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사둔 유언장 세트를 오늘 다시 꺼냈다.
지난주, 일본행 비행기 안에서 우리부부는 죽음을 생각했었다.
기내에 들어가자 태풍의 영향권으로 기내식및 모든 서비스를 서두르겠으니
양해 바란다는 아나운스가 흘러나왔다.
태풍19호가 동경으로 북상중일 때 우린 동경을 향해 가고 있었다.
출국전, 그 시간대의 타 항공사는 모두 결항및 지연되었지만
자국기인 JAL, ANA는 스케쥴 변경없이 이륙을 했었다.
약간 불안해서 물어봤더니 자국기는 혹 도착지가 변경되더라도
절차가 복잡하지 않고 행여 무슨 일이 발생했을 경우 책임을 지는 것도
자국기이기에 그리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하네다공항에 가까이 오자 비행기가 착륙을 하지 못한채 선회하기 시작했었다.
한 바퀴, 두바퀴, 세바퀴,,,,돌며 태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동안
기체가 바람에 흔들려 오른쪽으로 쏠리고 왼쪽으로 쏠리고....
마치 바이킹을 탄 것처럼 몸이 자꾸만 허공으로 떴다가 가라앉고, 떴다가 가라앉고,,,
비행기가 회전을 할 때마다 난 엄청난 후회를 했었다.
유언장을 써놨어야 하는데,,,, 유언장을 써놨어야 하는데.....
(구글에서 퍼 온 이미지)
깨달음은 한국영화 [역린]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가 안 되겠는지
이어폰을 빼더니 창문에 머리를 가까이 대고 밖을 유심히 쳐다 봤었다.
어둠과 비바람으로 인해 밖은 보이질 않고,,, 기체가 흔들리고 있으니 안전벨트 확인하시고
자리이동 하지 말라는 아나운스가 또 흘러 나오고,,,,
그 때 기체가 크게 또 한바퀴를 천천히,,, 천천히 돌기 시작했자,
깨달음이 힘없이 [ 오메,,,,,,, ]라고 외마디를 뱉어냈다.
내가 메모지를 꺼내 하고 싶은 말을 일단 적자고 했지만 멍하게 그냥 밖을 쳐다보고만 있던 깨달음...
나도 볼펜을 쥐어 들긴 했지만 뭘 적어야 할지,,,
누구에게,,아니 뭘 남겨야할지 아무생각도 나질 않았다.
수많은 인물들이 스쳐지나 갔고,,,책들은,,, 예금 통장들은,,, 블로그는,,,, 열대어 구피들은,,,,,
그렇게 머릿속 정리를 못하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한바퀴 더 선회를 하고,,,,,
도착 예정시간보다 약1시간 늦게 우린 하네다공항에 도착했다.
깨달음은 그 날 이후, 미리 적어 두었던 유언장을 다시 정리했고
난 오늘에서야 이렇게 펼쳐 놓고 자산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내 이름에 모든 금전관련사항을 적고 상속자 이름도 적고,,,,
옆에서 지켜보던 깨달음이 상속자란에
자기 한국이름(깨달음)이 아닌 것 같다고 누구냐고 묻는다.
[ ....................... ]
알고 싶냐고 물었더니 혹 자기보다 내가 먼저 죽으면 자기도 어느정도 유언장에
적힌 내용을 알고 있어야 할 게 아니겠냐고 그래서 물어보는 거란다.
[ ....................... ]
내가 아무말 하지 않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언제 무슨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에
이렇게 대비하는 차원에서 적어 두는 유언장,,,
처음엔 그리 유쾌한 기분이 들진 않았지만 하나씩 적어 가다보니
과거의 시간속에 함께 했던 사람들, 지금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앞으로도 만나야할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고 자연스럽게 머릿속도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약 1시간정도에 모든 걸 작성한 후, 봉투에 넣어 봉인을 하고 나니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해진다.
나라는 사람을 다른 시각으로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였던 같다.
봉투를 만지작 거리며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하며, 아낌없이 사랑하며,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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