
궁금한 게 너무 많은 남편 5월 6일, 쯔키지( 築地)수산시장에서 열리는 봄축제 마지막날이었다. 내가 일본으로 돌아온 날부터 이미 황금연휴가 시작되어 있었지만 우린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편히 쉬는? 시간들을 보내다가 축제 마지막날은 아침 일찍 나갔다. 이 날은 외국인, 내국인들이 넘쳐날 게 분명해서 오픈시간보다 10분 빨리 도착할 수 있게 전철을 탔다. 주변 도로엔 외국인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즐비하게 주차되어 있었고, 전 세계의 관광객이 쯔키지 시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우린 구입할 것들을 미리 체크해 둔 덕분에 헛걸음하지 않고, 사람들이 줄 서기 전에 모든 걸 구입할 수 있었다. 살만한 것들을 모두 사고 한 바퀴 돌아왔더니 그 사이, 다코센베(たこせんべい) 집 앞엔 길다린 줄이 생겼고 동영상과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 2023. 5. 8.
남편의 무리한 부탁을 들어줬다 내일이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다. 먼저 돌아간 깨달음과는 날마다 통화를 하며 식사는 잘하고 있는지 회사는 별 탈 없는지 무슨 일이 생기진 않았는지 극히 일상적인 대화를 하루도 빠짐없이 나눴다. 내가 혼자 음식을 먹을 때나 새로운 장소를 갈 때면 실시간으로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 보내서인지 거리상으론 떨어져 있지만 전혀 멀리 있음을 체감하지 못했다. 그리고 매번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물으면 생각해 두었던 것들을 말하기도 하고 내가 사진을 보내면 깨달음이 먹고 싶은 걸 콕 집어서 말하곤 했다. 지난주 제주도 동문시장에서는 맛있게 생긴 약과를 사갈까 했는데 오란다가 맛있게 보인다길래 약과와 함께 사서 택배로 보냈다. 약과나 오란다보다는 한라봉을 너무 먹고 싶어 했지만 농산물은 규정상 해외발송이 되지 않기 때문에.. 2023. 5. 2.
10년간 언니에게 민폐를 끼쳤다 깨달음이 일본으로 돌아가고 난 후, 나는 매일처럼 청국장과 된장찌개를 번갈아 먹으며 아침을 시작했다. 일본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청국장이었던 만큼 날마다 한 끼씩 먹는데도 아직까지 물리지 않았다. 오늘은 뭐 먹었냐고 내 끼니를 걱정해 주는 자매들에게 청국장 사진을 올리면 날마다 청국장만 먹고 다니냐며 핀잔을 듣긴 하지만, 한국에 있는 동안은 누가 뭐래도 계속해서 먹을 생각이다. 일본에서는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 같은 게 있었다.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더불어져 좀처럼 메워지지 않았던 허허로움을 된장찌개와 청국장으로 채워가고 있다. 어느 날은 시장에 들러 번데기를 한 컵 사서 컵 채로 입에 털어 먹기도 했다. 깨달음이 유일하게 못 먹는 한국 먹거리 중에 하나인데 난 가끔씩 먹고 싶을 때가 .. 2023. 4. 23.
비행기 이륙 전, 남편이 급하게 보낸 카톡 아침부터 깨달음은 생선구이와 청국장을 주문해 맛있게 먹었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뭘 하며 보낼까 나름 계획을 세운 깨달음이 아침식사를 마치고 첫 번째로 동대문 성벽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일단 나도 처음 가보는 곳이라 어떤 코스가 좋은지,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하는지 찾아보고 동대문역으로 향했다. 성벽을 따라 가파른 언덕 걸어 오를 때마다 밥을 너무 많이 먹은 게 후회된다며 숨을 몰아쉬었다. 성벽 구멍으로 고개를 내밀고는 마치 부산의 달동네 같은 느낌이 들고 풍경이 정감이 간다며 고개를 쳐 박은채로 계속해서 밖을 내다봤다. 셩곽을 타고 올라갈수록 다리가 아프다며 커피숍을 찾았는데 깨달음이 가고 싶다는 가게는 리뉴얼 중이어서 다시 마냥 걸었다. 중간지점에서 더 가기를 포기한 깨달음은 허벅지가 터질 것 .. 2023. 4. 19.
