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에 볼일이 있어 오랜만에
코리아타운에 들렀다.
[ 뭐 먹지? ]
[ 오늘은 탕수육만 먹을래 ]
[ 짜장면은? 짬뽕도 안 먹어?]
[ 응, 안 먹을래? ]
[ 나는 잡채밥 먹을까,,,,]
[ 볶음밥 시켜 봐, 나 볶음밥 먹어보고 싶어..]
[ 잡채밥 먹고 싶은데...]
[ 잡채는 당신이 맛있게 할 수 있잖아,
근데 볶은밥은 집에서 불향을 내기 힘드니까
볶음밥 시켜 봐, 먹어 보게..]
[ ............................... ]
볶음밥에 짜장소스가 올려 나오고
짬뽕 국물이 딸려 나온 것을 보고
약간 흥분한 깨달음이 내 숟가락을 들고 먹더니
내가 멍하게 쳐다보니까 그때서야
[ 숟가락 하나 더 주세요 ]라고 부탁했다.
[ 맛있어? ]
[ 짜장하고 짬뽕을 한꺼번에 맛 볼 수 있다니
진작 볶음밥 시킬 것 그랬어~
완전 이득이야~이제 짜장 시키지 말자 ]
아무리 생각해도 부족할 것 같아
짜장을 하나 주문했는데
그것 역시도 맛있다며 거의 다 먹었다.
[ 짜장 안 먹는다면서? ]
[ 오늘 면발은 너무 탱탱해서 맛있어~]
[ ...................... ]
그렇게 내 밥까지 거의 다 먹은 후 남은 탕수육을
착실히 챙겨 한국 마트로 갔다.
[ 당신 뭐 산다고 그랬지? ]
가게에 들어서자 과자코너로
발길을 옮겨 가며 실실 웃으면서 내게 묻는다.
[ 다음주 시댁 갈때 요리 해 드릴 재료
산다고 했잖아, 당신은 사고 싶은 거 사~]
[ 그래? 나 그럼 자유롭게 쇼핑한다~]
[ 응 ]
잡채를 해드릴 생각이였는데
시원한 냉면이 좋을 것도 같고,,,
삼계탕을 해드리는 게 좋을지..
전복죽을 끓여드리는 게 좋을지..
불고기를 해드리는 게 좋을지...
요즘 더운 탓에 식욕을 잃으셨다는 아버님께
뭔가를 해드리고 싶은데 뭐가 좋을지..
좀 특별한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만 가득할 뿐
정작 뭐가 좋을지 입맛에 맞을지,,
걱정이 앞섰다.
마트를 두번이나 돌아다니며 식재료를 봤지만
이거다라는 답을 못 찾고 있을 때
저쪽에서 깨달음이 보였다.
[ 당신, 이 과자 알아? ]
[ 몰라, 처음 보는건데..]
[ 맛차맛이 나왔어~,,한 번 먹어 보려고,,]
[ 그래,,먹어..]
[ 당신은 뭐 샀어? ]
[ 아버님이 차가운 음식 좋아하시니까
냉면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고기도 잘 드시니끼 고기도 해야할 것 같고..]
[ 더우니까 냉면이 좋을 거야, 우리 아버지
면 종류 엄청 좋아해~]
[ 알고 있어... 당신은 그거면 됐지? ]
[ 아니, 이 과자 진짜 맛있는데...]
조청유과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길래 그냥 사고 싶은대로
사라고 한마디 했더니 좋아라한다.
[ 나, 이것도 먹을래... ]
[뭐?]
[ 이거 스프,, 빵에 찍어 먹으니까
진짜 맛있었어, 또 찍어 먹고 싶어,,,..]
[ 그래, 사,,근데 당신은 부모님을 위해
뭘 사려고 안하고 자기 먹고 싶은 거만 사냐? ]
[ 그건 당신이 알아서 사니까
난 내 것만 사면 되지..]
[ ................................. ]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내가 물었다.
[ 당신은 효도가 뭐라고 생각해? ]
[ 얼굴 보여주는 거지..]
[ 또 다른 것은? ]
[ 맛있는 거 사드리는 거..]
