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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신랑(깨달음)273

남편이 쓴 한글,,,환장해 거실 테이블에 책이 놓여있는 걸 보니 아마도 아침에 공부를 한 듯하다. 깨달음이 한글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은 약 두 달 전부터였다. 2년 후에 한국에 가서 살아야 할 확률이 높아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한국어인데 좀처럼 외워지지 않는다며 투덜댔었다. 자음, 모음을 습득하고 나서 하나씩 단어를 알아가는 걸 즐거워하다가 받침이 붙으면서 연음화 되는 과정이 너무 어렵고 복잡해서 머리를 쥐어뜯더니 며칠은 책을 덮고 펼치지 않았었다. 그래도 주말이면 내가 전체적으로 봐주기도 하고 어려워하는 부분을 쉽게 설명하거나 생략해도 되는 것들을 정리해주는데 많이 어려워한다. 숫자, 날짜, 요일 등,, 공부할 게 많다는 걸 알기에 되도록이면 깨달음이 즐겁게 할 수 있게 그림이 많은 책으로 한글 기초과정은 일단 마쳤는데 돌아.. 2022. 5. 26.
시어머니, 남편, 그리고 마지막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자식들이 모이고 손녀와 증손자가 응원한 덕분에 일주일을 더 견디셨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발신자가 서방님 이름이 뜬 핸드폰 화면을 내게 내밀며 전화를 받던 깨달음이 메모지에 8시 41분이라고 적었다. 서방님은 교토에서 요양원으로 향하는 길이라며 사망신고서를 받는 것부터 앞으로 해야 할 절차에 관한 얘기가 오가는 동안 나는 신칸센을 예약했다. 2시간 동안 달리는 신칸센 안에서도 또 두 시간을 더 타고 간 버스 안에서도 깨달음은 잠을 자지 않았다. 무슨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아무 생각이 없다고 했다. 울진 않았다. 그렇다고 억지로 참고 있는 것 같진 않았지만 무거운 침묵이 깨달음을 감싸고 있었다. 회관이라 불리는 곳에 안치되어 있던 어머님은 다다미방에 누워계셨다. 서방님과 깨달음이 번갈.. 2022. 4. 19.
남편은 여러모로 부자다 오다이바(お台場)에 있는 회원제 호텔에 다녀왔다. 깨달음이 이번에 새로 설계할 호텔의 디자인을 참고하기 위해 견학 겸 조사차 오게 되었다. 회원이 아니면 입장을 할 수없어 소개장과 그 분과의 관계까지 우리들 신상을 공개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리조트 호텔 오너처럼 회원제 호텔도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약간 다르고 여긴 연예인 오너가 많단다. [ 당신한테 소개한 분은 여기 회원이야? ] [ 아니, 그분도 친구 소개로 들어왔었대 ] [ 근데 무슨 디자인을 원하는 거야?] [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런식으로 설계해주라는 거지 ] [ 그럼, 고바야시(小林) 상이 의뢰인이야? ] [ 응 ] [ 고바야시 상,,엄청 부자인가 봐..] [ 부자긴 하지..롯폰기(六本木)에 맨션을 몇 채 가지고 있으니..근데 알아보니까 여기 .. 2022. 3. 28.
드디어 남편이 한국어를 시작했다 작년, 시댁에 다녀오던 길에 넘어져 안경을 부러트린 깨달음이 새 안경을 맞춘다고 했다. 그 사고? 가 나고 바로 사주겠다고 했을 때는 안 쓰고 둔 옛 안경으로도 괜찮다고 하더니 오늘은 새로 맞추겠다고 했다. [ 알았어. 깨달음, 내가 사 줄게 ] [ 그럼 그거 생일 선물로 해줘 ] [ 아니. 안경은 그냥 사주고, 생일 선물은 또 다른 거, 필요한 거 뭐든지 사줄게 ] [ 아니야, 안경이면 돼 ] 마침 엊그제가 생일이었던 깨달음에게 좀 더 멋지고 괜찮은 선물을 하고 싶었는데 갖고 싶은 게 없단다. [ 봄 자켓 하나 사줄까? ] [ 아니, 지금 있는 것도 거의 새 거야, 2년 전에 샀는데 두서너 번밖에 안 입어서 코로나라 여행을 못 가서..] 즐비하게 놓인 요즘 유행 아이템을 하나씩 써보고는 제일 젊게 보이.. 2022. 3. 7.
