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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시아버지의 병문안을 다녀오며,,,,

by 일본의 케이 2016.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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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와 정신없이 깨달음 속옷과 자켓을

가방에 구겨넣은채로

택시를 타고 동경역으로 향했다.

나쁜 생각은 하지 않을거라고 마음을 진정시키고

  깨달음과 통화를 한 뒤, 다시 쉼호흡을 했지만

오늘따라 자꾸 걸리는 신호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있는 내가 있었다. 

크루즈 여행을 다녀왔던 다음날, 서방님께 전화가 왔었다.

아버님이 입원을 하셨다고,,,,

감기 기운이 있어 약을 드셨는데 기침이 낫질 않아

늘 마시던 양보다 좀 더 많이 복용을 한 탓에

원래부터 약했던 심장에 무리가 갔고, 기침으로 인해

기관지천식이 다시 발생하여 호흡곤란이 왔고

과다호흡을 하다 위험해서 구급차를 불렀고,,,,

입원을 하셨단다.

전화를 받던 그 날은 괜찮다고 좋아졌으니

굳이 올 필요까진 없다고 했는데

오늘 아침에 어머님이 전화를 하셨다.

경과보고 및 어느정도 안정이 되었으니 걱정말라고

안심시키려는 전화내용이였지만

우린 오전 업무만 보고 동경역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였다.


 

오후 첫차를 탔지만 나고야에서 버스로 또 2시간을

달려 가다보니 시댁에 도착했을 때는 어둠이 깔려 있었다.

면회지에 이름을 적고 병실에 들어갔을 때

아버님은 잠을 청하고 계신듯 눈을 감고 계셨다. 

사무실에서 바로 오느라 출근 복장 그대로인

 깨달음을 보고 아버님이 눈물을 보이셨다.

[ 회사에서 바로 왔냐?.. 미안하다,,,일하고 있는데...]

[ 아버지.. 왜 울어~~, 괜찮아요~

심장이 잠시 놀랬을 뿐이라고 의사가 그랬으니까

여기서 좀 쉬었다 집에 가시면 돼~, 울 것도 없어~]

아이를 달래듯 깨달음이 다정스러운 말투로

아버님을 진정시켜 드렸다.

실은 신칸센 안에서 서방님과 담당의를 통해

아버님의 상태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심장이 두배로 부은 상태이고,,

혈당치가 350을 넘어서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당뇨가 심해졌고,,,

입원 당일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까지는 금식을 해야하며

영양제와 인슐린 주사를 병행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모든 걸 솔직히 말씀 드릴 수 없었다.

이번에는 아버님이 날 보고 또 울먹이셨다.

 

[ 케이짱,, 와 줘서 고마워,,,

이번에는 내가 힘들 것 같다...이젠 가야할 것 같다..

너무 오래 살았어...]

[ 아버님,,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다음달 아버님 생신이시잖아요~,

그 때, 아버님 좋아하시는 초코케잌 사서

생일파티 할거니까 걱정마시고 얼른 기운 차리세요]

아버님이 힘없이 고개를 두번 저으셨다..

큰 병치레 없이 90이 넘도록 어머님과

두분이서 잘 지내오셨던 우리 아버님...

우는 모습도 처음이고,,이렇게 약한 말씀 하시는 것도 처음이다.

노인 두 분이서 얼마나 놀래셨을까..그걸 생각하니

죄송스러움에 가슴이 시려왔다.

깨달음이 외투를 벗고 다시 아버님 곁에서

괜찮다고, 의사가 곧 퇴원해도 된다고 하더라고

안정을 시켜 드리고 있는데 아버님이 또

눈물을 훔치며 말씀 하셨다.

 

[ 깨달음,,, 못난 애비여서 미안하다..해 준것도 없고,,,

많이 미안하다. 그리고 어머니를 부탁한다...

혼자 남겨둬서 미안하다는 말도 전해줘...]

[ 아버지 !!!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일 당장 돌아가실 것 처럼 쓸데없는 소리를 하셔~~!!]

가볍게 화를 내는듯 했지만 깨달음 목소리는

아주 부드러운 톤이였다.

