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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261

일본인에게 크리스마스날은,,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리러 온 깨달음이 헌금함에 서서 지폐를 조심스레 넣었다. 다른 교인들은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 봉투에 헌금을 넣는데 자기는 그냥 돈이 보이게 넣으려니 왠지 쑥스러웠다며 봉투를 준비해 올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매주 나를 따라 교회에 참석하는 깨달음은 설교시간에 자주 졸아서 내가 도중에 몇 번 깨우곤 한다. 오늘도 변함없이 설교가 시작되자 꾸벅꾸벅 졸다가 내 눈치를 한번 보고는 참으려고 애를 쓰다가 다시 또 졸았다. 예배를 마치고 식사를 하기 위해 오다이바로 이동하는 길에 캐롤이 울려 퍼지자 깨달음은 콧노래를 부르며 흥얼거렸다. 크리스마스다운 분위기를 어디서 가장 많이 느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택했다며 내가 뷔폐를 썩 좋아하지 않지만 예약되는 곳이 이곳밖에 없었다며 음식보다 와인이 괜찮.. 2023. 12. 25.
20년만에 연락 온 친구에게 그녀에게 카톡 메시지가 왔던 건 정확이 6개월 전 어느 새벽이었다. 잠결에 메시지 알림 소리에 비몽사몽 전화기를 들여다봤더니 [ 케이야,, 나,,, 경미야 ]라고 왔다. 경미.. 경미.. 아,, 고교 동창 경미.. 2시 반이라는 이 새벽시간에.. 미쳤네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메시지로 오랜만이라고 무슨 일이냐고 보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경미를 본 지 20년이 지나서인지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조금 주저했었다. [ 케이가 맞는지 아닌가 긴가민가 했는데 정말 너였네 ] [ 응, 전화번호가 그대로니까, 잘 살지? ] [ 응,, 잘 살아 ] 뭣 때문에 전화했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었지만 한 템포 늦췄다. 결혼은 하지 않았고 코로나로 하나뿐인 남동생을 잃었다는 얘기 했다. .. 2023. 12. 4.
요즘의 블로거,,그리고 나 언젠가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내 블로그에 연두색 배지가 달렸다. 뭔가 해서 봤더니 스토리 크리에이터라는 표식?같은 거였다. 왜 이게 달리는지, 어떻게 선택된 건지 별로 궁금하지 않아 자세히 읽어보지 않고 뭔지도 모른 채 그냥 지나쳤다. 오늘 이 글을 쓰기 위해 찾아가 읽어봤더니 눈에 바로 들어오는 아주 멋진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다. 전문성, 영향력, 활동성, 공신력을 두루 갖춘 창작자,, 뚜렷한 주제를 가지고 우수한 창작활동을 펼치는 크리에이터.. 내가 다음 블로그를 운영할 때 매 년 우수블로그를 선정해 배지를 달아주던 시절이 있었다. 난 감사하게 블로그 시작해 2년되던 해부터 우수 블로그로 선정되어 선물도 받았고 그 덕분에 많은 이웃님들이 생겼다. 그 당시 어느 블로그 이웃님이 맨날 라면 끓여 먹는 것이나.. 2023. 11. 14.