[ 알고 있네,그럼 이 여름에 뭘 해드릴까
같이 생각하면 좋잖아,,]
[ 내가 안 해도 당신이 잘 할 거니까 맡긴 거지..
내 생각에도 더우니까 냉면이 최고인 것 같애.
그리고 냉면 먹기 전에 불고기나 갈비 같은
고기를 드시면 더 좋아하실거야,,]
[ 갈비는 나도 생각했어..]
[ 그것 봐, 당신 생각이랑 나도 똑같잖아,
그니까 그렇게 해서 드리자,,]
[ 당신이 이번에 양념 한 번 해볼거야? ]
[ 나,,,못해...]
[ 왜 못해? ]
[ 한국맛을 못 내지,,맛은 볼지 알아도..]
[ 효도라 생각하고 당신도 도와 줘..]
[ 알았어~~아, 추석이니까 추석 음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
[ 필요 없어..]
8월15일, 이곳은 추석이다.
추석연휴에는 서로 스케쥴이 맞질 않아
미리 인사를 드리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연휴때 난 수술을 하기로 했다.
http://keijapan.tistory.com/990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늘 함께 온다)
지난번 검사에서 자궁근종 사이즈가 커졌다는 걸
알게 된 깨달음과 다시 병원을 찾아
담당의와 상담을 한 결과 내린 결론이다.
수술을 하지 않는 방법도 몇 가지 있었지만
과출혈과 악성빈혈을 고치기 위해서
수술이 우선이라고 했다.
[ 아, 추석이니까 부침개라도 할까? ]
[ 아니, 기름진 것보다 그냥 간단하게 스테이크
하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당신 그 때
몸상태를 봐가면서 해야지 혹 몸이 피곤하거나
힘들면 그냥 모두 취소하고 장어덮밥
주문할 거니까 무리해서 하려고 하지마,
수술 앞두고 괜히 무리해서 안 좋으니까..]
[ 시댁 가서 정말 힘들면 아무것도 안해도 돼? ]
[ 당연하지~당신 몸이 우선이니까
당신 몸만 생각해~]
[ 알았어.. 그리고 입원날,,당신 회사는? ]
[ 회사는 안 가지~내가 다 해줄게]
[ 수술은 오후니까 회사 잠깐 다녀와도 돼]
[ 아니야, 아침부터 계속 있을 거야,
한국 같았으면 가족들이 왔을텐데
여기서는 당신 혼자잖아,,그니까
나라도 있어야지..]
[ 고마워,,]
내가 수술을 결정했다고 했을 때
친구가 한국에서 하는 건 어떠냐는 물었다.
나처럼 해외거주가 오래된 사람은
한국에서의 보험이 없다.
그래서 한국에서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도 많고, 난 그냥 아픈 모습들을
가족들에게 리얼하게 보여주는 게
싫어서도 한국행을 택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가슴 따뜻한 얘기들을 나누고 있다가
깨달음이 자기가 사 온 것들을
테이블에 전시해 놓고는 하나 꺼내 먹으며
얼른 똥배를 감춘다.
[ 맛은 어때? ]
[ 음,그냥 초코가 제일 맛있는 거 같애 ]
이번에는 수정과를 마시며 조청유과를 뜯어
내게도 하나 건넨다.
[ 안 먹을래, 당신 많이 먹어 ]
짜장면 집에서도 내 볶음밥을
자기 것처럼 먹고 이렇게 먹고 싶은 건
꼭 먹어야하는 깨달음이지만
항상 곁에서 날 지켜주려고 애를 쓰는 건
역시 남편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원수처럼 밉고, 정말 꼴도 보기 싫을 때가
있지만, 지금 이 일본 땅에서
내가 의지하고, 나의 보호자가 되어 줄
사람은 깨달음뿐임을 실감했다.
해외거주자, 특히 국제부부간의 외국인 배우자는
일반부부와는 다른 존재감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크리스챤의 두 얼굴 (8) | 2017.08.28 |
---|---|
부모님을 두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 (14) | 2017.08.13 |
그 누구도 아픔을 대신해 줄 수 없다 (19) | 2017.07.11 |
그래도 블로그를 계속하는 이유(추가내용) (87) | 2017.06.28 |
해외생활 중에 마음의 치료가 필요할 때 (6) | 2017.05.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