[ 그리고 나는 아버지한테 감사하고 있어~~

우리 어렸을 때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많이 챙기주셨잖아~

그런 소리 마시고, 안 돌아가실 거니까 걱정말고

케이 말대로 생일날 뭐 갖고 싶은거 있는지 말해 봐~~]

[ 아니다,,, 다 필요없다,,, ]

별 일 아니라고, 곧 좋아지실거라고 몇 번 진정을 시켜드렸고

아버님이 잠이 드시는 걸 보고 병원을 빠져 나온 시간은

밤 9시, 밖은 시골이여서인지 칠흑처럼 어두웠다.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새우튀김 도시락을 사서

들어갔더니 어머님도 졸고 계셨다.

 

어머님은 무릎에 물이 차 올라 지금도 매일 병원에 다니신다.

아버님이 입원하신 뒤론, 당신 치료보다는

 아버님 챙겨 드리느라 아픈 다리로 병원을

오간게 무리가 왔는지 다리가 많이 저린다고 하셨다.

도우미 아줌마가 아침부터 집안일이며 이것저것 돌봐 주셔도

본인이 하셔야할 일들을 아직까지 직접 하신다.

다음날 아침, 내가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깨달음은 집 안에 있는 불단에 두 손을 모으고

 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아침에 우린 다시 병원에 가서 아버님과 말동무를 해드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집안청소를 했다.

올 때마다 치우고 또 치워도 묵은 살림이여서인지

물건이 좀처럼 줄지 않는다.

창고정리는 다음에 와서 하기로 하고

오후에는 어머님과 함께 병원에 들렀다.

 

서방님도 조기퇴근을 하고 교토에서 와 주셨고

온 가족이 모였을 때 아버님이 입을 여셨다. 

 [ 내가 가면 뒷정리를 부탁한다,,,

딱히 걱정 될 건 없는데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이

 내일이니까 묶어서 지정장소에 놓아두고,

고에 새로 산 카페트가 있는데

그것은 리사이클 숍에 갖다줘라..]

듣고 있던 서방님과 깨달음이

아까는 당장 돌아실 것처럼 그러시더니만

재활용 쓰레기 챙기시는 것 보니까

다시 기운이 돌아오셨다고 그러자 아버님이

죽더라도 내 할일은 마지막까지 뒷 정리를 다 하고

가고 싶어서 부탁한 거였단다.

그 얘기로 병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음식관리, 몸관리를 어떻게 하시라는 얘기들도 오갔다.

그리고 우린 다시 동경으로 돌아와야했기에

아버님께 작별인사를 드렸다.

 

 아버님 생신 때 다시 올 거니까

뭐 드시고 싶으신지, 뭐 갖고 싶으신지

생각해 두시라고 두 손을 잡아 드렸더니

아버님도 아무말 없이 우리 손을 꼭 잡아 주셨다.

애써 밝은 목소리로 [ 생신날 또 올게요]라고 했는데

아버님이 그 때까지 살아있을지 모르겠다고 

힘없는 목소리를 내셨다. 

 

어머니를 집에 모셔다 드리고 우린 서방님 차로 터미널로 향했다.

차안에서 깨달음은 서방님과 아버님 증상을

다시 심각하게 얘기했고 좋아지던 안 좋아지던

조금의 변화라도 보이면 바로 연락달라는 부탁을 했고

서방님은 매일 와 볼테니까 걱정말라고 하셨다.

서방님은 우리보다 거리상으로 가까운 곳에 산다는 이유로

여러면으로 장남인 깨달음보다 훨씬

장남 노릇을 많이 해주신다

두 형제가 혈당치와 당뇨와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나는 사진 속 아버님을 보며 돌아가신 우리 아빠를

 떠올리기도 하고 홀로 계신 친정엄마,

 그리고 편찮으신 우리 시어머님 생각에 

자꾸만 마음이 심란해져왔다.

옛말에 부모는 자식이 10명이여도 모두 잘 거두는데

10명의 자식들은 한 명의 부모를 못 거둔다고 한다. 

자식이 많으면 뭐하겠나,,,이렇게 또

부모님만 두고 우린 떠나와야 하는데....

늙은 부모를 옆에서 거두는 게 자식으로서

가장 큰 효도인 것을 알면서도 하지 못하고

아니, 못하는 이유를 만들어 가며

 외면하고 있는 우리 자식들,,,,, 

어찌할 것인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을 때

[ 케이씨, 생신날까지는 퇴원하실 수 있도록

할테니까 걱정 마세요 ]

서방님이 빽밀리로 힐끗 날 쳐다보더니 말을 걸어주셨다.

아버님 생신 때까지,,,아니 앞으로도 몇 년간은

정말 아무일 없이 무사하시길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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