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인

일본 시부모님이 이제서야 보여주신 속내

by 일본의 케이 2018. 10. 23.
728x90
728x170

아침, 7시 신칸센을 탄 우리는 간단한 아침을 먹고

바로 잠이 들었다. 나고야에 도착해서 버스로

갈아탄 후로도 가을 탓인지, 피곤함 탓인지 

알수 없지만 시댁에 도착할 때까지 둘이는 

잠에 취해있었다.

이 날은 마침, 마쯔리(축제)가 있던 날이여서

터미널 입구에서부터 포장마차들이 즐비했고

여기저기서 풍악 소리가 들려왔다.

우린 아버님이 좋아하는 카스테라를 사서 바로

요양원으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할 거라 알고 계셨던 두 분은

TV소리도 죽여놓고 우릴 기다리고 계셨단다.

깨달음이 도쿄에서부터 가져온 선물을 풀어놓자

어머님은 가져온 것들을 꼼꼼히 

서랍과 냉장고에 정리하셨다.


그리고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쿠리킨톤(밤을 삶아 으깬 과자-율란)을 까서

하나씩 드리며 따끈한 녹차도 챙겨드렸다.

 오랜만에 드셔서 참 맛있다며 아주 조금씩

조금씩 아껴 드셨다.

[ 아버지, 그냥 한 입에 넣어드셔, 여기 많으니까 ]

깨달음이 하나를 더 까서 손에 올려드리려고하자

다시 포장지에 싸두라고 하셨다.

[ 이 아까운 것을 그렇게 먹으면 안되지..

비싼 건데 아끼면서 하루에 하나씩 먹어도

충분히 만족한단다..]

[ 그냥, 드셔, 또 사면 돼. 얼마든지 

사드릴테니까 먹고 싶은 만큼 드셔~ ]

[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살면 못 쓴다. 지금도

이렇게 오래 살아서 미안한데,,]

옆에서 어머님은 하나를 더 받아 드셨는데

그걸 본 아버님이 눈치를 주셨고 깨달음이

이 과자는 유효기한이 내일까지니까

빨리 드셔야 된다고 어머니에게 드시라며 권했다.

실은, 지난번 깨달음이 출장차 잠깐 들렀을 때

담당 간호사에게 들은 얘기가 있었다.



두 노인들이 우리가 보내준 과자나 사탕 등

아껴 드시느라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이 있어서 

그걸 드시고 혹 탈이 나면 요양원측에서는

책임지기 힘든 부분이라고 했단다. 그러니 

뭘 보낼 때는 여러가지 면을 고려를 해주셨으면

고맙겠다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두 분께 요양원 측에서 했던 말을

다시 설명해 드리며 아끼지도 말고,

마음껏 드시라고 했더니 어머님이 불쑥 

이런 말씀을 꺼내셨다.

[ 아버지 이름으로 소포가 오면 니기 아버지가

혼자서 자기 물건처럼 거의 혼자 다 먹고

나한테는 먹다 남은 것만 준단다..

난,,솔직히 많이 먹지도 못하고 니네 

아버지가 거의 다 먹는단다 ]

[ 진짜? 아버지, 어머니랑 같이 나눠 드셔야지,

아버지 혼자 먹으라고 보낸 거 아니야~]

깨달음도 처음 들은 소리여서인지 놀래서는

아버님께 왜 그랬냐면서 그러지 말라고

아이에게 나무라듯이 했다. 

[ 내가 더 먹긴 했다만은 니네 어머니한테도

주긴 줬어..]

[ 반반씩 나눠야지.. 어떻게 분배 했어? ]

[ 7대 3정도,,,]

7대3이라는 아버님 말씀에 어머니이 피식 웃으셨다.

[ 안돼, 아버지, 똑같이 반으로 나눠 드셔, 우리가

더 많이 보내드릴게, 알았지?  ]


두 분이 이렇게 먹는 것에 집착을 보이게 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이 요양원의 식사와 간식이

 부실 하다는 얘길 예전부터 하셨고 그래서 우리가

 당담자와 얘길 해봤지만 규정상 우리 시부모님만 

특별한 대우?를 해 드릴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었다.

입실자  모두가 공평해야만이 다른 어르신들에게

불만이 없다며 이해해 달라고 했었다.

 그래서 우리가 꽤 자주 이것저것 챙겨서서 

보내드리고 있었는데 그게 거의 아버님 몫으로

 갔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님이 말씀하시기 전까지...

[ 어머님, 제가 이젠 더 자주 보내드리고 

어머님 이름으로 보내드릴게요. 

제가 몰랐네요,,죄송해요..]

[ 아니다, 케이짱은 잘못이 없어.아버지가 잘못했지.

혼자서 아껴 먹느라고 유통기한 지난 것도

 냉장고에 넣어두니까 간호사가 와서 매번

 체크해서 유통기한 지난 것들을

 분리시켜 놓더구나. 그러면 서둘러 둘이서

나눠서 먹고 그랬단다..]