남편도 울고 엄마도 울고.. 도착시간을 훌쩍 넘어도 깨달음은 입국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중국항공, 일본항공까지 같은 시간대에 도착을 했으나 코로나 전처럼 입국장을 빠져나오는데 두 시간정도 기다릴 각오를 해서 초조하지도 않았다. 1시간 40분이 지나서야 나오는 깨달음 얼굴은 꽤나 밝아보였다. 바로 호텔로 가기 위해 공항철도를 탔다. 지금껏 숙소는 김포공항을 편히 오갈 수 있는 5호선이 다니는 곳으로 호텔을 정했는데 이번엔 KTX를 타야 해서 서울역으로 했다. 호텔에 짐을 풀어 놓고 깨달음이 먹방 리스트에 적어놓았던 가게에 찾아가 먼저 소주로 목을 축이고 주문한 꼬막을 먹었는데 한 번 먹어보고는 젓가락을 놓았다. [ 왜? ] [ 맛이가 없어 ] 깨달음이 한국말로 하길래 들릴 수 있으니 그런 말은 일본어로 하라고 했더니 한국어로 해야 손.. 2023. 4. 15.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 이른 저녁을 먹고 내가 캐리어에 짐을 넣고 있는 동안, 깨달음은 내 방에 왔다가 말없이 빼꼼 내다보기를 두어 번 했다. 난 한국 날씨를 다시 검색해 보고 약간 얇은 다운재킷을 챙겨 넣었다. 제주도에서 5년 전에 했던 한 달 살기를 이번엔 서울에서 해 볼 생각인데 짐을 꾸리다 보니 가져갈 게 많은 것 같은데 그냥 최대한 가볍게 가자는 생각에 꼭 필요한 것들만 다시 추려서 넣었다. 그렇게 간단하게 짐을 싸는데도 꽤나 시간이 지났던 것 같다. 가방을 다 챙기고 깨달음에게 가 봤더니 깨달음도 캐리어에 옷을 넣고 있었다. 뭐 하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짐을 챙긴단다. [ 당신이 왜 챙겨? ] [ 나도 3박 4일 가잖아 ] [ 그러긴 하는데 아직 일주일 남았잖아 ] [ 그냥,,, 당신이 짐 싸는 거 보니까 나도 지금 .. 2023. 4. 6.
일본 남자도 별 반 다를 게 없다. 3일 전부터 복통을 동반한 설사를 했던 깨달음은 이틀간 금식을 했다. 코로나인지, 아니면 식중독인지, 그냥 단순한 배탈인지 신경이 쓰이는데 깨달음은 그냥 배탈 난 거라고 요 며칠 더워서 차가운 얼음 음료를 많이 마셔서라는데 신빙성이 없었다. 왜냐면 원래부터 사시사철, 한겨울에도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사람인데 차가운 음료 탓으로 돌리는 건 납득이 안 갔다. 식중독일지 모르니까 병원에 가보라는데 내가 준 약을 먹어서 괜찮아지고 있다고 했다. 지사제를 하루 먹었더니 설사는 멈췄는데 배가 여전히 기분 나쁘게 아프다고 해서 문득 구충제를 먹은 지가 언제인가 싶어 생각해 봤더니 먹을 때가 된 거 같아 건넸었다. 그렇게 구충제를 먹고 하루가 지난 어젯밤, 잠들기 전에 상태가 어떤지 물었더니 다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아.. 2023. 4. 2.
