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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한국에서 보낸 둘째날, 행복이 보인다.

by 일본의 케이 2014.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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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태현이(조카)는 깨달음이 있는 우리방으로 달려 들어왔다.

그걸 본 제부가 태현이가 형님을 진짜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한마디 했다.

오후에는 서울로 다시 올라가야했기에 짐을 챙기고 있던 깨달음이 태현이에게 늦은

새뱃돈을 주니까 괜찮다고 안 받는다고 몇 번 빼더니 어색하게 받는다.


 

간단하게 아침을 마치자 오빠, 언니네 가족들이 모였고, 함께 아빠가 계시는 납골당으로 향했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이곳은 늘 썰렁하다는 느낌이 든다. 등짝이 오싹할 만큼....

오빠가 간단하게 기도를 하고,,,나도 모르게 죽으면 다 소용없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바로 집으로 돌아와 저녁에 있을 추도식 준비를 했다.

친척들이 모이고 추도예배 시작,,,

올 추도식은 왠지모르게 더 쓸쓸하고 텅빈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예배가 끝나고 식사를 함께 했다.

깨달음이 좋아하는 홍어, 꼬막 이외에도 간장게장, 양념게장, 불낙, 문어, 해삼까지

제삿상이 아닌 잔치상처럼 다양한 음식들이 즐비했다.

깨달음이 사가지고 온 정종으로 한 잔씩 주거니 받거니,,,,, 올 해는 아빠 얘기가 별로 나오지 않았다.

올림픽,금메달,부동산,은행이자,군대 얘기가 오갔던 것 같고,,,,,

그렇게 아빠의 기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엄마와 동생가족들도 서울 갈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깨달음은

소치 올림픽 폐회식에서 소개하는 평창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왜 [아리랑]을 오페라식으로 부르냐고 아리랑은 저렇게 부르면 안 된다고

전통 그대로 살려야 하네 마네 그러길래 난 그냥 못 들은 척했다. 

그랬더니 끈질기게 또 묻길래 조 수미라고 유명한 오페라 가수여서 그런다고 설명을 해줬어도

저건 [아리랑]이 아니라고 편곡없이 그대로 불러야한다고 약간 흥분하는 기색이 보이길래

그냥 살며시 자리를 피해 버렸다.

 

서울 갈 준비를 마치고 빠트린 것 사러 슈퍼에 갔다 오던 길에

깨달음이 엄마한테 드린다고 사가지고 온 캔디 꽃다발,,,

5월 어버이날 못 오니까 미리 드리는거라고 전했더니 

엄마는 깨서방 마음이 꽃보다 예쁘다고 칭찬이 자자하셨다.

 

 KTX에서도 깨달음과 함께 앉은 우리엄마.

 

우리 엄마는 깨서방하고 함께 움직였던 모든 시간들이 참 즐거웠다고

멀리 있으면서도 이 늙은이를 신경 써 줘서 너무 고맙다고

한국 한 번씩 나오면 돈도 깨지고 시간도 축나는데 매번 무슨 일 있을 때마다

와 줘서 미안하다고 다음에는 굳이 애써서 한국 나오려고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깨달음은 당연히 와야하니까 온 것 뿐이라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자긴 좋았다고 대답을 했다.

듣고 있던 내가 아무리 말려도 깨서방은 안 듣는다고, 은근 자기 고집이 있어서

사람 말을 안 듣는다고 그랬더니 깨달음이 자기 욕하는 줄 알고 날 가볍게 째려봤다.

[ ................... ]

슬며시 창가로 고개를 돌렸더니 유리창에 비춰지는 우리 가족들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비록 아빠는 떠나셨지만 남은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따뜻하구나....

이런게 행복이겠지,,, 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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