 내가 좀 더 신경을 썼어야했는데 이런 속사정이 

있었음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내 둔감함이 죄송스러웠다.

 그래도 유통기한 넘은 건 안 좋으니까

 아끼지말고 드시라고 내가 많이 

보내드리겠다고 약속을 또 했다.

내가 어머님이랑 도란도란 얘기를 하는 동안

아버님은 홍삼정을 드시며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귀를 바짝 세워 듣고 계셨다.

[ 아버님,,저희가 더 많이 보내드릴테니까

드시고 싶은 만큼 드세요, 아끼지 마시고요 ]

[ 응,,괜히 미안하구나,,케이짱에게 이런 모습

보여서,,]

[ 아니에요, 얼마나 좋아요, 이렇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시는 게 저는 더 감사해요 ]

그리고 우리는 두분이 필요로 하는 물품과

드시고 싶은 것들을 메모지에 적어 내일

 다시 오겠다고 인사를 드렸다.

요양원을 나와 택시를 기다리는데

석양은 지고 어두워져서 찬바람이 덩그란히 

서있는 우리를 차갑게 감싸돌았다.

호텔 앞에는 빨간 연등을 주렁주렁 단 마차가

동네를 돌며 가냘픈 피리 소리를 흘려 보냈다.

 



[ 예전에 비하면 사람들이 없지? ]

[ 응,,내가 처음 이 축제를 봤을 때는 진짜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는데...]

[ PR방법이 서툰가 봐,,좀 더 많이 구경하러 

와야 하는데..이러다 없어지겠어.]

우리는 깨달음이 어릴적부터 줄을 서서 

사 먹었다는 쿠시카쯔(꼬치튀김)을 

먹다가 차분히 앉아 따근한 정종을

한 잔씩 하면서 시부모님 얘길 꺼냈다.


[ 아버지가 혼자서 많이 먹는다는 걸 정말 몰랐어.

진짜 놀랬어..두분다 이제는 완전히

본능적인 감각만 남은 것 같애..

두 분이서 24시간 하는 일도 없이 멍하니 테레비만

보고 있으니..먹는 거라도 마음껏 드시면

좋을 것을,,..안주고, 아껴드시고 그랬는지..

참,,노인들이 늙으면 다 그런 가봐,,]

 남의 부모 얘기하듯이 담담히 얘기하던 깨달음이

정종을 들이켰다. 

[ 나도 아버님이 거의 혼자서 드실거라고 생각을 

못했어. 우리가 더 자주 보내드리면 되는데

두 분 사이가 웬지 냉냉하게 느껴졌어]

[ 올 여름에 어머니가 치매초기 증상을 보이면서

돈이 없어졌다고 아버지를 도둑놈 취급한 뒤로는

아버지가 삐지신 것 같애..]

[ 그래도 어떻게 보면 두 분이 내 앞에서 

전혀 스스럼 없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셔서

고마웠어.날 의지하신다는 느낌이 들었어.]

[ 그렇지..그러니까 당신 앞에서 그 비밀을

털어 놓은 거잖아, 엄마한테 고자질 하듯이

아버지가 혼자 다 먹는다고,,,,히히히]

깨달음의 웃음 속에 공허감히 배어있었다.


[ 이제부터는 아버지 것, 어머니 것 

따로 따로 보내드려야 될 것 같애..]

[ 그니까,당신을 보면서 일본인은 부부 사이에도

니 것, 내 것을 확실히 한다는 걸 알았으면서

내가 왜 그생각을 못했을까,,정말 따로 따로

두분께 각자 보내드려야겠어..]

[ 아무리 그래도 난 우리 부모가 저렇게

아이처럼 변할 거라 생각을 못했어..

그래서인지...웬지 울적해,,,,,]

[ 늙으면 아이로 돌아간다고 하잖아,, ] 

깨달음이 ㅠㅠㅠ를 하면서 다시 웃었지만 

여전히 씁쓸한 표정을 했다.

 위로의 말 대신 난 깨달음에 빈 잔을 채워줬다.

그렇게 우린 꽤 오랜시간 두 분 얘길 나눴다.

지금껏 결혼하고 7년을 뵙지만 음식이나

과자에 집착을 보이신 건 처음이였다. 

그런 환경에 놓여져 있어서도 변화가 

있었겠지만 이젠 며느리인 나에게도 편하게 

자신의 불편함을 자신의 욕심을 스스럼없이 

보여주시는 게 한편으론 감사했다.

그게 늙음에서 오는 것이든, 

외로움에서 오는 것이든 이제는 의지하고

 도움받고 싶어진 연약해진 마믕이 짠하게 느껴져

여러 생각들이 복잡하게 스쳐 지나갔다 

우린 가느다란 피리 소리를

 뒤로 하고 호텔로 돌아갔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