결혼 10년이 넘으면 이렇게 변한다 3일 연속 여긴 비가 내린다. 만개한 벚꽃을 보기 위해 빗속에서도사람들은 우산을 받쳐 들고 벚꽃 명소에 모여들었다. 우리 부부는 이번달까지 마감해야 할 일들이 많아 각자 자기 방에 꼼짝 않고 박혀서 일을 하다 해가 져서야 피로도 풀 겸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왔다. 쌀쌀한 날씨에는 따끈한 소주 오유와리(お湯割り)가 제격이다. 눈앞에서 바로바로 구워주는 제철 야채들은 달달한 육즙이 터져나와 술이 물처럼 들어간다. 깨달음은 연이은 프레젠테이션이 있어 직원과 연습을 하는데 자기가 지적한 부분을 수정하지 않고 고집을 피워서 머리 아프다고 했다. [ 당신이 프레젠 하는 법을 알려주면 좋은데 ] [ 나는 내 일에만 잘해.. 건축은 몰라 ] [ 아니, 프레젠 방식을 모른 것 같애.. 아무리 설계디자인이 좋아도 오너에게.. 2023. 3. 26.
시부모님의 유산과 시동생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우편함에 들어있는 소포상자를 꺼내 깨달음 방에 두었다. 서방님에게서 온 것이었는데 묵직한 게 두꺼운 책이 들어있는 느낌이였다. 그렇지 않아도 서방님이 지난주 깨달음에게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들어놓았던 보험 증서를 회사로 보내왔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회사가 아닌 집으로 뭘 보낸 건지 약간 궁금하기도 했지만 시댁일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던 터라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퇴근하고 돌아온 깨달음에게 저녁을 차려주고 난 할 일이 있어 내 방에서 파일을 정리하고 있었다. 일을 그만두어도 직책만 없어질 뿐 보란티어로 앞으로도 얼굴은 계속 보고 지내야 하기 때문에 마무리도 깔끔하게 뒷정리를 해야 했다. 내가 원하고 노력해서 쓰게 되는 감투는 감사하지만 어쩌다 보니 얻게 된 감투는 늘 내 .. 2023. 3. 23.
한일커플,,한일관계,,남편과 나 주말아침부터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20도 안팎으로 따뜻했는데 이날은 비와함께 다시 겨울이 찾아온 듯 바람결이 차가웠다. 한 달전쯤 신청한 주일한국문화원 이벤트에 당첨이 된 우리는 근 3년 만에 문화원을 찾았다. 코로나 전에도 간간히 이벤트에 참여하곤 했는데 내내 잠잠하다 올봄부터 다시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이벤트는 한일청년전통음악가들의 연주회였다. 일본 측은 물론 한국에서 오신 젊은 예술가? 분들의 이력이 상당히 화려해 무료로 관람하는 게 왠지 미안할 정도였는데 운 좋게 우리가 당첨이 되어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역을 빠져나와 문화원으로 향해 걷는데 빗줄기가 더 거칠게 몰아쳤다. 깨달음이 좋아하는 붕어빵집을 지나치려다 혹시나 해서 먹을 거냐고 물었더니 먹겠다.. 2023. 3. 20.
부모는 늘 자식을 후회하게 만든다 신주쿠에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깨달음이 자기도 오겠다고 해서 기다렸다가 이세탄 백화점 지하로 내려갔다. 마른 생선을 좀 살 요량이었는데 입구에서부터 웬 사람들이 가득하던지 뭔 일인가 했는데 화이트데이였다. 10대부터 70대까지 남자분들이 초콜릿을 사기 위해 아기자기하고 화려한 매장에 다들 줄을 서고 있었다. 두리번거리던 깨달음도 화이트데이인걸 이제야 알았다며 기웃거리더니 내가 좋아하는 화이트초코가 있는지 찾아보란다. [ 깨달음, 나 괜찮아, 우리 원래 잘 안 챙겼잖아] [ 그래도 왔으니까 하나 골라 ] 맛있게 생긴 걸로 하나 사자는 말에 뭐가 있는지 보려는데 사람들이 유리 진열장에 줄을 서서 기다리느라 뭘 파는지 제대로 보기도 힘들어 그냥 괜찮다고 생선코너 쪽으로 이동했다. 원래부터 발렌타인이나 화이트.. 2023. 3. 15.