일본인들 사이에는 없다는 그것 내가 변해가고 있는 건지,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건지 내 자신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철을 갈아타기 위해 서 있는데 한국인 관광객들이 맞은편 선로에서 들어오는 전철을 사진에 담으면서 야마노테선(山手線)은 서울의 2호선 지하철과 같은 거라며 가이드북을 보기도 하고 카메라 앵글을 바꿔가며 사진 찍느라 분주했다. 이분들은 서울에서 오셨나라는 아무 뜻도 의미도 없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우에노(上野) 의 아메요코(アメ横)는 한국의 남대문 시장같은 곳인데 오늘 난 이곳에서 약속이 있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만나자고 먼저 연락을 하는 일이 좀처럼 없는데 요즘 변해가고 내 감정의 흐름에 사고를 맡긴 채로 실행에 옮기고 있다. [ 케이짱, 너무 오랜만이다. 연락 줘서 진짜 고마워 ] [ 그냥,,갑자기 잘 계시나.. 2023. 11. 1.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너무 작지만.. 토요일 밤부터 내린 비가 아침이 되니 빗줄기가 굵어지고 바람이 거셌다. 베란다에 얼굴을 내밀어 보던 깨달음이 완전 겨울처럼 춥다며 외출복을 가죽점퍼로 바꿔 입었다. 낮은 25도 아침과 저녁은 15도, 기온차가 심한 요즘인데 오늘은 비까지 와서 체감온도는 상당히 춥게 느껴졌다. 전철을 탈까 약간 망설였지만 찬바람이 불어오는 통에 그냥 택시를 타고 교회를 다녀왔다. 집에 돌아와 더 늦추면 안 될 것 같아 거실과 각자의 방을 겨울용으로 바꾸기로 했다. 청소기는 깨달음이, 밀고 닦는 건 내가 맡아 척척 빠르게 겨울용 카펫을 바꾸고 침대에도 새 옷들을 입혔다. [ 깨달음, 옷도 다 바꿨어? ] [ 아니,, 그건 저녁에 하려고,,,] [ 그래..] [ 그럼, 세탁기 돌릴 거니까 세탁할 거 내놔 ] 세탁이 끝날 무렵.. 2023. 10. 16.
한국의 추석,,남편이 변했다 아침 일찍 예약해 둔 병원에서 대상포진 2차 백신을 접종했다. 두 달전 1차를 맞고 일주일 내내 38도까지 올라가는 고열과 두통, 오한까지 상당히 힘들어 이번에도 그런 증상이 나타나느냐 물었더니 1차보다는 덜 하겠지만 증상은 같을 거라며 해열제를 처방해 주겠다고 한다. 나는 집에 있는 상비약으로 대체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와 15분간 휴식을 취하라는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빈 의자에 앉아 오늘 스케줄을 정리했다. 1차 때도 그렇듯, 발열이 시작된 건 주사를 맞고 7,8시간 후였으니 열이 오르기 전에 끝내고 싶었다. 미팅이 있는 곳에 먼저 가서 아침 겸 점심으로 삼계탕을 먹었다. 지난번 한국에 갔을 때 우연히 가족들끼리 자신만의 소울푸드가 뭔지 얘기를 했었다. 큰 형부가 소울푸드가 뭐냐고 그래서 예를 들어 .. 2023. 9. 28.
친구가 없는 사람들의 특징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코로나 핑계로 돌리는 것도 우스웠다. 약속날짜도 내가, 약속장소도 내가 결정해 주길 원해서 예약을 하고 좀 이른 저녁에 그녀를 만났다. 꼭 필요할 때만 연락을 하는 그녀를 보는 날도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했다. 보자마자 호들갑을 떨며 내 팔을 잡아 끄는 것도, 앉자마자 자기 얘길 하며 감정이 격해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는 것도 웃을 때 손뼉을 치는 것도 내가 깨달음과 어떻게 만났는지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묻는 거마저도 변함이 없었다. 지난번 만났을 때 했던 말들은 기억하지 못한 채 자기 말만 하는 그녀는 그대로였다. [ 케이야, 너 다리는 다 나았어? ] [ 다리? 골절상 입은 거 벌써 2년전이야..] [ 아,,그랬지..내가 깜빡했다 ] [ 뭘 깜빡이야, 6개월전에 만나.. 2023. 9. 5.
