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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25

내 생일날, 남편이 털어놓은 고백 마지막 기항지는 나가사키(長崎)였다. 나가사키는 여행으로 세 번이나 왔던 터라 하선을 할까말까 망설이다 일단 안 내리는 걸로 하고 아침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거의 잠들 때까지 먹고 마시고를 반복하는 크루즈생활은 장점이며 단점이다. 운동기구에 따라 두 군데로 나눠진 스포츠짐은 유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는 서양인과 동양인 두 그룹으로 나눠져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매일 아침과 저녁은 코스로 정찬을 먹고 뷔페는 거의 24시간 풀가동이 되어 언제든지 골라 먹을 수 있고 수영장에는 피자와 햄버거가 냄새로 식욕을 자극하고 오후엔 티타임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달달한 디저트와 음료, 아이스크림들이 유혹한다. 그러다 보니 입이 한시도 쉴 틈이 없고 우린 특히 가는 곳마다 술을 마시다 보니 안주거리를 다운받은 어플로 주문.. 2023. 9. 25.
이혼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깨달음 친구인 타무라 상(田村) 에게 김치를 보낸 건 한 달 전이였다. 늘 그렇듯, 여름이면 여름대로, 겨울이면 겨울대로 일본인 지인들에게 김치를 보내는 것도 10년이 지나가고 있다. 연일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에 이열치열하도록 칼칼한 김치로 좀 맵게 담아 보냈다. 이번에도 배추, 무, 오이김치 외에 창난젓과 진미채 넣었다. 맛있게 잘 먹고 있다는 문자를 받았는데 그가 맥주를 보내왔다. 깨달음이 보자마자 이 자식은 맨날 술만 보낸다면서 집에서 술 안 마시는데 쓸데없이 보냈다며 투덜거렸다. 대학동창인 타무라 상과는 지금까지도 일 관계로 자주 얼굴을 보는 사이다보니 할 말 못 할 말 다 털어놓은 절친중의 한 명이다. [ 다시 돌려 보내버릴까? ] [ 그건 실례겠지... ] [ 김치 보내준 당신한테 고마워서 .. 2023. 7. 25.
결혼 10년이 넘으면 이렇게 변한다 3일 연속 여긴 비가 내린다. 만개한 벚꽃을 보기 위해 빗속에서도사람들은 우산을 받쳐 들고 벚꽃 명소에 모여들었다. 우리 부부는 이번달까지 마감해야 할 일들이 많아 각자 자기 방에 꼼짝 않고 박혀서 일을 하다 해가 져서야 피로도 풀 겸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왔다. 쌀쌀한 날씨에는 따끈한 소주 오유와리(お湯割り)가 제격이다. 눈앞에서 바로바로 구워주는 제철 야채들은 달달한 육즙이 터져나와 술이 물처럼 들어간다. 깨달음은 연이은 프레젠테이션이 있어 직원과 연습을 하는데 자기가 지적한 부분을 수정하지 않고 고집을 피워서 머리 아프다고 했다. [ 당신이 프레젠 하는 법을 알려주면 좋은데 ] [ 나는 내 일에만 잘해.. 건축은 몰라 ] [ 아니, 프레젠 방식을 모른 것 같애.. 아무리 설계디자인이 좋아도 오너에게.. 2023. 3. 26.
결혼은 미친짓이다. [ 축하해, 케이 ] [ 축하해, 깨달음 ] 건배를 하며 우린 약속이나 한 듯 뭘 축하한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3월 25일은 우리가 혼인신고서를 제출한 날이고 부부가 되었다는 걸 서류상으로 입증받은 날이기도 했다. [ 깨달음, 그 날 기억해? ] [ 응, 저녁에 서로 퇴근하고 만나서 신주쿠 구약소 야간창구에 가서 제출했잖아] [ 그다음은? ] [ 창코나베 먹으러 갔었지 ] 엊그제 일처럼 너무도 생생한데 벌써 10년이 지났다. [ 은빈은 정말 9월에 결혼하는 거야?, 신혼집은 어디래? 신혼여행은 어디로 간대? ] 깨달음은 조카 은빈의 결혼에 궁금한 게 많았다. [ 날 잡았다고 했잖아 ] [ 그때까지 코로나가 잡히지 않겠지? ] [ 그냥, 못 간다 생각해 ] 결혼날을 잡아두고 여러 가지 신혼.. 2021. 3. 26.
