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예배를 보는 동안 , 깨달음은 사무실에서
작년에 산 쿠마노테(熊の手)를 가져오기로 했다.
하나조노진자(花園神社)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가
즐비하게 늘어선 포장마차 먹거리를 사는 사람,
그 음식을 근처에서 앉아 먹고 있는 사람,
진풍경을 찍는 사람, 라이브로 영상을 올리는
사람들로 서로 얽혀 걸을 수가 없어 그냥
신사 안에서 만나기로 했다.
작년까지만해도 진자 입구에 코로나 방역으로
손소독제가 올려진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올 해는 그런 문구조차도 없이
코로나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쿠마노테는 사업을 하거나 자영업자들이
사업번창을 위해 사업장에 놓아두는 일종의
장식품이다. 곰발바닥 모양으로 생긴 갈쿠리로
복을 긁어 모은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쿠마노테는
판매하는 곳마다 장식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금덩이, 벼, 매화, 거북이, 학, 엽전, 잉어,
쌀가마 등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 깨달음, 여기야, 여기 ]
[ 올 해는 사람들이 많이 왔네 ]
[ 그러네, 얼른 당신도 마음에 든 거 골라 ]
[ 비싸고 큰 거 사도 돼? ]
[ 응, 얼마든지 ]
매년 조금씩 큰 사이즈를 사야지 사업번창이
더 잘 된다고 하던데 깨달음은 그런 말은
큰 걸 팔기 위한 장삿속이라고
항상 같은 크기에 쿠마노테를 고른다.
깨달음이 자기가 좋아하는 벼와 매화꽃을
좀 더 꼽아달라고 요청을 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삼삼칠 박수를 어찌나 요란스럽게
치던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마음껏 장식을 더 추가하고 나자
이번에는 깨달음을 위해 주변에서 함께
사업번창을 외치고 우렁찬 삼삼칠 박수를
쳐주셨다. 우린 처음 보는 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얼른 진자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가까운 코리아타운으로 걸어 내려와
뭘 먹을까 고민하는데 깨달음이
쭈꾸미가 먹고 싶다고 했다.
[ 당신, 예전에는 코리아타운 오면 무조건
짜장하고 탕수육 먹으려고 했는데 언젠가부터
중식 안 먹으려 하더라, 왜 변했어? ]
[ 아니. 변한 건 아니고, 짜장 말고도
먹을 게 천지로 많은데 굳이 여기까지 와서
짜장을 먹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이제 짜장은 간식 같은 거야, 나한테 ]
[ 간식?..그 말도 맞네.. ]
쭈꾸미가 익는 동안 참이슬로 목을 축이다
참지 못하고 새우를 얼른 먹어보고는
엄지 척을 해 보였다.
[ 여기, 완전 대박, 지난여름에 한 시간 넘게
기다려 먹었던 쭈꾸미집하고는 차원이 달라,
여긴 완전 한국 맛! ]
[ 그래? ]
깨달음이 말하는 한국 맛이라는 게 대충
무슨 맛인지 아는데 일본에서 파는 한국음식에서
한국 맛을 찾는 게 그리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일본인 입맛에 맞춘 음식들이 많아지면서
어중간한 맛들이 많아 입맛 까다로운
깨달음을 만족시켜 주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 홍대에서 먹었던 맛 나지? ]
[ 응, 당신 말이 많네, 한국 맛 난다 ]
젓가락질을 쉴 새 없이 하는 깨달음 눈빛이
한국에서 봤던 눈빛으로 변한채 얼마나
맛있었는지 새우도 내가 두 개 먹는 동안
나머지를 다 집어 먹고 곱창도 숟가락으로
두 개씩 떠먹으며 자기 입에 넣느라 정신없었다.
맛있는 것 앞에서는 약간 이성을 잃은 건
아마도 죽을 때까지 못 고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톡톡 터지는 날치알이 올려진 볶음밥이
나왔을 때도 입천장이 데일 정도로
뜨거운 볶음밥을 먹었다.
[ 깨달음, 그렇게 맛있어 ? ]
[ 응, 한국보다 더 맛있는 거 같아 ]
[ 입천장 안 아파? ]
[ 아파도 맛있어서 멈출 수가 없어 ]
[ ......................... ]
철판에 누른 누룽지까지 빡빡 긁어먹고
나온 깨달음은 커피를 마시자며
자기가 좋아하는 카페로 나를 인도했다.
자리에 앉아 커피를 기다리는데 기분이 너무
좋다면서 두 팔을 올려서는 꿀렁꿀렁 흔들었다.
[ 뭔 뜻이야? ]
[ 우영우처럼 뿌듯함을 표현하는 거야 ]
[ ............................ ]
쿠마노테도 마음에 든 걸 샀으니
내년에도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은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져서 기분이 좋고
완전 한국에서 먹은 것처럼 맛있는
쭈꾸미를 먹어서 행복한 자신의 마음을
몸으로 표현한 거라며
뿌듯하고 알찬 하루여서 좋단다.
쿠마노테를 사는 날엔 항상 난 같은 말을 했었다.
일 좋아하는 건 알지만 너무 무리하지 말고
힘들다 싶으면 언제든지 쉬라고
그리고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 먹을수록
일보다는 건강이 우선임을 잊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얘길 하는데
깨달음은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발라드에
심취해서는 눈을 감고 흥얼거리더니
오늘은 기분이가 너무 좋은 날이란다.
[ 기분이가가 아니고 기분이야, 기분 ]
[ 기분이가 좋아요 ]
기분이 좋다니 다행이지만 내년에도
별 탈 없이 깨달음 사업이
무난하길 난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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