아픈 건 자신의 몫이다 2년 전, 여름 대상포진이 걸려 통증으로 이를 갈았던 아픈 기억을 두 번 다시 맛보고 싶지 않아 대상포진 예방백신을 맞았다. 맞기 전에 효과와 부작용을 일단 숙지하고 맞았는데 맞은 날 저녁부터 고열이 나고 몸에 잠들어 있던 혈관들이 백신과 싸우는 중인지, 백신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인지 온 몸이 쑤시고 저리고 열이 올라 한마디로 형용할 수 없는 통증으로 한 숨을 잘 수 없었다. 급하게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원래 발열이 있는 거라고 코로나 백신 때처럼 몸에서 면역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니 2,3일 지나면 좋아질 거라고 했다. 코로나 백신을 맞았을 땐 어깨가 약간 무거운 느낌만 들었을 뿐 아무렇지 않았는데 대상포진 백신이 이렇게 보대끼고 힘들 거라 전혀 생각지 못했다. 얼음주머니를 두 개나 끌어안은 채 침대.. 2023. 8. 10.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상 [ 케이야, 잘 있어? 여긴 너무 덥다, 거기도 덥지? 오늘 참외 먹다가 너 생각나서.. 니가 참외 좋아하는데 거기서 못 먹었다고 그랬잖아 ] [ 아니야, 지금은 코리아타운에서 팔아, 근데 요즘 넌 무슨 반찬 해 먹어? ] [ 반찬? 음,,별 거 없어, 그냥 있는 거 먹지] 한국의 가족이나 친구들과 통화를 하면 난 무의식적이라기보다는 습관적으로 같은 질문을 한다. [ 무슨 반찬에 먹었어? ]라고 그러면 누구는 남편이 좋아하는 육개장을 끓여 먹었다고 하기도 하고 누구는 두릅이 많이 나와서 두릅을 삶았다기도 하고 누구는 오징어볶음을 했다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밥 하기 귀찮아 집 근처에서 닭볶음을 시켜 먹었다고 한다. 난 한국에서 돌아온 후부터 무슨 이유인지 체중이 줄고 있다. 더워지면서 입맛이 없어진 게 원.. 2023. 6. 17.
내가 한국에서 외국인 취급을 당한 이유 난 재래시장을 참 좋아한다. 20대에도 마음이 심란하고 사는 게 무언지 갈피를 못 잡을 때면 자연스레 재래시장으로 발길이 옮겨갔다. 그곳에 가면 농, 수산물을 펼쳐놓고 목청 높여가며 땀범벅이 된 상인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삶의 원동력을 느낀다고나 할까 그분들에게서 나는 진한 사람냄새가 무겁게만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곤 했다. 그래서 나는 서울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도 시간만 나면 시장투어를 했다. 서울에서는 청량리시장,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을 갔고 수원에 친구를 만나 모란시장까지 다녀왔었다. 제주도에서는 민속시장과 동문시장을 광주에서는 말바우시장을 갔다. 지역마다 취급하는 물건들도 다르지만 상인들, 그리고 그 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색깔도 다양해서 볼거리가 많은 만큼 다가오는 체감도.. 2023. 5. 12.
10년간 언니에게 민폐를 끼쳤다 깨달음이 일본으로 돌아가고 난 후, 나는 매일처럼 청국장과 된장찌개를 번갈아 먹으며 아침을 시작했다. 일본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청국장이었던 만큼 날마다 한 끼씩 먹는데도 아직까지 물리지 않았다. 오늘은 뭐 먹었냐고 내 끼니를 걱정해 주는 자매들에게 청국장 사진을 올리면 날마다 청국장만 먹고 다니냐며 핀잔을 듣긴 하지만, 한국에 있는 동안은 누가 뭐래도 계속해서 먹을 생각이다. 일본에서는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 같은 게 있었다.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더불어져 좀처럼 메워지지 않았던 허허로움을 된장찌개와 청국장으로 채워가고 있다. 어느 날은 시장에 들러 번데기를 한 컵 사서 컵 채로 입에 털어 먹기도 했다. 깨달음이 유일하게 못 먹는 한국 먹거리 중에 하나인데 난 가끔씩 먹고 싶을 때가 .. 2023. 4. 23.