신개념의 부부들이 늘어가는 일본 머리를 자르기 위해 일단 예약를 할 생각이였는데 괜찮으시면 오늘 비어있으니오시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옷을 챙겨입었다.미용실에 도착할 때까지 어떻게 자를 것인지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머리를 멋지게 단장하고, 곱게 화장을 하며 정성껏 네일아트를 하는 여성들의 일반적 꾸미기엔 애초부터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보니 오늘도 삭발이 제일 편할 거라는 생각만하고 미용실에 들어섰다.귀 밑까지 짤막하게 잘린 어느 헤어모델의단발머리 사진을 보여주며 볼륨 넣지 마시고그냥 이대로 잘라주시라 부탁한 뒤 난 가져간 책을 꺼냈다.[ 댁이 이 근처세요? ][ 저희 가게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 오늘 너무 춥죠? ]난 그냥 건성건성 대답을 했다.일본 미용실은 너무 친절해서 불편할 때가 있다.그냥 머리만 잘라줬으면 하는 바람에 책을 .. 2020. 12. 23.
부부싸움을 푸는 남편만의 방법 아침 일찍 거실로 나가보니 내 노트북 위에 편지가 놓여있다.열어보지 않아도 분명 반성과 후회, 사과의내용일 거라는 예측은 할 수 있었다.부부싸움이 있는 다음날이면, 깨달음은 늘 이렇게 곱게 편지를 써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특히 자신이 많이 잘 못한 것 같은 생각이 지배적이면어김없이 반성문?과 같은 편지를 쓴다. 첫 줄부터 [미안해요]라고 시작된 걸 보니아주 많이 미안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자기가 내 입장을 잊은 채 이기적이였던 것에 대해 후회하고 반성한다는 글이 적혔고 중간엔 [사랑해요]라고 급하게 써넣은 듯한 문구도 나왔다.그리고 마지막장엔 00레스토랑에서 다시 한번자신의 진심을 얘기할테니 꼭 나와달라는 부탁도 첨부되어 있었다.그래서 나간 곳은 게전문집(かに道楽) 이였고엘리베이터가 열리자 맞은편 대기.. 2020. 9. 10.
그녀의 자존감을 높여준 한국요리 코리아타운이라 불리우는 신오쿠보역 개찰구에 들어서자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9월이 시작된 첫주말, 여전히 한여름처럼 33도를 향해가는 날씨탓에 그녀는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아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만나자고 몇 번이고 약속을 미루고 미뤘는데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며 그녀가 지난주에 전화를 했었다. 런치를 같이하고 싶다고 그녀에게 난 식사는 다음에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양해를 구하고 차를 마시기로 했다. 40대후반인 메이짱은 돌싱이며 내게 그림치료 수업을 1년정도 받았었다. 3년전 이혼을 한 후로 보기 시작한 한국 드라마에 빠지면서 혼자서 한국여행을 두번 다녀왔고 요리에 관심을 보여서 내가 한국요리를 이것저것 가르쳐주곤 했었다. 그녀는 커피숍에 가기 전, 사고 싶은 게 많다며 한국마트.. 2020. 9. 6.
코로나 이혼이 일본에서는 현실이였다 점심시간에 전화가 걸려왔다. 두달여간 라인을 통해 연락을 했었는데 오늘은 통화를 하고 싶어했다. [ 남편이랑 얘기가 끝났고, 이혼하기로 했어.., 재산분할이랑 자녀양육권도 정리했고,, ] 이번주에 보험을 해약한다고 했다. 호시노 상은 결혼 22년째이며 남편과의 사이에 다운증후근의 15살 딸을 두고 있다. 코로나 전엔 꽤 자주 만나 딸의 교육에 관한 얘길 나눴고 내게 미술치료도 받았는데 코로나 이후론 만나질 못했다. [ 호시노 상, 정말 도장도 찍었어요? ] [ 응, 다 찍었어, 돈이 정리되면 구약소에 제출만 하면 끝나! ] [ 정말 마음을 굳히신 것 같네요 ] [ 응, 코로나 이혼이야 ] 코로나 이혼이라는 말을 해놓고는 자신도 웃겼는지 소리내서 웃었다. 말로만 듣던 코로나이혼을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 2020. 7. 1.