나이를 먹어도 남편은 변하지 않았다. 이번주 월요일, 퇴근하고 5시 뉴스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티브이가 먹통이 되었다. 뭔가 뚝 끊어지는 소리와 동시에 화면은 나오지 않고 소리만 들려서 여길 만져보고 저길 두드려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한 시간 후, 퇴근하고 돌아온 깨달음이 좀 맞아야 말을 들을지 모른다며 손바닥으로 툭툭 때려보았지만 여전히 무반응. 라디오라고 생각하고 일단 전원을 켜 둔 상태로 설명서를 읽어 내려가는데 연식이 오래되면 나타나는 증상이며 수리를 맡겨야 한다고 적혀 있는데 생각해보니 우리가 결혼하고 샀으니 10년이 넘었고, 그것은 이미 수명이 다 됐다는 뜻이었다. 새것을 사야 될 것 같아서 신형 모델을 검색하는데 옆에서 깨달음이 정말 티브이 수명이 10년 정도인지 확인해 보겠다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마른걸레로 앞.. 2023. 3. 11.
올 해 남편 생일은 이렇게 끝났다 아침을 먹은 후 호텔을 나와 우린 전철을 타고 아오모리(青森)로 향했다. 주변이 온통 눈으로 덮인 논과 밭을 약 1시간정도 달려 도착한 우린 역 맞은편에 있는 재래시장에 들어갔다. 큰 규모의 시장은 아니었지만 싱싱한 가리비와 아오모리 사과를 사고 싶어서 들렀다. 한 바퀴를 휙 돌아보고 깨달음은 제일 크고 빨간 사과를 회사에 택배로 보냈다. 우리가 먹을 것은 적당한 사이즈로 골랐고 싱싱한 가리비와 연어도 함께 구입했다. 그리고 깨달음이 꼭 가고 싶다는 아오모리현립미술관(青森県立美術館)을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전시 작품을 보는 것도 목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여러 곳에서 상을 받은 이 건물과 사인 디자인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온 천지가 눈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눈 길은 계속.. 2023. 3. 6.
남편에게 좀 특별한 생일 선물을 했다 신칸센을 타기 위해 도쿄역으로 향한 우린 이동하는 동안 먹고 마실 간식거리를 사느라 도쿄역내를 두 번이나 돌았다. 깨달음은 각 지방의 특산물로 만들어진 도시락들이 즐비한 가게로 갔고 난 차가운 도시락을 좋아하지 않아서 갓 구워낸 빵과 샌드위치를 샀다. [ 이 도시락 따끈하게 데워먹는 거야] [ 그래? ] [ 당신도 한 입 먹으라고 내가 이거 골랐어 ] [ 그냥 당신 좋아하는 거 사라니까 ] [ 나 굴 좋아하잖아, 이 거 굴 솥밥이야, 당신도 먹고 나도 먹고 좋잖아 ] 우리가 모든 일을 잠시 중단하고 신칸센을 탄 이유는 깨달음 생일을 맞아 잠시 휴식이라는 선물을 주기 위해서였다. 올해 들어 깨달음이 일을 너무 많이 한 덕분에 피곤이 쌓인 것도 있어 생일 선물로 뭐가 좋을지 궁리하다가 온천이 어떠냐고 넌즈시.. 2023. 3. 3.
조금만 더 무뎌지자, 그래야 산다 1년 4개월 만에 입술 헤르페스가 생겼다. 대상포진이 생겼던 2021년, 그 해 겨울을 끝으로 잠잠하더니 다시 나타났다. 10명 중 3,4명이 가지고 있다는 재발성 구순포진은 흔한 질환이긴 하다. 헤르페스 바이러스에 한번 감염되면 평생 그 사람의 몸속에 존재했다가 스트레스나 피곤함, 특히 면역력이 떨이지면 바이러스가 활성화돼서 입술에 물집이 생긴다. 스트레스와 영양섭취의 불균형에서 오는 거라는 걸 알기에 잘 챙겨 먹고 신경을 쓴 덕분에 1년을 넘게 잘 넘어갔는데 몸이 다시 신호를 보내왔다. 물집이 생기고 일주일이 지나자 물집에 딱지가 생겨 거의 나아가고 있는데 이번에는 혓바늘이 돋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시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는 먼저 입술 상태를 확인하고는 거의 다 나았는데 오늘은 왜 왔냐고 물었다. [.. 2023. 2. 27.
