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여파로 주말 내내 비가 내렸다.
폭우가 쏟아졌다가 잠깐 햇살이 비치고
또 무섭게 퍼붓었다.
예배를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가까운
호텔로 들어가 중식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예약손님으로 가득했고 빈 곳은
뷔페 레스토랑뿐이었다.
[ 그냥 먹자 ]
[ 깨달음,,나,,안 먹고 싶은데..]
[ 밖에 비 와,,저 비 그칠 때까지
여기서 식사하면서 시간보내는 게 어때? ]
따끈한 게살 스프를 먹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으니 그냥 뷔페로 들어갔다.
호텔 안은 외국인들만 가득했다.
태풍이 와서 다들 외출을 삼가한 건지
거리에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뷔페홀을 한 바퀴 돌고 온 깨달음이
생각보다 요리가 많다며 따끈한 수프는
호박 수프뿐이라고 알려줬다.
음식은 종류별로 다양한데 정작 내가
먹고 싶은 건 별로 없었다.
깨달음도 두 번 왔다 갔다 몇 가지 들고 와
먹고는 바로 디저트를 가져왔다.
[ 벌써 디저트? 근데 케이크류가 좀 많다 ]
[ 반 밖에 안 가져온 거야, 이거 먹고
다른 종류 더 먹을 건데 ]
[ 혈당도 그렇고 이 크림들이 중성지방으로
쌓일 것 같아 걱정이야,당신 먹는 거 보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깨달음은
케이크들을 한 입에 털어 넣었다.
[ 속이 느글느글거리지 않아? ]
[ 난,, 전혀 그런 거 없어 ]
깨달음은 어릴 적부터 달달한 걸 좋아했다.
그래서 어금니가 모두 충치가 심한데
여름에는 늘 시럽과 연유가 가득 뿌려져
다디단 팥까지 올려진 팥빙수를 거의
매일 먹다시피 한다.
커피숍에서는 카페오레와 함께 생크림
케이크나 치즈무스, 티라미스를
주문해서 먹는 게 기본이다.
나와는 정 반대 식성인 깨달음에게
되도록이면 달달한 것들을 줄이는 게
어떠냐고 케이크도 한 조각만 먹었으면
좋겠다고 아주 가끔 얘길 하는데
전혀 듣지 않는다.
팥빙수와 케이크를 동시에 주문할 때도 많고
밥 대신, 빵이나 팬케익을 먹는 것도 즐긴다.
그렇게 차가운 빙수를 먹을 때마다 기관지가
약한 깨달음은 기침을 하면서도 끝까지
국물까지 먹는다.
[ 당신은 배탈이 잘 안 나지? ]
[ 응,, 난,, 위와 장이 튼튼하거든 ]
[ 어릴 적부터 차가운 거 먹어도 괜찮았어? ]
[ 응, 전혀,, 근데 기침은 했어..]
일부러 못 먹게 말리진 않지만 차가운 것,
단 것들, 유지방이 많은 것들을 즐겨하는
당신을 보고 있으면
건강이 걱정스럽다고 했더니
아무런 문제가 없단다.
집에서도 날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생크림이 듬뿍 담긴 도넛, 슈크림빵, 앙코빵,
꽈배기, 쿠키, 크로와상, 카스텔라, 밤쿠엔까지
수많은 빵도 다양하게 잘 먹었다.
식빵 한 조각을 먹을 때도 버터에 딸기잼,
블루베리잼까지 올려 먹으니
보고 있으면 내 속이 불편할 때가 있다.
빵도 빵이지만 면도 너무 사랑한다.
가락국수, 라멘, 소면, 파스타, 소바, 국수,
우동, 수제비는 또 얼마나 좋아하는지..
밀가루 만큼 또 애정하는 건 튀김류다.
돈가스, 덴푸라, 탕수육, 닭튀김, 부침개 등등
이것들 역시 참지 못하는 음식 중에 하나다.
그런데 속이 쓰린다거나 거북해하고
배탈이 난다거나 한 적이 거의 없었다.
딱 한번 하와이에서 연 이틀을 아침부터
생크림에 시럽 듬뿍 발라진 팬케익과
스테이크를 연달아 먹고는
속이 불편하다고 했었다.
내 걱정은 안중에 없는지 깨달음은
나머지 디저트도 또 한 접시 가져와
쿠키가 맛있다면서 내게도 하나 권했다.
[ 아니야,, 난 안 먹으래..]
난 따끈한 허브티를 마시며 창 밖에
빗줄기가 약해지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 내가 말 안 했어? ]
[ 뭐? ]
[ 지난주에 건강검진 했는데 혈액검사에
혈압, 콜레스테롤, 지방, 간수치 등등
아무 문제 없이 의사가 건강하다고
그랬어 ]
[ 위 내시경은? ]
[ 그것도 완전 건강하대 ]
[ 다행이네..]
한여름에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면이나 튀김류는 의식적으로 피하고
생크림 케이크도 꼭 한 입으로 만족하며
빵류도 식빵 외에 거의 먹지 않은 나와는
판이하게 다른 건 도대체
깨달음은 왜 건강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시부모님이 유전적적으로
아주 건강한 DNA를 물려주신 덕분이
아닌가 싶다.
뭘 먹어도 소화력이 좋고 나쁜 콜레스테롤이
쌓이지도 않으며 아무리 차가운 얼음을
날마다 씹어 먹어도 전부 흡수할 수 있는
건강 DNA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차를 다 마시고 이제 집에 가자고 했더니
쿠키가 너무 맛있다며 한 개 더 먹고
가야겠다면서 방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깨달음이 건강한 건 부모님께 물려받은
유전자 덕분이기도 하지만 저렇게
해맑은 정신과 마인드를 가진 것도
한몫을 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
시부모님이 건강한 유전자
뿐만 아니라 긍정적 사고를 하도록
키워주신 것에 뒤늦게나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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