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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커플들 이야기

남편의 과한 선물에 담긴 진짜 의미

by 일본의 케이 2018.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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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데이, 그리고 결혼 기념일이 있던 3월,

우린 간단한 식사로 모두 끝냈다.

특별히 갖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여행을 갈까했지만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그것도 그냥 다음기회로 넘겼다.

아무런 욕심도 욕구도 생기지 않은 이유는  

갱년기의 무기력증에서 오는 것도 있지만

2년전 오른팔에 왔던 오십견이 이번에는

 왼쪽 어깨로 옮겨와서 자유롭게 왼팔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어 모든 게 귀찮은 

상황인 것도 한 못을 차지하고 있다.

매년 기념일이면 뭔가를 선물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깨달음은 아무것도 필요없다는

내가 신경쓰였는지 자꾸만 뭐든지

 말해보라고 했다.

[ 필요한 거 없어,,솔직히 많이 귀찮고,,

그냥 오십견이 빨리 낫도록

병원이나 열심히 다닐거야,,]   

[ 그래,,그건 그것이고,,작년 크리스마스도

 필요없다고 해서 선물 생략했잖아.]

[ 괜찮아,,,] 


내가 좋아하는 생선구이 정식집에서 

깨달음은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 예전에 당신 가방 갖고 싶다고 했잖아,,

그거 사줄까? ]

[ 아니,그런 비싼 가방 가지고 다닐 곳도 없고

지금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 그럼,,차 사 줄까? ]

[ 왠 차? 당신 뭐 나한테 잘못한 것 있어?

차는 당신이 바람을 피거나 부정행위를 했을시

벌금형으로 사는 거 아니였어?

왜 갑자기 차를 사 준다 그래? .]

[ 무슨 소리야, 그냥 사준다는 거야,,]

[ 좀 수상하다,느닷없이.,어쨌든 필요없어,

집 앞이 바로 전철역인데 차가 뭐가 필요해,

 지금까지 없어도 하나도 안 불편했잖아..]

[ 그래도 예전에 갖고 싶다고 했잖아]

[ 예전에는 한 대 있으면 좋겠다했는데

지금은 전혀,,,운전하는 것도 귀찮고,

한국에서 기사님 있는 차 타보니까 엄청 

편하고 좋더라구, 그리고 어차피, 당신은 

운전면허 없어서 여기서는 나만  

운전하게 될 것이고,그니까 귀찮아,,

필요할 때 되면 그 때 사면 돼..]

[ 그럼,,뭐가 갖고 싶어? 말해 봐,,]

[ 진짜 없어,,아무것도,,,]


그런데 깨달음이 일을 저질렀다.

 어떤 차량을 좋아하냐고 몇 번 물어봤을 때도

절대 필요없다고 했는데 특별한 상의도 없이 

차를 계약하기 전에 날 영업소로 부른 것이다.

매장에 들어가자 직원이 말씀 많이 들었다며

남편분이 좋은 차를 골랐다고 아주 밝은 미소로

맞이하며 음료를 준비하러 자리를 떴다.



[ 잠깐만,,나,,차 필요없다고 했잖아,..]

[ 그냥,,사,,,내가 선물하고 싶어서 그래..]

[ 왜 나한테 상담도 안 하고,,,]

[ 언젠가 살거면 지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

[ 진짜 필요없어..내가 필요한 건,,,]

[ 뭐야? 뭐가 필요해? ]

다그치듯 물었지만 난 정말 갖고 싶은 게

떠오르지 않았고 아무것도 필요치 않았다.

[ 없어,,,,아무것도,,]

[ 그럼, 그냥 사~]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직원이 쥬스를

가지고 오는 바람에 입을 다물고 

차에 필요한 욥션과 보험에 관한 얘기로

일이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몇 페이지에 걸쳐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필요한 첨부서류 목록을 챙겨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마디 했다.


[ 고마워,,근데..미안한데..아무런 느낌이 없어 ]

[ 괜찮아,,당신 드라이브 하는 거 좋아했다며,

그니까 분위기도 바꾸면 기분도 나아질 거야 ]

[ 나,,기분 괜찮은데....]

커피숍에서 깨달음이 먼저 얘기를 시작했다.

3월초, 내가 위 내시경을 하던 날

담당의와 꽤나 많은 얘기를 나눴고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http://keijapan.tistory.com/1078

(해외에서의 삶이 주는 스트레스)

[ 당신이 지금 계속해서 아프잖아,,,

담당의도 그랬어,,예민한 성격탓도 있고

이곳(해외)에서의 삶이 보통사람보다 훨씬

많은 스트레스와 부담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 당신이 힘든 것이고 정신적으로

편해지지 않으면 계속해서 몸이 힘들것 같다고,

그런 심리적 압박과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당신이 하고 싶은대로, 당신이 원하는대로

하고 살 수 있도록 서포트해주라고 했어..

심적으로 정신적으로도 안정을 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남편인 내 역할이래..]

[ 나,,아주 안정적이거든? ]

[ 너무 안정적이여서 문제야,,삶에 대한

의욕을 모두 상실한 것처럼 생활하잖아,,

그래서 걱정이야, 그렇게 욕심많고,

열정적이였던 당신이 지금 거의 모든 걸

손에서 놔 버렸잖아... ]

[ 그건,,, 나이탓이고,,갱년기 탓이야,,]

[ 아무튼, 여러 생각하지 말고 지금껏 열심히 

살아 온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해,

그니까,,그냥 타고 다녀,,,]

[ ................................ ]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난 예전의 내 모습을

조금씩 잃어가고 현실에 타협하며 그냥

적당히 덮고, 적당히 잊고, 적당히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육체적인 고통이 정신적인 면으로

 이여졌겠지만, 몸이 편치 않으니

마음 역시 불안정한 것도 사실이다.

깨달음 말처럼 열정적인 감성도 사라지고, 

목표를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는 내가 있다.

그저 하루 하루 내게 주어진 일을 할 뿐,

무감증 환자처럼 즐거움도 미움도 슬픔도 

괴로움도 별로 못 느끼고 있다. 

나에 이런 모습이 고스란히 깨달음 눈에

들어왔을 것이고, 그게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 근데,,나 일본에서 운전을 안 해봐서,,,

17년간 운전대를 안 잡았는데

잘 할지 모르겠어..여긴 좌석이랑

도로가 한국하고 반대잖아,,,]

[ 그래도 당신은 할 수 있을 거야 ]

운전을 전혀 못하는 깨달음은 쉽게 얘길 했지만

 갑자기 걱정이 밀려와서 급하게 후배에게 

 부탁했더니 자기 차를 가져와 주었다.

다음주에 내 차가 오면 좀 더

체계적으로 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한국과 조금 다른 신호체계, 주위해야할 점을 

 알려주는 후배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 잘 하네~~]

뒷자석에 탄 깨달음이 신나서 이 은미의 노래를

틀어봐라, 한국방송은 볼 수 없냐는 등

주문이 많았다.

[ 나 이제부터 늦게까지 술 마시게 되면

당신이 데리러 오면 좋겠다~]

[ 알았어,,근데 내가 당신 기사 되는 거야? ]

[ 응,,난 사장님이잖아,,,]

[ .............................]

생각지도 않았던 차를 받게 되고 처음으로 

일본에서 운전을 하는 기분이 아주 묘했다. 

왼쪽어깨가 여전히 욱씬거려 핸들을 잡는 팔이

떨려왔지만 깨달음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지금껏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보상이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자꾸만 맴돌았다.

정말 난 잘 살아왔는가,,,

휘날리는 벗꽃잎이 봄 바람과 함께

 차 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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