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후배가 일본을 찾아 왔다.
아이와 남편은 두고 혼자서 밤비행기를 타고
왔다가 예전에 아이가 다녔던 학교도 가보고
교회, 그리고 동네 커피숍에서 커피도 마시고
한가한 시간을 보내다가 막상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더니 나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 와인 한 잔 더 할래? ]
[ 응, 오늘은 취하지도 않네 ]
생각할 것도 많고, 그냥 답답한 마음에서
훌쩍 떠나왔는데도 별다른 답이 없다며
와인잔만 만지작 거린다.
고등학교 1학년 여고생을 준 후배는
딸의 장래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아이를 생각해서 이민을 가는 게 좋을지,
유학을 보내는 게 건 나은지...
아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고 섣불리
진로를 꿈을 쫒으라는 말도 못하고,
무작정 아이에게 맡기는 것도 그렇고
머릿속이 많이 복잡하다고 했다.
결국엔 아이가 선택을 할 것인데 그 선택에
자신이 불만없이 납득을 할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다고 한다. 갑자기 대학 안 가고
엉뚱한 걸 한다고 할까봐 제일 걱정이란다.
[ 딸이 뭘 하고 싶다고 그랬어? ]
[ 자기도 모르겠대. 공부 체질은 아닌 것
같다고 그러는데 가슴이 철렁했어 ]
무엇이 딸을 힘들게 하며, 무엇을 딸을
즐겁게 하는지도 도통 모르겠단다.
옆에서 잠자코 우리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깨달음이
뭔가 생각을 정리한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결국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그 분야의 재능,
자격증,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만이 가진
자원이나 시간, 능력을 돈으로 바꾸고
이젠 직장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전문적으로 업을 삼아 몰두하면
그것이 돈으로 평생직업으로 연결 되니까요,
일본은 프리터족이 아주 많은데 생계유지를
위한 일이 아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시간을 자유롭게 쓰고 싶어 일부러
프리터를 자청하는 사람이 많아요 ]
일본의 프리터는 프리 아르바이터의 준말로
일정한 직업없이 돈이 필요할 때 한시적,
임시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왜 갑자기 프리터 얘길 하냐고 깨달음에게
눈길을 보냈더니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유용하게 돈을 벌 수 있는 길이고
단지 생계 수단으로 아르바이트나 파트타임을
이여가는 게 아니라는 의미라고 했다.
후배가 깨달음 얘길 아주 주위깊게 듣다가
사춘기라는 불안정한 시기여서인지 대화가
원활하지 못하고 조언이나 어드바이스를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엄마가 너무 염려하시는 거 같다면서
그냥 자녀 스스로가 즐거운 일을 찾고
지금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치있는 미래를 만드는 길이라고
부모가 자녀에게 항상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게 그 어떤 조언보다 훨씬
와닿지 않겠냐고 답했다.
막힘없이 술술 답변을 하는 깨달음 얼굴에
약간 비장함이 엿보였다.
[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는 자신만을 기준으로 삼고
남들 보기에 번듯한 직장, 직업인 사회적 잣대에
자신의 행복을 맡기지 말고 사는 게 좋으니까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사회적 기준보다는 자신의 선택에 긍지를 갖고
자신감을 갖으며 남들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게
잡아주는 게 부모역할인 것 같아요,
근데, 한국 부모님들의 자식사랑이 깊어서
좀 더, 좋은 학교, 좀 더 나은 학과를 보내려고
부모들이 애를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아요.
과외도 엄청 많이 시키고,,
여기 얘들은 고등학생들도 거의 공부 안해요.
하는 애들만 몇 몇 정해져 있고,,집안 대대로
동경대출신이거나 의사, 변호사
외에는 거의 자식들의 진로 결정은
본인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지켜보는데..
그래서 자녀의 진로는 부모가 결정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는 제 입장입니다 ]
[ 깨달음, 당신 말이 맞는데 현실적으로
한국에서는 그게 안 되니까 고민하는 거잖아 ]
[ 한국에서는 안 가르치는 부모가 이상한 것이고
돈 없는 부모가 미안하고,,그렇네요..]
우린 셋이서 마지막 건배를 하고 술잔을 비우며
오늘의 주제를 다시 되돌아봤다.
대체적으로 직업에 관한 선입견이나 편견은
자녀가 아닌 부모들이 가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부모의 생각대로 맞춰진 틀에
가두어서 보게 되고 키우게 되는 것이다.
조용히 기다려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다.
자신의 길을 나름대로 찾아가도록 재촉하거나
질책하지말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 보면
더 잘 보이기도 한다. 아이가 뭘 하려는지,,
사람은 한번 실패하면 다시 돌아온다.
그러니 실패의 맛을 보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조금 먼 길을 돌아간다고 해도
실패가 경험이 되어서 나쁜 게 아니다라고
깨달음이 정리를 했고, 후배가 알겠다고 머리와
가슴이 따로 움직였는데 조금은 한방향으로 생각이
모아진 것 같다며 계산을 자기가 하겠다고 해서
우리 세명이 서로 내려고 카운터 앞에서 실랑이를
하다고 깨달음이 기어코 계산을 하고
그녀를 호텔까지 바려다 주었다.
자녀가 원하는 미래와 부모가 꿈꾸는 미래는
절대로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꼭 좋은 대학, 좋은 학과가 아니더라도 자녀가
가고 싶은 길을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도록
응원해주고, 지켜봐주고, 북돋아주는 부모님들,
그리고 후배도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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