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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커플들 이야기

일본 시부모님이 날마다 하신다는 기도

by 일본의 케이 2018.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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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일어난 깨달음은 외출 준비를 마치고

 어릴적부터 다녔던 신사로 향했다.

주머니에서 동전을 준비하고는 옷매무새를

만진다음, 아주 정중하게 신사에서

 기도를 하는 깨달음을 지켜보며 교회는 

왜 가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 뭘 빌었어? ]

[ 두 분 치매 안 걸리고 건강하시라고 ]

[ 잘했어 ]

 

다음은 마트에 가서 전날밤 시부모님이 

필요하다고 했던 목록들을 메모에 

적힌대로 하나씩 카트에 넣었다.

[ 과자를 많이 사야겠지? ]

[ 응, 두 분 따로 드실 수 있게 사야겠어 ] 

그렇게 깨달음은 아버님 것을 나는 어머님 것을

각자 구입해서 시댁으로 가는데 축제 마지막 

볼거리인 마차행렬이 때마침 지나가고 있었다.

 

바퀴벌레와 진드기,벼룩를 제거하는 

방충제를 사서 각 방과 거실, 부엌에 설치했다. 

방에는 이제 신발을 벗고 들어 갈 수가

없을 정도의 상태였고, 도련님이 오셔서 

어머님과 필요한 옷가지를 가끔 가져가셨다고 

하던데 옷장들도 조금씩 열려 있고 여전히

마져 처리하지 못한 큰 쓰레기 봉투들이

군데 군데 놓여있었다.

[ 당신은 들어오지 마, 벌레들에게 물릴 거야 ]

깨달음이 먼저 들어가면서 날 말렸다.

[ 그래도 들어가고 싶은데... ]

[ 들어오지 마, 엉망이야 ]

깨달음은 다시 몸에 벌레 퇴치스프레이를 

뿌리면서 깊숙이 주방쪽으로 들어갔다. 

[ 마당에 풀은 안 뽑을 거야? ]

[ 응, 오늘은 안 할래 ] 

난 입구에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주춤거리다 깨달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올 때마다 이렇게 폐허가 되어가는 모습이 

너무 리얼해서 깨달음이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던 그 소중한 기억과  시간들이 퇴색되어

 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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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을 나와 요양원으로 가는 길에 택시 안에서

 깨달음이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 형님집이 드디어 해체가 되는 구나..

00은행에서 샀다고 하더니 저 건물들 다 부수고

새 빌딩 지을 모양이야,,]

혼잣말처럼 깨달음은 채무만 남기고 떠난

큰집 형의 마지막을 보는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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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의 방을 열자 조용히 신문을 읽고 계시던

 아버님이 환하게 웃으셨다.

[ 잘 주무셨죠? ]

[ 응, 아침일찍 또 이렇게 와 줘서 고맙다 ]

 마트에서 사 온 먹거리를 종류별로 서랍에

 채워드리고 다카시 형님집이 허물어지고 있더라는

 얘기를 깨달음이 해드렸다.

아버님은 다카시가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날 줄 몰랐다며 당신이 입원했을 때

날마다 신문이랑 물을 가져와 병문안을 와준

다카시에게 제대로 고맙다는 말을 못해

지금도 마음에 걸린다고 하셨다. 

 그러더니 아버님이 당신 왼 손을 내 보이며 

검은 멍을 보여주셨다.

[ 또 이런 게 생겼단다. 어디에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점점 색이 진해져..]

2년전,119에 실려가기 전날에는 왼쪽 팔에

이렇게 검은 멍이 들었는데 요 며칠 또 이렇게

생겨서 왠지 기분이 별로라는 말씀도 하셨다.

깨달음이 어디서 부딪히지 않았냐고 다시 물었는데

아버님은 절대로 부딪히지 않았다고

또 병원에 실려가면 그 때는 마지막이 될 것 

같아 불안하다고 하셨다.

요양원에 오시기 전에도 내가 저런 멍을 본 기억이

생각나 얼른 검색을 해서 부딪히지 않아도 

생기는 이유를 찾았다.

[ 아버님, 감기나 편도선염 앓으셨어요? 최근에?]

[ 아니..]

차분히 검색을 해서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드렸다.

 감기바이러스로 인해 혈관벽이 파괴되고 

적혈구가 나오면서 멍이 생기기도 하고

특히 어르신들은 엷고 약한 피부 조직으로 인해

 혈관이 손상되어서 멍이 발생하고 

특히 신체기능이 많이 떨어진 노인에게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비타민 C, 

비타민 K, 콜라겐이 많이 햠유된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고 말씀 드리고 우리가 사 온 

과자들의 부과설명을 다시 했다.

[ 아버님, 콜라겐 생성이 줄어들고

피부가 점점 얇아져서 어르신들에게

그냥 자주 멍이 쉽게 생긴데요,

저희가 비타민 C, 비타민 K,콜라겐이 많이 

들어있는 것을 바로 보내드릴테니

걱정 많이 안 하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

[ 그렇구나, 괜한 걱정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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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 아버님께 얼른 만엔을 건네드리면서

밑에 매점에서 사고 싶은 거 사 드시라고

하니까 너무도 좋아하신다.

예전 같으면 절대로 안 받는다고, 돈 너무 쓰게

했다고 사양하시던 아버님이셨는데

아이처럼 좋아하시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어머님에게도 드렸더니 지난번 준 돈이남았다고

하셨지만 주머니에 넣어드렸다.

[ 아버지, 어머니,자식으로서 당연히 하는 거니까

미안하다고 생각치 말고 즐겁게 받아,지금까지

 잘 키워주셨잖아, 건강하시고 우리는 내년에나

 올 것 같으니까 감기조심하시고 뭔 일 있으면 

00에게(도련님) 바로 연락해,

나도 되도록 바로 내려오도록 할게..]

두 분, 건강하시라고 한번씩 안아드리고 

우린 다시 도쿄로 돌아왔다.

두 분이서 두 손을 공손히 모아 떠나는 자식들에게

몇 번이고 인사를 하시는데 그 모습조차

 왠지 시리게만 보였다.

아이처럼 과자를 나눠 먹지 않으신 아버님,

아버님의 그런 행동을 우리에게

털어 놓으신 어머님,..

 

우리가 지금껏 못 봤던 두 분의 모습들이 

편한 마음으로 보여주셔서 짠한 마음만 들었다.

우리가 요양원을 나올 때 아버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 멀리서 오고 가고 니네들이 고생이 많다.

점점 나이를 먹으니 많은 것을 

의지하게 되는구나,,나는 안 그러고 떠나려고

했는데 자꾸만 자식들한테 짐을 만들구나..

장수하는 게 결코 자식들에게는 좋은 일이 아닌데,,

 병원신세 안 지고 어느날 조용히 잠자듯 떠나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한단다..]

조용히 잠자듯 떠날 수 있게 매일 기도하신다고

손에 든 멍을 만지면서 말씀하시던 아버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올 4월, 요양원에 벗꽃이 만발할 때 두 분이서

찍었다는 사진을 보며 벗꽃 피는 날

가고 싶다고 혼잣말을 하시던 아버님..

그런말씀 마시고 오래오래 사시라고 100살까지 아직

6년이나 남았으니 힘내시라는 말을

 해드렸더니 슬픈 눈으로 날 쳐다보셨다.

삶과 죽음은 늘 가깝게 우리 곁을

맴돌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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