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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내가 아파서는 안 되는 이유

by 일본의 케이 2018.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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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도착해 익숙하게 가운으로 바꿔 입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른 시간이여서인지

 나 외에 환자가 아무도 없어서 

적막감이 맴돌았다.

벽에 덩그러니 걸려있는 시계의 초침 소리가 

거슬렸지만 그냥 눈을 감고 다음 예약 해 둔

산부인과 위치를 재확인 했다.

 작년 겨울, 정기검진에서 왼쪽 가슴에서 

분비물이 나오는 걸 처음 알았다.

초음파와 맘모그라피를 동시에 실시, 검사를 

했더니 관내유두종이라고 했다.

관내유두종은 모유가 만들어지는 유선과 모유가 

나오는 통로인 유관에 발생하는 양성종양의

하나로 호르몬 이상이나 약물에 의한 반응으로 

유관이 막혀 분비물이 발생하는 경우이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고 재검사를 했을 때, 

분비물의 색이 연한 핏빛을 보이고 있었다.

 정밀조사를 통해 성분 분석을 했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피가 많이 섞여 나왔다.


담당의가 걱정스러워하는 내게 설명을 또 했다.

[ 유관이라는 모유가 이동하는 관이 있는데

이 관에 덩어리가 생겨서 막게 되면

유관이 늘어나게 되고, 늘어난 유관에 

분비물이나 피 같은 게 고이게 되는데

그게 유두로 배출 되는 것입니다 ]

[ 네, 알고 있는데요, 근데 이번에는 

피가 섞인 것 같아서 걱정이네요,

 원래 제 나이 때에는 흔한 겁니까? ]

[ 네,,남자분들도 나오는 사람 있어요 ]

[ 그래요? 근데 왜 피가 섞었을까요? ]


(다음에서 퍼 온 사진)


[ 음,,,정확한 원인은 모르겠는데 유즙 분비를

 촉진하는 뇌하수체 호르몬(프로락틱)이

과다 생성되서 분비되는 경우가 있어요,

요즘 혈압약이나 뭐 드시는 약 있으세요? ]

[ 없는데요 ]

[ 허브티 같은 걸 자주 마시나요?]

[ 아니요 ]

[ 음,,,그렇다면 역시 호르몬 분비의 문제라고

생각되는데요, 갱년기는 호르몬 이상이 많잖아요,

그래서도 피가 섞인 붉은 색이 나온 것 같은데 

탁하지 않고 맑아서 문제는 없습니다.

혹, 끈끈하거나 고름처럼 뭍어 나오면

바로 오셔야 합니다. 지금상태로 봐서는 

초음파도 그렇고, 맘모그라피 결과도 

별다른 문제는 없으니까 그렇게 걱정 마세요]

 특별히 조심해야 할 게 있냐고 물으려다

다음 예약을 하고 그냥 원장실을 나왔다.

갱년기라는 단어가 나오면 더 이상 물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호르몬 분비가 정상이 아니여서 정신적으로도

이상증세를 보이는데 몸이라고 고장이 나지

않고 버티기 힘들 것이다.

다음은 산부인과를 가기 위해 전철을 갈아타는데

깨달음에게서 연락이 왔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냐며 부인과 검사가

 끝나면 오라며 레스토랑 위치를 알려줬다.


건배를 하면서 바로 물었다.

[ 뭐래? 선생님이? ]

[ 별 문제 없다네..]

[ 근데 왜 피가 나온거야? ]

[ 호르몬 이상인 것 같다고 그랬어 ]

[ 그게 다야? ]

[ 응,또 갱년기 얘길 하길래 더 이상 안 물었어]

깨달음이 메뉴판을 보고 이것저것 주문을 한다.


[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

[ 응, 이 메뉴면 됐어 ]

[ 호르몬을 정상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는 그런 소리는 안해? ]

[ 응,호르몬 밸런스를 맞추려고 여성호르몬을 

투입하는 방법도 있는데 그러면 

유방암 걸릴 확률이 높아져서 권하지 

않는다고 했어 ]

[ 그래....특별한 약도 없고? ]

[ 응,,]

[ 역시, 잘 먹고, 잘 자는는 게 약이네 ]

[ 그런 것 같애..] 


[ 아프지 말아야지 세계 여행도 하는 거잖아]

[ 알아 ]

[ 한국에 가서 진찰 한 번 해 볼거야?]

[ 응,,,언젠가는 한번 해 볼 생각인데

아파트 입주하면 그 때나 할까 생각해 ]

[ 2년 후에? ]

[ 응,,]

[ 그럼 그동안 잘 먹고 잘 지내면 되겠네 

근데,,어제 블로그에 왜 결혼에 대해

부정적으로 썼어? ]

[ 그냥 내 생각을 쓴 거야]

[ 오늘 이렇게 당신 아프니까 기다려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맨날 그러는데 결혼이

별로라고 적으면 안되는 거 아니야? ]

[ 쓰고 나서 나도 좀 미안했어..]

[ 그럼 수정 해 ]

[ 싫어 ]

[ 당신 아프면 내가 돌봐야 되는데 나한테

그렇게 하면 내가 당신 군밤 때릴거야 ]

[  ................................ ]

[ 간병하면서 이지매 한다는 말이야? ]

[ 응, 그러니까 아프지 마, 군밤 맞기 싫으면,,,

행여 당신이 또 수술을 한다거나 그러면 

그 때도 전복죽이랑 만들어서 줄게]

http://keijapan.tistory.com/1161

( 지난 글 -결혼이란 게 다 그렇다)



항상 곁에 있어서 감사함을 모른 건 아니였다.

결혼이라는 게 실은 내게 벅찬 제도였음을

하고나서보니 알겠더라는 그런 얘길 

말하고 싶었던 것이였는데 깨달음에게는

충분히 서운할 만한 내용이였음을 인정한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슬쩍 물었다.

[ 깨달음, 당신이 아프면 어떻게 해줄까? ]

[ 맛있는 죽도 만들어주고, 맨날 사랑한다는

 말도 해 줘. 그러면 금방 나을 것 같애,

난, 사랑을 먹고 사는 사람이니까..]

자기가 말해 놓고도 어색했는지 쑥스러워했다.

파스타를 다 먹고 일어서려는데 깨달음이

손가락을 내밀면서 아프지 말라며

 약속을 하라고 한다.

[ 약속을 해서 안 아프면 좋겠지만 그래도

건강에 유념하도록 항상 노력해, 알았지? ]

[ 알았어..]

작은 눈을 초롱초롱 깜빡 거리는 

깨달음에게 미안해서도 아프면 안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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