반백년을 살아도 모르겠다 월요일 아침, 깨달음은 러시아워를 피해출근을 했다. 일주일만에 맞는 혼자만의 시간을 좀 유용하게 쓰고 싶어져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였다.24시간을 그것도 일주일 내내 함께 있어야하는 시간들이 서로에게 부담스럽다는 건 사실이다.그래서도 이런 시간은 아주 귀하다.먼저 구석구석 청소를 깔끔히 마치고 차분히 머리를 말리는데 자꾸만 흰머리가 눈에 거슬린다. 언제 또 이렇게도 많이 자랐는지..머리를 좀 자른 후에 염색을 해야할 것 같아지난주 원장님과 통화를 해봤는데 역시나 코로나로 휴업중이라 하셨다. TV에선 아직까지 PCR검사를 늘려야 한다는 얘기로시끌벅적대지만 이젠 그것도 식상해졌고 언젠가 종식되겠지..누군가가 백신을 만들겠지라고남의 일처럼 내 관심사에서 벗어나버렸다. 한두개 나던 흰머리를 거울에 얼굴을 바짝 .. 2020. 5. 12.
재혼,,그래서 더 어렵다 왠만해서는 한여름에도 차가운 음료를 주문하지 않는 내가 오늘은 얼음이 둥둥 떠있는 것으로 목을 축였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싶다는 생각에 한모금 마셨더니 역시 괜한 짓을 했단 후회가 컸다. 걱정 반, 불안 반으로 그녀를 만났고 평정심을 잃지 않고 언제나처럼 이성적으로 얘길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적당히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로 주문을 하고 우린 그냥 그간 잘 지냈는지 서로의 생활을 물었다. 일 때문에 온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에 그녀가 스스로 얘길 풀어내길 기다렸다. [ 미안해요..갑자기,,] [ 아니에요,, 마침 시간이 나서 괜찮아요] 할말이 많았을텐데 그녀는 술 잔만 만지작거리고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 깨달음님은 잘 계셔요? ] [ 네 ] 그 다음 그녀가 한 얘기는 자신이 시작한 작은 공방.. 2019. 11. 29.
흔들려도 믿고 사는 게 부부이다 [ 다 챙겼어? ][ 응 ][ 2박 3일동안 같은 호텔이야? ][ 아니, 달라, 현장이 멀어서... ]홋카이도에 출장을 가는 깨달음은 언제나처럼자신의 옷가지를 가방에 챙겼다.주말이였으면 나도 겸사겸사 따라갈텐데 그러지 못했다.다음날 아침,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하는데현관 입구에서 까불까불 거렸다.[ 왜? 할 말 있어? ][ 집 잘 보고,,이번 출장은 이틀동안 늦게까지술도 마시고 그럴거야 ][ 응, 알아서 해. 적당히 마시면 되지. 그걸 왜 새삼스럽게 말하는 거야? ][ 그냥,,] 그렇게 출장을 떠나고 나도 바로 집을 나섰다.오후쯤 되서 점심 식사를 하는 중이라고성게알 사진을 보내왔다.내가 제일 좋아하는 성게를 혼자 먹으려니 괜시리 미안해진다고 다음에는 꼭 같이 먹자는내용의 카톡이였다.그리고 난 보내줘도 .. 2019. 5. 24.