이 블로그는 남편 것? 365일 영업을 하는 우체국 본점 덕분에 오늘도 집에서 바로 소포를 보낼 수 있었다. 한국으로 보내는 소포는 무게가 있어 이런 서비스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게 참 고맙다. 깨달음은 아저씨가 엘리베이터를 탈 때까지 지켜보고 현관문을 닫았다. [ 무사히 잘 도착하겠지? ] [ 그러겠지, 전화번호를 몰라 적지 않아서 좀 불안한데 지금까지 별 문제없었으니까 괜찮겠지..] 예정에 없던 소포를 보낸 건 온전히 깨달음 때문이었다. 그저께 아사쿠사(浅草) 현장을 다녀오는 길에 샀다며 블로그 이웃님들께 보냈으면 한다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사왔다. 지난 연말, 이웃님들께 연하장을 보낼 때 다 보내고 없을 것 같아 또 사 왔다며 손거울, 손지갑들을 내밀었다. 내가 괜찮다고 사 오지 말라고 해도 사 온다는 걸 알기에 더 .. 2022. 2. 21.
요즘, 남편이 자주보는 유튜브 코로나 감염자가 10만을 넘으며 우린 집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책을 읽거나 런닝머신을 타기도 하고 낮잠을 자기도 하며 자유로우면서도 약간은 지루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아침부터 깨달음은 거실과 자기 방을 왔다 갔다 했고 어렴풋이 노랫소리도 나고 영화 속 총소리 같은 것도 들려와 부산스러웠다. [ 깨달음,,뭐 해? 드라마 안 봐? ] [ 다 봤어 ] [ 그 학생이 좀비 되는 거 지금 인기래 ] [ 벌써 봤어.] 넷플릭스에서 인기있는 영화, 신착 드라마는 주로 퇴근해 저녁을 먹으면서 시작해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약 5시간씩 시청을 하다 보니 웬만한 드라마도 2, 3일 정도면 모두 보고 만다. 그런데 요즘, 넷플릭스에 불만이 생겼는지 역사를 기반으로 한 사극 드라마가 생각보다 너무 없어서 예전의 n.. 2022. 2. 7.
귀찮아도 먹는 건 즐겁다 2021 마지막 날,, 우린 쯔끼지(築地) 시장에 다녀왔다. 싱싱한 야채, 생선들을 구매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단순히 연말분위기를 느끼려 심심해서 나왔는데 직접 와 보니 생각보다 물건들이 좋은 게 많아 먹고 싶은 것들을 사기로 하고 골목골목을 다니는데 예상대로 사람들이 넘쳐났다. 내가 좋아하는 조림전문집에서 다시마조림을 살까했는데 신정에 필요한 조림반찬들만 즐비할 뿐, 평소 때 팔던 조림들은 내놓지 않은 상태였다. 점심시간까지 겹쳐 어딜 가나 기다리는 줄 서있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깨달음은 그 틈을 비집고 내 뒤를 졸졸졸 잘 따라왔다. 사람들이 많아 물건들을 제대로 보기 힘든 정도였지만 깨달음은 행여나 꼬막을 못 보고 놓칠까봐 생선가게 앞에서 목을 길게 빼고 유심히 관찰했다. 돌고 돌아 마지막에 들른 생선가.. 2022. 1. 3.