비행기 이륙 전, 남편이 급하게 보낸 카톡 아침부터 깨달음은 생선구이와 청국장을 주문해 맛있게 먹었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뭘 하며 보낼까 나름 계획을 세운 깨달음이 아침식사를 마치고 첫 번째로 동대문 성벽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일단 나도 처음 가보는 곳이라 어떤 코스가 좋은지,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하는지 찾아보고 동대문역으로 향했다. 성벽을 따라 가파른 언덕 걸어 오를 때마다 밥을 너무 많이 먹은 게 후회된다며 숨을 몰아쉬었다. 성벽 구멍으로 고개를 내밀고는 마치 부산의 달동네 같은 느낌이 들고 풍경이 정감이 간다며 고개를 쳐 박은채로 계속해서 밖을 내다봤다. 셩곽을 타고 올라갈수록 다리가 아프다며 커피숍을 찾았는데 깨달음이 가고 싶다는 가게는 리뉴얼 중이어서 다시 마냥 걸었다. 중간지점에서 더 가기를 포기한 깨달음은 허벅지가 터질 것 .. 2023. 4. 19.
결혼 10년이 넘으면 이렇게 변한다 3일 연속 여긴 비가 내린다. 만개한 벚꽃을 보기 위해 빗속에서도사람들은 우산을 받쳐 들고 벚꽃 명소에 모여들었다. 우리 부부는 이번달까지 마감해야 할 일들이 많아 각자 자기 방에 꼼짝 않고 박혀서 일을 하다 해가 져서야 피로도 풀 겸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왔다. 쌀쌀한 날씨에는 따끈한 소주 오유와리(お湯割り)가 제격이다. 눈앞에서 바로바로 구워주는 제철 야채들은 달달한 육즙이 터져나와 술이 물처럼 들어간다. 깨달음은 연이은 프레젠테이션이 있어 직원과 연습을 하는데 자기가 지적한 부분을 수정하지 않고 고집을 피워서 머리 아프다고 했다. [ 당신이 프레젠 하는 법을 알려주면 좋은데 ] [ 나는 내 일에만 잘해.. 건축은 몰라 ] [ 아니, 프레젠 방식을 모른 것 같애.. 아무리 설계디자인이 좋아도 오너에게.. 2023. 3. 26.
부모는 늘 자식을 후회하게 만든다 신주쿠에 볼 일이 있어 나갔는데 깨달음이 자기도 오겠다고 해서 기다렸다가 이세탄 백화점 지하로 내려갔다. 마른 생선을 좀 살 요량이었는데 입구에서부터 웬 사람들이 가득하던지 뭔 일인가 했는데 화이트데이였다. 10대부터 70대까지 남자분들이 초콜릿을 사기 위해 아기자기하고 화려한 매장에 다들 줄을 서고 있었다. 두리번거리던 깨달음도 화이트데이인걸 이제야 알았다며 기웃거리더니 내가 좋아하는 화이트초코가 있는지 찾아보란다. [ 깨달음, 나 괜찮아, 우리 원래 잘 안 챙겼잖아] [ 그래도 왔으니까 하나 골라 ] 맛있게 생긴 걸로 하나 사자는 말에 뭐가 있는지 보려는데 사람들이 유리 진열장에 줄을 서서 기다리느라 뭘 파는지 제대로 보기도 힘들어 그냥 괜찮다고 생선코너 쪽으로 이동했다. 원래부터 발렌타인이나 화이트.. 2023. 3. 15.
조금만 더 무뎌지자, 그래야 산다 1년 4개월 만에 입술 헤르페스가 생겼다. 대상포진이 생겼던 2021년, 그 해 겨울을 끝으로 잠잠하더니 다시 나타났다. 10명 중 3,4명이 가지고 있다는 재발성 구순포진은 흔한 질환이긴 하다. 헤르페스 바이러스에 한번 감염되면 평생 그 사람의 몸속에 존재했다가 스트레스나 피곤함, 특히 면역력이 떨이지면 바이러스가 활성화돼서 입술에 물집이 생긴다. 스트레스와 영양섭취의 불균형에서 오는 거라는 걸 알기에 잘 챙겨 먹고 신경을 쓴 덕분에 1년을 넘게 잘 넘어갔는데 몸이 다시 신호를 보내왔다. 물집이 생기고 일주일이 지나자 물집에 딱지가 생겨 거의 나아가고 있는데 이번에는 혓바늘이 돋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시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는 먼저 입술 상태를 확인하고는 거의 다 나았는데 오늘은 왜 왔냐고 물었다. [.. 2023. 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