일본의 경기 침체, 남편이 걱정이다 지난, 1월 31일, 하네다공항 제3터미널 2층, 도착로비와 직결된 호텔과 상업시설이 구성된 에어포트 가든이 오픈했다. 1,171실을 보유한 이 호텔은 후지산을 바라보며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천연노천탕과 대형홀, 회의장이 마련되어 있고 쇼핑몰은 일본 각지의 특산품과 하네다공항 한정 상품들로 꾸며져 있다. 실은, 코로나 전에 완공되었던 호텔인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오픈하지 못한 채 기다리다 올해 오픈하게 되었다. 깨달음은 바로 호텔 쪽으로 가고 나는 쇼핑몰을 돌다가 레스토랑으로 옮겨 각자 할 일을 좀 하고 다시 만났다. [ 완전 일본 오리지널 상품들이 많네 ] [ 타깃이 외국인이니까 ] [ 호텔은 어땠어? ] [ 괜찮았어 ] 레스토랑으로 다시 내려간 우린 가게 앞에 화환이 즐비한 곳에 멈춰 메뉴를 좀 보고 .. 2023. 2. 24.
일본 초밥집 침 테러 이후, 이렇게 변했다 요즘, 일본은 각종 음식점에서 벌어지는 몇몇 손님들의 위생테러로 인해 골머리를 썩고 있다. 지난 1월 초, 회전 초밥집에서 다른 손님이 주문한 초밥을 멋대로 먹어버리는 영상이 SNS에 확산되면서 날마다 새로운 테러영상들이 올라오고 있다. 컨베이어 레일 위에 초밥에 와사비를 몰래 가득 올리기도 하고 어느 여고생은 테이블이 있는 소스를 섞어 놓기도 하고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영상은 남고생이 대형 회전초밥집 스시로(スシロー)에서 레일 위를 지나는 초밥에 자신의 침을 손가락으로 묻히고, 또 식탁 위에 놓인 간장병 입구를 핥는 영상이었다. 더 경악할 일은 손님들이 사용할 수 있게 놓아둔 컵을 입에 대고 침을 빙 둘러 바른 후 다시 올려놓았다. 너무나 충격적인 이 영상이 공개되자 일본인들조차도 더 이상 회전초밥집.. 2023. 2. 20.
내가 모르는 나를 남들은 더 잘 안다. 약속시간보다 1시간 일찍 나온 덕분에 빵집에 줄을 서도 마음은 여유로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빵집이라고 하자 그녀는 이곳이 처음이라며 내 뒤에 서서 사람들이 뭘 사는지 눈으로 체크했다. 오늘은 일관계로 모리 상(森)과 함께 긴자(銀座) 쪽으로 나오게 됐다. 우리가 방문해야 할 곳은 미리 검토해 둔 상태여서 둘이서 특별히 준비할 건 없었다. 점심시간에 맞춰 방문을 해야 해서 그분께 드릴 간단한 음료 선물도 미리 사 두었다. 12시 30분이 되자 시간에 맞춰 방문을 하고 수업시간은 1시간 예정이었는데 회원님 댁을 나오니 2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 너무 열심히 했으니 에너지 충전을 해야될 것 같아 점심을 먹으러 그 근처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배가 고픈 상태여서 허겁지겁 식사를 하면서 사무실에 연락을 했더.. 2023. 2. 17.
