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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커플들 이야기

일본인 사위를 지켜보는 친정 엄마의 속내

by 일본의 케이 2018.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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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방에 들어가려다보니

 식탁에 막 삶아진 꼬막이 있었다.

조금 식으면 깔 요량으로 드라이를 하기 위해 

엄마방에 들어가 있는데 엄마가 깨서방이 

꼬막을 까고 있다면서 케이한테 하라고

 내 놨는데 깨서방이 야무지게 잘 깐다며

깨달음 등을 다독거리셨다.

[ 어째, 깨서방은 일본사람인디, 

하는 짓이 한국사람같은지..모르것어..]

[ 내가 하려고 했는데..머리 말리고,,,,]

[ 뜨거울 것인디,,잘 까네..저 접시는 언제 

챙겨서 가져갔다냐...참 대단하네...

일본 집에서도 잘 도와주냐?]

[ 응, 보편적으로 잘 도와주는 편이야..]

엄마는 깨달음이 두툼한 손가락으로 

꼬막을 열심히 까고 있는게 신기한지 

자꾸만 몇 번이고 쳐다보셨다.


[ 안 뜨거워? ]

[ 괜찮아, 뜨거울 때 해야돼. 당신은 화장해~]

그렇게 깨달음에게 맡기고 화장을 하는데

깨달음이 엄마에게 양념을 주라고 했단다.

꼬막에 올린다고...

[ 오메.어째 저렇게 시키지도 않았는지 잘한다냐,,

양념을 주라그러네...]

[ 원래 여자일 남자일 안 가리고 잘해 줘..]

[ 아따,그래도 남자가, 외국인인디 이렇게 알아서 

하는 것이 얼마나 착하고 좋냐, 

깨서방 같은 사람 없시야,,]

 깨달음 속에 여자가 들어있다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지만그냥 꾹 참았다.

자기 할 일을 다 끝낸 깨달음은 테이블을 깨끗이 

닦은 다음 숟가락도 가지런히 놓고 엄마가 국을 

퍼올 때까지 얌전히 앉아 있었다. 


[ 딸들이 화장하고, 치장하는 사이에

깨서방이 다 해부렀네..고맙네..]

자기를 칭찬하는 줄 알고 깨달음이 어깨를

 으쓱 올렸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아빠를 모신 납골당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간단한 메모를 남긴 뒤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물었다.

[ 우리 아빠한테 뭐라고 기도했어? ]

[ 앞으로도 케이와 잘 살겠으니 보살펴 

주시라고 했지, 다른 것도 빌어야 돼?..]

[ 아니,,우리 아빠 얼굴 생각 나? ]

[ 응,,병원에 계실 때 봤잖아,,근데

저기 사진에 있는 아버님 얼굴이 좋아..]

[ 고마워...]

[ 뭐가? ]

[ 그냥,,]

깨달음이 내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올 해 6년을 맞이한다.

한번도 빠짐없이 기일에 참석을 해주었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당연히 와야한다고

생각해 주었다. 그래서 고마웠다.



집에서는 동생이 해 온 떡을 나누고 있었고

가족들이 다 모이자 추도예배를 시작했다.

한글도 모르고 찬송은 더더욱 모르는 깨달음이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 번역어플을 열어놓자 

가족들이 한바탕 웃었다.

엄마는 말귀는 못알아들어도 뭔 내용인가

 알고 싶어 핸드폰을 열어놓은 깨달음의

행동이 속이 깊고 착하다 하셨다. 


예배를 마친 가족들은 식당에서 식사를 했고

 깨달음이 돌솥밥에 남은 누룽지를 긁어

비닐에 담는 걸 본 엄마가 항상 격식 차리지 않고

분위기에 맞춰주는 깨달음에게 

또 고맙다고 하셨다. 

[ 어째,,저렇게 한국사람같을까 몰라...

하는짓이 정이 가게 해..우리 깨서방이..

일본사람들이 원래 안 그런디...

누룽지를 깨끗하게 긁어서 담는 것 좀 봐,,.

아따,,깨서방이 제대로 맛을 아네..]

내 돌솥에 밥까지 곱게 담은 깨달음이 내일 

아침밥으로 내주라며 자기 가방에 넣었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다음날 우린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야했고, 아침 일찍 깨달음이 엄마 

생신선물을 준비못해 죄송하다며 

약간의 용돈을 드렸다.

[ 오메..맨날 받기만 하고 미안해 죽것네..

인자, 안 줘도 된당께, 노인 생일이 뭐라고 맨날 

챙긴가 모르것어, 받으믄 내 마음이 

불편해 죽것드만, 인자 이번이 마지막인께, 

절대로 주지 말고 케이랑 살 잘아~,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네...]

내가 깨달음과 결혼을 한다고 했던 7년전,  

우리 엄마는 3일밤을 뜬눈으로 새셨다고 한다.

잠을 못 들만큼 엄마의 가슴 속엔 복잡한 

갈등들이 있었음이 분명하지만 내겐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으셨다. 

팔순이 넘은 우리 엄마 기억 속에 일본인에 대한

이미지는 두가지가 있었다.

남자들은 잔인하고,무서웠고,거칠었고

 여자들은 기모노를 입고 종종거리는 모습과

 얌체처럼 조용하고 조신했다는 기억이다.

학교에서는 기미가요와 히라가나를 배워야했고

일본도를 찬 순사가 말을 타고 동네를

순찰하러 다니는 게 보이면 무서워서

얼른 몸을 숨겼다고 했다.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는 엄마가 사위를

 일본인을 볼 거라 꿈에도 생각 못했고 

엄마의 기억 속에 있는 일본인과는

많이 다른 모습의 깨달음을 보면은 

[ 일본사람인디..어째 저렇게 정이 많은지 

모르것어, 한국음식도 잘 먹고,,,]라고 

입버릇처럼 말씀 하신다. 


[ 니기 아빠가 일본에서 일할때, 일본사람처럼

정확한 사람 없다고, 독하고 냉정한디도 

 배울 점이 많다고 그러드만,,깨서방을 보믄

니가 아빠 했던 말들도 생각나고,,,

여러 생각이 든다..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이 있응께.. 깨서방 같은 일본사람이

 있다는 것이 볼 때마다 신기하고 그런다..긍께

너도 깨서방한테 잘 해라..싸우지 말고,,]

늘 마무리는 둘이 잘 살아라는 충고로

 끝을 내시지만 엄마는 깨달음을 만날때마다 

당신이 몰랐던 친절한 행동, 배려하는 마음, 

살갑게 굴고, 정을 나눌줄 아는 모습이 

어색하기도 하고 신기하고, 의아하며 

아직까지 옛기억 속 일본인과 매치가 

되지 않아 낯설을 때가 있는 듯 했다. 그래서인지 

깨달음 행동이 고맙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엄마가 말씀하시는 [잘 살아라]라는 뜻은

외국인 남편, 일본인 신랑을 둔 딸에게 

많은 의미를 담아 하신 말씀이 분명하다.

좋게 봐주시는 엄마를 위해서,

언제나 기쁜마음으로 한국행을 택하는

깨달음을 위해서도 정말 잘 살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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