깨서방은 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 오머니, 선물 좋아요? ] [ 응, 마음에 들고 말고, 크리스마스에 딱 받아서 더 기분이 좋네 ] [ 한국은 추워요? ] [ 응, 징하게 춥네. 일본은 덜 춥제? ] [ 일본은 안 추워요 ] 항상 하는 말들은 내 통역이 없어서 얼추 맞춰가면서 답을 하는 깨달음이 신통했다. [ 오머니. 내년에 만나요 ] [ 긍께..내년에 만나믄 좋것는디..이놈의 코로나가 어찌댈랑가 모르겠네.. 아무튼, 내가 우리 깨서방 보고 싶어 죽것네 ] [ 네, 많이 많이 보고싶어요 ] 크리스마스에 받아보시게 서둘러 보냈던 소포가 잘 도착했고 엄마는 많이 흡족해하셨다. [ 근디..뭔 금반지가 들었다냐? ] [ 아,,그거,,금반지가 아니고 스카프에 끼우는 링이야,,엄마,,] [ 아,,그래...나는 뭔 금반지를 보냈다냐했네, 스카프가.. 2021. 12. 27.
자기 인기에 취해 사는 남편 깨달음 겨울용 양복을 맞췄다. 크리스마스 선물 겸 깨달음이 현역 생활을 하는데 마지막 양복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 가장 좋은 원단으로 골랐다. 옆에서 보고 있던 깨달음이 너무 비싸다고 망설이길래 마지막까지 멋진 양복 입고 열심히 일하라는 뜻이라고했더니 그런 뜻이였냐면서 순순히 수치를 쟀다. 재단사분이 작년 여름에도 한 벌 맞추지 않았냐며 허리둘레가 1센티 줄였다고 하자 허리는 다이어트하느라 줄은 것이고 재난지원금 나왔을 때 여름용으로 한 벌 맞췄는데 이젠 양복 맞추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답했다. 자기 취향에 맞는 버튼과 안감까지 고르고 수납장이 배달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바로 백화점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릇 욕심이 많은 것도 있고 파티용 그릇들을 세트로 사다 보니 수납공간이 부족해 새로 주.. 2021. 12. 10.
갑자기 한국 이름을 만든 깨서방 5년 전 사서 딱 한번 사용했던 재봉틀을 버리기엔 약간의 미련이 남았지만 그냥 스티커를 붙였다. 여름용 좌식의자도 너무 멀쩡한 상태이지만 버리기로 했다. 깨달음은 오전 내내 자기 방에서 도면을 치느라 거실로 나오지 않았고 난 쓸데없는 것들, 아니 3년이상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들을 정리했다. 마음이 심란하고 생각들이 얽힐 때면 머릿속을 비우고 싶어 청소를 하거나 무언가를 비우고 정리를 하다 보면 버리다 보면 어느샌가 머릿속도 비워져 개운해진다. 버리고 싶은 게 너무 많았지만 적당히 골라 재활용품을 내놓으러 밖으로 나가면서 미니멀 라이프까진 아니라도 호텔처럼 심플하고 깔끔하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또 했다. 깨달음은 나와 반대로 잡다구리 한 물건들이 많고 버리지를 못해 보고 있으면 차곡차곡 채워진 상자들에 .. 2021. 11. 15.
누가 남편을 일본인이라 할까. 오전 내내 깨달음은 자기 방에서 나는 내 방에서 각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주말을 즐기고 있었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3시가 다 되어갈 무렵 깨달음이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 뭐 해? ] [ 책 봐 ] [ 우리 밖에 나갈까? ] [ 어디? ] [ 시장에 ] [ 왠 시장? 뭐 살 거 있어? ] [ 아니. 그냥,, 사람들 구경하러...] 쯔키지 (築地)시장은 이미 영업이 끝났고 다른 재래시장은 우에노(上野)밖에 없는데 굳이 쇼핑할 것도 아니면서 가야 하는 이유가 뭔지 다시 물었더니 살 게 생겼다고 했다. 한국 같으면 재래시장에서 이것저것 살 게 많지만 이곳에서는 특별히 사고 싶은 것도, 살 것도 없어 그냥 시장 분위기를 느끼고 싶을 때 가끔 찾는 곳이 바로 이곳 우에노 아메요코(アメ横)이다. 한국과 별.. 2021. 11. 1.
