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또 소리 없이 소포를 보내왔다.
우체국 큰 박스를 열어보니 필요한 것들이
가득 들어있다.
마치 깨달음 생일을 미리 알고 보낸 것처럼
깨달음을 위한 것들이 많았다.
목이 약해 늘 기침을 달고 살아서 항상
챙겨 먹어야 하는 기침약,
그리고 생강차, 도라지액기스 까지..
친구에게 고맙다는 카톡을 보냈다가
통화를 했다.
[ 어쩜 이렇게 꼭 필요한 것들만 보냈어? 마침
깨달음 생일인데 너무 좋아한다, 자기한테
생일선물 보낸 거라고 ]
[ 작년에 한국에서 너랑 마트 갔을 때
니가 샀던 것들 그대로 기억해 내서 샀지 ]
[ 죽염치약이랑 청국장 가루, 정말 내가
사려고 했던 건데 텔레파시가 통했나 했어 ]
[ 그러게,, 마트에 가니까 바로
떠오르더라, 그래서 바로 샀던 거야 ]
우린 청국장이 얼마나 몸에 좋은지 건강얘기 좀
하다가 생일을 맞이한 깨달음이 몇 살이 됐는지
그런 대화로 이어졌다.
친구의 남편은 올해에 65살이 되었는데
갑자기 노인이 된 것처럼 행동이나
사고하는 게 변화가 생겼다며 지켜보고 있으면
가엽기도 하고 나이가 꼰대를 만든다는
생각에 요즘 가장 큰 고민거리라고 했다.
[ 깨달음씨는 여전히 젊게 보이더라 ]
[ 나이에 비해 어리게 보이는 건 사실인데
깨달음도 많이 늙었어 ]
여자들도 나이를 먹으면 할머니 같은 짓을
하듯이 남자들도 그런 것 같다며
남녀를 떠나 나이가 들면 더 조심하고 더
어른처럼 성숙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얘길
꽤 오랜 시간 나눴다.
그리고 다음날, 깨달음 생일을 맞이해
이른 저녁식사를 하러 외출을 했다.
생일축하 편지를 읽던 깨달음이
갑자기 슬퍼진다고 했다.
[ 왜? ]
[ 그냥, 나이 먹은 게 서글퍼져..]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니 걱정 말라고
위로를 해주고 친구 남편 얘길 했다.
예전에 안 그랬는데 살림에 잔소리를 하기
시작하고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오지랖을
떨고, 잘 씻으려고도 하지 않고
젊었을 때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는
상황을 말해줬더니 분명 외로워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 외로워서?]
[ 남자들은 나이를 먹으면 뭔가 가슴이
텅텅 비기 시작하는 느낌이야,,
그래서 참견하고 싶어지고,,
관심을 받고 싶어서지..]
[................................ ]
직장에서도 물러나고 할 일이 없어지면서
살림이 눈에 들어오고,, 뒤늦게 취미를
시작하기에는 돈도 들고 시간도 들고
주변 눈치도 보이고 그러다 보니 점점
위축되고 그런 심리 상태가 계속되는 거라며
60대 아저씨들을 대변하듯이 얘길 했다.
[ 깨달음, 왜 남자들은 나이를 먹어도 관심을
받으려고 하는 거야? ]
[ 남자는 나이를 먹어도 철이 안 드니까..
아무튼, 남자는 일 할 곳이 없으면
그냥 자신감이 사라지는 거야,,
그래서 아내한테 버림받을까 봐
더 전전긍긍하는 거지..]
당신도 외로웠냐고 물었더니
나이에서 오는 외로움 같은 게 있는데
우울한 60대가 되지 않도록 노력할 건데
주변 친구나 선배들 보면
꽤나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가장 든든하게 챙겨줘야 할 사람,
끝까지 같이 가야 할 사람은 아내라고
생각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아내의 비위를
잘 맞춰가면서 살아야 하는 게 중요하단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미움받을 수
있으니까 아내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사는 게 남은 인생이 조금은 편할 거라고
확신한단다.
샤부샤부 냄비에 야채를 순서대로 넣으면서
조심스레 내게 자기가 좀 노인 같은 짓을 해도
좀 너그럽게 봐줄 수 있겠냐고 묻는다
[ 깨달음, 당신은 지금도 오지랖이 넓은 편인데
더 넓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
[ 근데 나도 모르게 자꾸만 사람들에게
관심이 가고 친절을 베풀고 싶어 져 ]
[ 친절하고 참견, 그리고 오지랖은 성격이
다른 거야, 그걸 잘 구별해서 행동해야 돼.
그러니 당신은 봐도 못 본척하고
지나가는 연습을 했으면 좋겠어 ]
[ 알았어.. 그래도 나이 먹은 남자들을
세상의 모든 아내들이 좀 안쓰러운 마음으로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야 ]
일본인이 끊임없이 저축을 하는 이유
거실 노트북 위에 6만엔이 놓여있었다. 2만5천엔은 여행경비로 우리가 매달 적립하는 돈인데 나머지는 무슨 뜻인지 몰라 샤워하고 나온 깨달음에게 물었다. [ 이거 뭐야? ] [ 지난번에 외식할 때
keijapan.tistory.com
돈 앞에선 일본인도 다 똑같다 -2
우린 결혼 초부터 서로의 스케줄을 공유하는 편이어서 대략 그 사람의 행동반경을 유추하는 데 그리 어렵지 않다. 도쿄를 벗어난 미팅이나 출장은 물론 웬만한 약속들도 대충 알고 있다. 굳이
keijapan.tistory.com
자리를 커피숍으로 옮겨 팥빙수를 먹으면서도
솔직히 여자들은 혼자서도 잘 살지만 남자들은
그렇지 못하니 남편들을 버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생일을 맞아 새삼 자신의 나이를 눈으로 확인한
깨달음은 60대가 아저씨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고뇌와 심리적 상태를 열변했다.
일본 은행에서 남편이 겪은 일
집으로 도착한 서류를 들고 집을 나서기 전깨달음에게 전화를 하는데 통화 중이었다.전철을 타고 시부야에 내려 다시 통화를시도했지만 받지 않았다.오늘 중으로 인감도장을 찍어 반송해야 하
keijapan.tistory.com
남과 여 모두가 나이를 먹으면 서로가
측은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무난한 노년을 맞이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살아보면 그게 되지 않아서 다투고,
화나고, 황혼이혼까지 가고 만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인간은 혼자 살아야 한다는
나만의 지론에 또 다다르게 되지만
중년이 되고 노년으로 향해가는 남편들이
갖게 되는 공허함과 무상함을 상대 배우자가
모두 채워줄 수는 없다.
눈치껏 나보다는 상대를 먼저 배려하고
위로해주려는 마음 자세로 행동하며
태도로 보여주면 원만한 노후를
혼자가 아닌 둘이서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지메를 당했다는 친구에게 (0) | 2025.02.03 |
---|---|
일본 속, 기브엔 테이크의 진실 (0) | 2025.01.06 |
일본 은행에서 남편이 겪은 일 (0) | 2024.12.24 |
무제 (0) | 2024.12.05 |
전철 안에서 소리 죽여 웃었다 (0) | 2024.11.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