요즘 남편의 하루는 이렇게 바뀌었다. 예배를 마치고 점심으로 뭘 먹을까 고민하며 터벅터벅 걸어 나오다 역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결정했다. 늘 지나칠 때마다 분위기가 괜찮아 한 번쯤 와봐야지 했던 곳이었다. 호텔 로비엔 외국인들이 체크인을 하려고 길게 줄이 서 있었다. 샐러드를 먹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깨달음이 여기 사우나가 있는지 검색을 하다가 한국 찜질방 같은 곳에서 하루종일 땀을 빼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자주 애용하는 암반욕 사우나도 좋지만 한국처럼 여러 방으로 나눠진 곳에서 땀을 빼면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고 했다. 요즘 깨달음은 많이 바쁘다. 작년 연말, 깨달음 회사를 앞으로 맡아야 할 야마무라(山村) 상이 심부전 진단을 받았고 그 직원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자기가 일을 대신 하다 보니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도면을 수정하고 체크하.. 2023. 2. 12.
일본인이 끊임없이 저축을 하는 이유 거실 노트북 위에 6만엔이 놓여있었다. 2만5천엔은 여행경비로 우리가 매달 적립하는 돈인데 나머지는 무슨 뜻인지 몰라 샤워하고 나온 깨달음에게 물었다. [ 이거 뭐야? ] [ 지난번에 외식할 때 당신이 너무 많이 부담한 것 같아서 돌려주는 거야 ] [ 아니야, 내가 사고 싶어서 낸 거야 ] [ 알아, 그래도 그냥 받아둬 ] 지난달 외식을 많이 했던 건 사실이다. 퇴근시간이 얼추 비슷하거나 외출 장소가 가까우면 번개팅처럼 그냥 만나서 간단히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곤 하는데 그 때마다 매번 깨달음이 계산을 했고 지난달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내가 지불한 건데 왜 돈을 돌려주는 건지,, 곧 다가 올 발렌타인데이에도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해서 약간 신경 쓰였는데 받아야 할지 괜스레 복잡해졌다. 점심시간에 깨.. 2023. 2. 8.
봉사 활동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내게 꼭 식사를 사고 싶다고 작년부터 시간을 내달라고 했었다. 솔직히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아 미루고 미뤘는데 이제 출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모두 알고 있어서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었다. 그녀와의 자리가 불편하거나 싫은 건 아니었지만 굳이 내 마음이 돌아선 이유를 끝까지 말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어디가 좋은지, 뭘 좋아하는지 묻길래 그냥 사무실 앞에서 먹자고 미리 봐 둔 레스토랑으로 갔다. 런치타임이 끝날 무렵이어서인지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한산해서 우리가 잠깐씩 나누는 대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스페인 요리를 기다리는 중이어서 스페인에 관한 얘길 조금 나누고 비행기 티켓이 비싸네, 싸네.. 비즈니스석은 기내식이 어쩌고 저쩌고,, 뭐 그런 가벼운 대화가 오갔던 것 같다. 메인요리.. 2023. 2. 6.
일본 주부들 사이에 인기 있는 이 소스 코리아타운에 잠깐 들려 사고 싶은 게 있다는 메이짱은 사람들이 줄이 서 있는 가게마다 기웃거리며 사진을 찍었다. 새로 생긴 카페가 완전 한국식 인테리어라며 케이크랑 빵도 지금 한국에서 인기 있는 것들이라고 약간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나보다 훨씬 한국소식이 빠른 메이짱은 내 블로그에서도 두어번 소개된 친구이다. 한국 음식 만들기를 취미로 삼고 김치는 물론 잡채며 각종 전까지 손이 가는 음식들도 직접 만들어 먹는 걸 좋아한다. 코로나로 3년이상 만나지 못했는데 오늘은 내가 시간을 그녀에게 맞췄다. 내게 미술치료를 받았던 그녀는 내성적이며 소극적이였다. 이혼 후, 한국 드라마를 접하면서 한국요리에 흥미를 갖게 되고 하나씩 만들어보기 시작하면서 재미가 붙어 우울했던 시간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는 그녀. 우리 집.. 2023.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