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사무실엔 아무도 없었다.
일관계가 아니면 회사에 좀처럼 가는 일이
없는데 오늘은 깨달음이 나를 불렀다.
대청소를 한 듯, 회사 안은 깨끗하고
고요하다못해 적막했다.
깨달음 회사의 직원들은 2주전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고 한명만 미팅에 참가하기
위해 잠깐씩 들린다고 했다.
깨달음은 내가 사무실에 도착할 무렵
거래처분이 갑자기 회사까지 찾아와
만나자고 하셔서 잠시 나가 있던 참이였다.
내가 사 준 장식품, 재학시절 선물로 준
일러스트 작품도 구석에 놓여져 있다.
작품집, 포토폴리오, 각종 자재용카다로그,
패턴, 칼라관련책자들,,.매달, 매해
정기구독하는 건축, 설계, 시공 관력책들이
많아 책장을 사고 또 사도 부족하다고 했다.
처음 깨달음 회사를 찾았던게 언제였던지..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다보니 옛생각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석사과정 논문을 거의
마무리하고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어느날
깨달음 회사 BI (Brend Identity)
디자인 의뢰를 받아 왔었다.
그 때는 사무실이 요코하마에 있어서
훨씬 넓고 1.2층을 함께 사용했던 곳이였다.
내가 노크를 하고 들어갔을 때, 깨달음은
일반 사원과 같은 책상에 앉아 있었다.
깨달음과 두 명의 직원 앞에서 내가
3개의 디자인안을 설명할 때
한마디도 하지 않고 심각한 얼굴로
내 설명을 듣던 깨달음..
안경 넘어 슬쩍 보이는 이미지가
상당히 꼬장꼬장하다는 인상을 풍겼었다.
아니나 다를까 하나하나 디자인 의도와
색의 구성, 선의 굴기까지 디자인 전공자처럼
세세한 것들을 집요하게 물었던 것도 기억난다.
그렇게 옛생각에 잠겨 있는데 깨달음이
좀 멀리 나오게 되었다며 회사로 돌아가기
그러니까 문단속 잘하고 내게 그 쪽으로
와달라고 했다.
회사를 나와 지정한 곳의 커피숍에
들어가 바로 물었다.
[ 깨달음, 회사에 왜 오라고 했어? ]
그리고 점심은? 나 아직 안 먹었는데 ]
[ 그래? 미안, 난 거래처 분이 먹자고 해서
어쩔 수없이 먹었는데..]
[ 근데 왜 불렀어? 회사로 ? ]
[ 아니,,그냥,,직원들도 없고,,심심해서
당신이랑 놀려고 불렀는데 갑자기 그 거래처
사이토 상이 불러서 이렇게 된거야,
그건 그렇고,,사이토 상이 계약하기로
했던 호텔 건, 취소하겠다고 그러네..
그래서 회사까지 찾아 왔나 봐..]
[ 그랬구나....]
[ 근데,,사이토 상이 누구더라? ]
작년, 송년회 때 자기 오른쪽에 앉았던 흰머리가
많았던 분이고 원래 10년전부터 같이 일을
하게 된 사이인데 작년엔 비즈네스호텔을
2곳 오픈했고 올해는 도쿄뿐만 아니라
지방에도 3곳의 부지를 마련해뒀다고 했다.
2주전만해도 3건의 계약건이 일단 정지된
상태였는데, 오늘 한 건이 취소되었다며
앞으로 남은 2건도 취소될 확률이 높단다.
올 5월에 회사 직원연수 갈 때 사이토 상도
같이 가기로 했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해외도 못 나가고 모두 캔슬한 것도 속이 상하며
엊그제, 여직원이 홋카이도 출장을 간다길래
못가게 했는데 가야 한다면서 본인이
현장에 안 가면 일이 안 돌아간다고
직접 봐야 직성이 풀린다며 기어코 가는데,
사장으로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못 가게 강하게 막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고 했다.
난 깨달음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도록
듣고만 있었다.
혹시나 직원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자신이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요즘은 온통
그런 생각뿐이라고 했다.
오늘 깨달음이 회사로 나를 오라고 했을 땐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내고
싶어서였던 것 같았다.
난 깨달음 말을 들으며 한편으로
며칠전, 한국에 잠시 가 있는 게 좋지
않겠냐고 둘이서 심각하게 나눴던
내용들이 떠올랐다.
코로나19에 관한 일본의 대책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국에 가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든다고 했던 말들이 아프게 들렸을 것 같았다.
[ 깨달음,,내 말이 많이 신경 쓰였구나,,
그냥 답답해서,,너무 대책없는 일본정부에
화가 나서 그랬던 거야.. ]
(일본 야후에서 퍼 온 이미지)
[ 알아,, 한국하고 비교할 수 없을만큼
일본정부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걸..
그래서 나도 답답해..그런데 난 일본을
떠날 수 없잖아,,당신이랑 같이 가고 싶어도..]
[ 그냥,,해 본 소리야,,100%진심은 아니였지만
지난번에도 얘기했듯이 행여나 감염이 되면
나는 외국인이니까 제대로 대우를 못받을 것
같다는 생각은 당신도 하잖아..
감염자가 늘어나고 의료체계가 붕괴되면 외국인은
뒷전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게 현실이고,,
그건 당신도 예측하고 있는 거잖아..
난 그런 상황에 처해질까봐,,그게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 그런말을 했어.
더 솔직히 말하면 당신이 괜찮다면 주변
정리를 좀 하고 잠시 코로나19가
잠잠해질 때까지만이라도 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은 솔직히 있어..]
(일본 야후에서 퍼 온 이미지)
내가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건지 잘 알고
있다면서 도쿄는 특별한 대책도 없이 계속해서
감염자수만 늘어가고 있는데
내년 올림픽 개최일날은 그렇게도 빨리
결정하고 발표하면서 일본의사협회에서
긴급사태를 하루빨리 선언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여도 아직은 버틸수 있다면서
한사람에게 2장이 아닌 한가구당 2장씩 마스크를
배부하겠다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대책을
내고 있는 상황에 자기 같아도 일본땅을
떠나고 싶었을 거라고 했다. 회사일도
그렇고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코로나 전쟁을
어떻게 지혜롭게 헤처나가야할지 이래저래
구상할게 많았다면서 조금만 더 생각을
해보고 결정을 하자고 한다.
우린 꽤 오랜시간 서로의 마음을 읽으며
침묵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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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걱정과 격려의 메일, 댓글을
주셨습니다. 너무 감사드립니다.
글이 뜸해지는 건,,뻔한 내용은 되도록 이젠
적지 않으려하다보니 점점 새글을 올리는데
시간이 소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상들이 그렇게 변화무상하지 않고,
둘이만 살다보니 생기는 일들도 늘 그렇고
그런 반복된 패턴이여서 특별히 소개해드리고
보여드릴 내용이 없었던 것도 새글이
늦여지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깨달음 표현처럼 코로나 전쟁 속에서도
저희는 아직까지 잘 있습니다.
내일이면 이곳 정부의 발표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지만 오늘처럼 마스크 2장이라는
황당한 대책이 아니였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아, 시부모님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는데
거의 매일 전화통화를 하고 있으며
염려해주신 덕분에 건강하십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암담함 속에서
어두운 생각들이 자꾸 파고 들지만
좋은 것들과, 좋은 생각들을 긁어 모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조금만 더 참으시고,
조금만 더 힘내시길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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