남편의 생각을 듣다가... 11시에 집으로 오겠다던 공인 중개사분이 20분 전부터 집 앞 도로에 차를 세워두고 열심히 창문을 닦고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명함을 받은 후 차를 타자마자 바로 오늘 보게 될 네 곳의 맨션 정보가 상세히 적힌 파일들을 하나씩 훑어보았다. (일본에서 맨션 マンション 은 한국의 아파트, 아파트 アパート는 한국의 빌라를 칭함) 신혼이나 독신들이 살만한 평수와 역세권으로 포커스를 맞춰서인지 우리가 원했던, 아니 깨달음이 생각해 둔 위치와 평면도로 준비되어 있었다. 첫 번째 집부터 조망권을 시작으로 여러 질문을 계속하는 깨달음 때문인지 긴장한 탓인지 공인 중개사분이 계속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냈다. 지은 지 20년이 지나도 관리를 얼마나 잘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르다며 관리업체가 어디인지까지 물으니 하나하나 .. 2021. 10. 18.
남편이 좋아하는 한국식 식사법 약간씩 걸을 수 있게 되었던 한 달 전부터 난 집에서 예전처럼 식사준비를 했다. 지난주 병원에서 아직 골절부분이 100% 붙지 않았다는 의외의 소견을 듣고 좀 쇼크였지만 시간이 약이니 조심하면서 기다리면 붙을 거라 믿고 일상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오늘도 언제나처럼 누룽지에 아침을 준비했고 그걸 말없이 먹던 깨달음이 나를 한 번 쳐다봤다. [ 왜? 하고 싶은 말 있구나 ] [ 아니야,,,] [ 반찬이 별로 없어서 그러지? ] [ 아니...꼭 그런 건 아닌데.. 왠지 허전해서.. ] [ 그렇지 않아도 식재료를 사야 되는데 일단 몇가지는 주문했어. 근데 마트를 직접 못 가서 재료가 다 떨어진 상태야 ] 담당의로부터 뼈가 정상적으로 빨리 붙을 수 있게 되도록 움직이지 말라는 경고를 받아서 외출을 전면적으로 금.. 2021. 8. 25.
남편에게 내 카드를 줬더니.. 2주 전, 깨달음은 퇴근길에 열무김치를 사 왔다. 너무 반가워서 어디서 샀냐고 물었더니 거래처 다녀오는 길에 한국어가 적힌 작은 마트가 있어서 샀다고 했다. [ 여름에 열무김치 먹는 거 기억하고 있었어? ] [ 아니, 요즘 유튜브에서 비빔국수 많이 나오잖아, 보리밥에 넣어 먹기도 하고, 한국 맛과 같은지 궁금해서 사 봤어 ] 그날 저녁 우린 열무김치를 넣은 비빔국수를 먹으며 완전 한국 맛이라며 좋아했었다. 집 근처 마트에서 구매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코리아타운에 가야만 했는데 깨달음 덕분에 즐거운 한 끼를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자기 방에서 오후 내내 공부를 하던 깨달음이 외출 준비를 했다. [ 내가 혼자 다녀올게 ] [ 깨달음,, 나도 가고 싶은데...] [ 알아,, 아는데 아직 당신은 완치되.. 2021. 8. 12.
남편이 먹고 싶어 나열한 음식들 아직 완치되지 않은 다리를 하고 움직일 생각은 아예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직접 가야만 했고 미룰 수 없었다. 습관처럼 택시를 타고 신주쿠로 향하는데 휴가를 즐기려는 인파들로 거리는 밀리는 차량과 사람들로 가득했다. 4일간 연휴의 마지막인 이곳은 올림픽까지 겹쳐 약간은 들뜬 듯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델타 변이가 점점 퍼져가고 올림픽 선수촌에서 매일 새로운 감염자가 늘어나도 이젠 그러러니 각자 제 삶을 즐기며 무뎌져가고 있다. 내가 일을 보는 사이 깨달음은 커피숍에서 시간을 보냈고 난 미팅을 끝내고 오다큐(小田急) 백화점으로 이동했다. 9월 초에 있는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을 못할 확률이 높아진 우린 축의금 외에 뭔가 선물을 해주기로 했다. 신혼에 딱 맞는 아기자기한 식기류를 사려고 둘러보다 아직 .. 2021. 7.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