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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며느리로서 지금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

by 일본의 케이 2020. 6. 2.

아침, 7시 30분, 깨달음은 샤워을 하고

난 아침을 준비중인데 테이블에 올려진 

깨달음 전화에 진동이 계속됐다.

일찍부터 거래처는 아닌 것 같은데 

 끊기더니 또 울린다.

누군가 싶어 봤더니 액정에 떠 있는 발신자에 

시아버님 이름이 떠서 얼른 받으려는데 끊겼다.

 5분쯤 지나 깨달음이 나오길래 아버님에게서 

두번이나 전화를 하신 것 같다고하니까

바로 전화를 건다.

[ 무슨 일이야, 아버지? 응, 응,,언제? 

병원에 갔어? 지금은 뭐하고 있는데? 

알았어요, 지금 할게요 ]

전화 내용이 좀 불안했다.

전화를 끊고 시계를 쳐다보며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가 싶더니 어딘가로 문자를 보냈다.

[ 깨달음,,뭔 일이야? ]


아침에 어머님이 침대에서 내려오다 넘어져

 코피가 났는데 간호사가 없어 바로 치료를

 못했고 계속 누워만 계시려는

어머님이 걱정되서 전화를 하셨단다.

요즘 코로나로 여기저기 간호사가 부족한 상황에

요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자리가

 비어있다고 했다.

병원에도 가고 싶다고 바로 갈 수

없어서 답답해 하신 것 같다고 동생에게

문자를 했으니 동생이 가볼 거라고 했다.

[ 뼈가 다치거나 그러진 않으셨대? ]

[ 응, 코피만 좀 났나 봐, 뼈가 다쳤으면 

통증때문에 못 견디셨을 거야,

 지금은 피도 멈추고 주무시는데 걱정되서 

전화하신 것 같애 ]

[ 서방님에게 전화는 하셨대? ]

[ 응, 했는데 안 받아서 나한테 했대,

별로 큰 일이 아닌데 아침부터 깜짝 놀랬네.

 요즘 부쩍 아이처럼 구시네,, 아버지가,,

예전엔 엄마가 수술할 때도 전화 한통

안 하시고 두분이서 잘 하셔놓고 

 거의 매일 전화를 하시네 ..]

 그게 귀찮다는 건지, 별일 아니여서 다행이라는 건지

두가지 뜻을 포함한 듯한 뉘양스였다.

[ 서방님이 요양원에 가 보시겠지? ]

[ 응, 내가 가 보라고 그랬어, 나도 조금 있다가

요양원에 전화 해볼거야 ]

[ 그래,,서방님 다녀오시면 나한테도 알려줘 ]


출근을 하려는 깨달음이 추석선물을

보내야한다며 카다로그를 주면서

한국에 보내고 싶은 거나 인사드릴 곳에

보낼 선물을 미리 골라두라고 했다.

[ 벌써 보내는 거야? ]

[ 응, 7월초부터 배달하기 시작하니까 지금 

신청하는게 빠른 게 아니야,,]

[ 아,,그렇지...]

그러고보니 어제, 깨달음 선배에게서

추석선물로 우동이 도착했었다.

이곳은 8월 15일이 추석이다. 이제껏

이무렵이면 항상 추석선물을 준비해 왔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두달정도 정지되어버려서인지

날짜 감각이 무뎌져 버린듯 했다.


시부모님께는 뭘 보내드릴까 뒤적이다

센베세트과 우메보시를 고르고 친정엄마께는

과일제리를 선택했다.

그리고 집안 일을 좀 하고 난 후

차분히 않아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다.

[ 아버님, 저 케이에요 ]

[ 오, 케이구나,,전화해줘서 고맙다 ]

아침에 전화주셨는데 통화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고 깨달음 연락만을 그냥 기다리고

있기에는 내 마음이 편치 않아서였다.

어머님은 지금 괜찮으신지 물었더니

마침 옆에 계신다고 바꿔주셨다.

[ 어머님,,괜찮으세요? ]

[ 응,,화장실 가려다가 발이 꼬여서

넘어졌는데 코피가 나는 바람에..]

지금은 코피도 멈추고 간호사가 와 봐줘서

괜찮다는 어머님,


뭐가 드시고 싶은 게 있으신지,

필요한게 있으신지 여쭤봤더니 지난주에

 보내준 과자며 통조림이 아직 남았다며

괜찮다하신다.

옆에서 아버님이 뭐라고 하시길래 뭐라 하시냐고

물으니까 밥에 뿌려먹는 후리카케가 몇 개 남지

않았다고 하신단다. 

[ 어머님, 그러면 제가 후리카케 보내드릴게요

아버님께 또 필요한 게 있는지 여쭤보세요]

[ 아니다. 그것만 보내주렴 ]

[ 어머님, 다른 곳은 괜찮으세요? ]

어머님이 조금 주저하시더니 요즘은 하루가

길게만 느껴진다며 예전처럼 뜨게질을 하고

싶은데 이젠 그것도 못하게 되서 

심심하다고 하셨다.

[ 뜨게질 실을 좀 보내드릴까요? ]

[ 아니다. 지난번에 집에서 가져왔는데 

눈도 침침하고 손도 자유롭게 움직여지지 

않아서 안 되더구나...]

옆에서 아버님에 언제나 올 수 있는지

물어보라는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지난주, 긴급사태가 해제되긴 했지만

아직까지 요양원측에서는 면회를 허가하지

않은 상태여서 갈 수가 없는데

아버님은 우리가 오는 걸 매일매일

기다리는 것 같았다.


[ 어머님, 면회가 곧 예전처럼 자유로워질 거에요,

그럼 바로 갈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

아버님께도 곧 찾아뵙겠다는 인사를 드리고

 전화를 끊고 나서야 한결 내 마음이 편해졌다.

두 분이 요양원에 들어가신 후로 점점

약해지셨다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서 휠체어를 타기 시작하면서

걷는 게 서툴러지셨고 다리에 힘이 없어져

 넘어지는 일이 잦아졌다.

누구의 탓을 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우리가 자주 찾아뵐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하니 모두가 그냥 자신이

 놓인 상황을 받아들이며 지내고 있다.

예전에야 자식들에게 전화하는 것조차도

망설이셨던 분들인데 이젠 자식들만을 의지하고

자식들을 그리워하신다.

깨달음과 난 되도록 찾아뵙도록 노력은 하지만

 살아계시는 동안 두 분께서 드시고 싶은 걸

 맘껏 드실 수 있도록 해드리자고 했다. 

그래서 지금 내가 며느리로서 해드릴 수 있는 건

언제나처럼 먹거리를 보내드리는 것과

더 이상 아프지 마시고 편히 쉬시길

기도하는 것 뿐이다.

다음에 두 분을 뵈러 갈 때는

좋아하시는 장어덮밥을 사서 가야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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