이혼에 관한 일본 아줌마의 명쾌한 조언 10일간의 긴 황금연휴가 시작된 이곳은왠지모를 설레임이 술렁거리고 있다.깨달음은 회사, 난 모임이 있었다. 연휴 첫날부터 중년 아줌마 4명이 모여서 식사를 하기로 한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말대로 여자들끼리 식사를 하는 시간을갖자는 것이였다.서로 하는 일은 다르지만 우리 모두 임상미술사라는 공통점에서 공유할 게 많았다. 사는 곳도 제각각이고 시간내는 것도 쉽지않았는데 오늘은 장소와 시간도 만장일치였다.다들 50대, 60대이여서 자녀가 결혼을 한 분도계시고 내가 제일 어려서인지 날 항상 젊은 세대라고 부른다. 레스토랑에 들어가 모두 맥주로 건배를 하고모두 오랜만에 만나서인지 그간 있었던 일들을 서로 주고 받으며 허기진 배를 채워갔다. 뒤늦게 임상미술을 배워 새로운 길을 열어보려고했는데 .. 2019. 4. 28.
남편의 생일날,, 내가 쓴 편지 지난 주말 우린 도쿄를 잠시 떠났다.니가타(新潟)는 아직도 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차장 넘어 보여지는 풍경은 한편의 수묵화 같기도 하고 도쿄와는 다르게 이곳은 겨울세상에 갇혀 있는 듯했다. 아침 7시, 신주쿠 출발행 버스투어를 참가하게 된 것은 마지막 눈을 보러가자는 깨달음의 느닷없는 제안이였다. 급하게 찾다보니 유일하게 빈 자리가 남은 투어는 이 곳 뿐이였다.아침, 점심, 저녁 세 끼가 포함된 버스투어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며 깨달음은 아주 만족스런 얼굴을 하고 여유롭게 신문을 읽었다. 아침으로 나온 생선정식을 먹고 난 후 쌀로 유명한 니가타산 쌀 퍼가기 이벤트에 참가했는데 남성 참가자가 별로 없어서인지 깨달음이 두 손으로쌀을 입빠이 떠 올리자 옆에서 보고 있던아가씨들이 자기 대신 해주면 좋겠다고 했.. 2019. 3. 13.
한일커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고민 나를 꼭 만나고 싶다고 했다. 내 전화기에 그녀의 이름이 떴을 대부터 왠지모를 직감이 왔었다. 일본인과 결혼생활 올해 10년을 맞이하는 그녀는 내 후배의 친구로 알게 된 사이다. 역에서 만나 그녀의 표정은 예상대로 어두웠다. 먼저 식사를 해야할 것 같아서 미리 알아둔 조용한 곳으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모든 삶의 의욕을 상실해 버린듯 한걸음 한걸음이 무겁게 보였다. 식사를 하며 나는 지난번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들에 관한 얘기, 크리스마스, 연말,,그런 아주 가벼운 얘길 꺼냈다. 본주제에 들어가면 서로 밥을 먹기 힘들 것도 같았고 아무말도 하지 않으면 묘한 침묵의 무게가 더 견디기 힘들 것만 같아서였다. 그녀는 가끔 웃는 것 같다가도 바로 굳은 표정으로 돌아갔다. [ 언니,,,나 이혼하고.. 2018. 12. 14.
결혼이란게 다 그렇다 건배를 하기 전, 스탭에게 양해를 구하고소트케익에 불을 붙였다 얼른 껐다.옆에서 슬쩍 보고 있던 스탭이 케익을 다시넣고 있는 우리에게 드셔도 된다고했지만 우린 조용히 집어 넣었다.깨달음이 잔을 부딪히며 나지막히 속삭였다[ 교론 추카하니다(결혼 축하합니다) ][ 벌써 8년을 맞이하네.. ][ 고마워, 케이씨~ ][ 뭐가? ][ 당신의 사랑에 감사, 앞으로도 잘 부탁해 ]사랑을 준 기억이 별로 없다고 했더니내게 눈을 흘기면서 또 와인잔을 부딪힌다.[ 깨달음, 모처럼이니까 서로에게 감사한 게 있으면 얘기해 볼까? ][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줘서 고맙고, 귀여워해줘서 고마워... ][ 그 두개 뿐이야? ][ 이 두개면 충분하지 않아? ][ .................................] [뭐든지 .. 2018. 10.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