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텐보스의 개장시장은
9시지만 숙박객에게는 30분 먼저
입장할 수 있다길래 우린 이른
아침을 먹고 호텔 탐방에 나섰다.
아침에 보는 테마파크는 저녁과는
사뭇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건물마다 일루미네이션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던 형형색색의 네온은 사라지고
아침은 차분하고도 고즈넉했다.
9시가 되자 수학여행을 온 여고생들이
교복 치맛단을 펄렁거리며 단체로
어디론가 뛰어갔다.
그녀들이 향한 곳은 3층으로 된
회전목마가 음악에 맞춰 돌고 있었다.
깨달음이 3층은 처음 본다며 타보고 싶다길래
혼자 타라고 했더니 싫단다.
[ 깨달음, 재미없어, 저거 ]
[ 그래도 기념으로 타고 싶은데 ]
[ 혼자 타 ]
[ 저기 여학생들 많은데 아저씨가
혼자 타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
[ 그러네.. 알았어, 그럼 같이 타자 ]
나는 바이킹이나 무서운 놀이기구 타는 걸
좋아하는데 깨달음은 이렇게 천천히
움직이는 관람차나 커피차 같은 걸 좋아한다.
어쩌면 이렇게도 다른 성향에 인간들이
부부가 됐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적당히 타협하며 움직였다.
그리고 깨달음이 갑자기 산타 뒤에서
술래잡기를 하듯 까불었다.
나는 그런 깨달음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고
깨달음은 그곳에 있는 모든 산타에게
인사를 나누며 신이 나서 여러 포즈를 취했다.
우린 다시 호텔로 돌아와 체크인을 하고
사가현(佐賀県)으로 이동해
연간 300만 명이 다녀간다는
유토쿠이나리신사(祐徳稲荷神社)에 갔다.
이곳은 일본 3대 이나리(稲荷)로 꼽히는 곳으로
특히 사업이나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사업번창을 빌기 위해 오는 곳이라
깨달음이 꼭 오고 싶어 했다.
이나리(稲荷)는 사업번창의 신이라
알고 있지만 원래는 곡물, 오곡의
풍요를 뜻하는 농업의 신으로
이 신사에 모시고 있는 3명의 신 중에
하나가 곡물의 여신이라고 한다.
신사 주변은 사계절 매화, 벚꽃, 철쭉,
후지, 수국이 피고 일본식 정원이
아주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인간의 영역과 신의 영역을 구분하게 위해
만들어진 새빨간 도리이(鳥居)에는
주소와 이름이 적혀있고 자신들의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 이렇게
도리이를 세우기도 한다.
깨달음은 신중한 표정으로 기도를 하고
도리이에 서서는 정중히 인사를 했다.
[ 깨달음, 무슨 뜻이야? ]
[ 그냥 다 고맙다는 뜻이야 ]
[ 사업번창 기도는 잘했어? ]
[ 응 ,]
이곳뿐만 아니라 이나리신사에
이렇게 도리이를 봉납하려면
비쌀 텐데 꽤나 성공? 하신 분들이
많은 것 같다며 정말 사업이 잘 되도록
도와주시는 것 같으니 좋은 기운을
듬뿍 담고 가고 싶단다.
[ 내년 소원도 사업번창이야? ]
[ 응, 내가 회사를 그만둘 때까지는 ]
언제 그만 둘 생각이냐고 물었더니
한국에서 일 안 하고 노년을 즐겁게
놀 수 있을 만큼에 돈을 벌면 그만둘 거란다.
그런 말이 나올 때마다 언제든지
당신이 회사를 그만둬도 그럭저럭
먹고살 수는 있다고 얘길 하지만
깨달음은 자신의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회사를 운영할 생각이라 했다.
사업이 번창하면 자신도 물론 좋지만
직원들이 행복할 거라며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놓고 조용히 빠질 생각이란다.
깨달음은 신사를 나오는 길에 뒤돌아서서
다시 두 손 모아 합장하고
내년에도 사업이 번창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깨달음이 저렇게 매년 같은 소원을 비는
덕분에 지금까지 회사가 잘
유지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내년에도 분명 좋아질 거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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