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하해, 케이 ]
[ 축하해, 깨달음 ]
건배를 하며 우린 약속이나 한 듯
뭘 축하한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3월 25일은 우리가 혼인신고서를 제출한 날이고
부부가 되었다는 걸 서류상으로
입증받은 날이기도 했다.
[ 깨달음, 그 날 기억해? ]
[ 응, 저녁에 서로 퇴근하고 만나서
신주쿠 구약소 야간창구에 가서 제출했잖아]
[ 그다음은? ]
[ 창코나베 먹으러 갔었지 ]
엊그제 일처럼 너무도 생생한데
벌써 10년이 지났다.
[ 은빈은 정말 9월에 결혼하는 거야?,
신혼집은 어디래?
신혼여행은 어디로 간대? ]
깨달음은 조카 은빈의 결혼에 궁금한 게 많았다.
[ 날 잡았다고 했잖아 ]
[ 그때까지 코로나가 잡히지 않겠지? ]
[ 그냥, 못 간다 생각해 ]
결혼날을 잡아두고 여러 가지 신혼준비를 할 때가
가장 두근거리고 재밌을 거라며 한복도
맞추고 신혼집에 가구들도 보러 다니고
그러겠다며 괜히 궁금해 죽겠단다.
난 연애만 하고 재밌게 지내면 되지 뭐하러
굳이 결혼을 하는가 싶어서 무관심인데
깨달음의 관심사는 나와 전혀 달랐다.
[ 깨달음, 당신은 다시 태어나도 결혼할 거지? ]
[ 응, 결혼할 거야, 당신은 안 할 거지? ]
[ 응, 두 번 다시 결혼 같은 건 안 해,
당신은 결혼이 뭐가 좋아? ]
[ 그러는 당신은 뭐가 그렇게 싫어? ]
결혼이 뭐가 그렇게 싫으냐는 질문에 할 말이
쏟아질 뻔했지만 간략하게 이렇게 답했다.
[ 난 누군가와 한 공간에 같이 사는 게
서툰 사람이야, 그래서 결혼이란 게 불편해 ]
[ 혼자가 왜 좋아? ]
[ 혼자가 남 신경 쓸 일 없이 편하잖아,, ]
그런데 왜 결혼을 했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몰랐다고, 이렇게까지 불편할지, 이렇게 내가
적응 못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사랑으로 극복하고, 같이 맞춰가며 사는 거라는
통상적인 결혼관 같은 건 나에게 맞지 않았고
10년을 같이 살았지만 난 변하지 못했다.
[ 깨달음,, 당신은 결혼이 뭐가 좋아? ]
[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기댈 수 있고,
인간은 원래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잖아 ]
[ 함께 아니여도 혼자서도 얼마나 즐거운데,,
그럼, 내가 여전히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
[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르니까 그러려니 해.
내가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 나는 괜찮아 ]
10년간 나를 지켜보면서 깨달음도
완벽하게 나라는 사람을 파악하고
소화하고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을 잘 참아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자기도 고맙단다.
나처럼 이상한 여자? 만났는데 뭐가 고맙냐고
물으니까 도저히 못 살겠다고 혼자 살 거라고
나가버릴 줄 알았는데 아내의 역할도
잘해줘서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아내의 역할이라는 게 집안일을 잘하는 거냐고
되물었다.
[ 내가 생각하는 아내의 역할은 집안일을
잘하는 것보다 잔소리를 안 하는 거였어.
당신은 원래 말 수가 없어서도 그러겠지만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아서도 좋았고
말로 하기 전에 늘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도
좋았고, 근데 가끔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어 ]
[ ..................................... ]
[ 깨달음, 내게 뭐 바라고 싶은 거 있어? ]
[ 없어 ]
[ 그럼, 지금 이대로가 좋아? ]
[ 응, 근데 곧 당신이 한국에 혼자 가서 살 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들어. 당신이 가면
나도 따라갈 거야 ]
[ 아니야, 갈 때는 당신에게 분명하게
얘기하고 갈게, 혼자 살겠다고,,]
[ 그렇게 얘기해도 난 따라갈거야 ]
[ 그건 아니지. 따라오면 안 되지 ]
[ 싫어, 끝까지 따라갈거야 ]
[................................................ ]
두 달 전, 조카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결혼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100가지 말해줄 수 있다고 했더니
결혼을 앞둔 사람들은 결혼해야 하는 이유를
101개 나열할 거라며 굳이 말릴 필요가
뭐가 있냐는 말을 들었다.
결혼은 안 해도 후회, 해도 후회이니 한번 해보고
후회한다고 선택하는 경우가 행여나 있다면
그런 후회는 절대로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하게 어필하고 싶었다.
결혼이라는 구조적 생활패턴이 맞는 사람에게는
결혼만큼 행복하고 즐거운 게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특이체질? 자신의 삶을
혼자서도 즐기는 사람들은
결혼을 하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이고
설명해주고 싶다.
우리가, 아니 내가 아직도 이 결혼을 유지하는
이유는 이 선택에 대한 책임감이다.
내 선택으로 인해 상대에게 피해나 상처가
되는 일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금껏 살아왔다.
어느 누군가는 결혼이 미친짓이라 외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결혼은 행복의 시작이라 말한다
어느쪽으로 걸어가냐는 모두
본인들의 몫이다.
우리를 아는 주변 친구, 동료들은
우리 부부를 보면 참 이상하다고 한다.
서로 좋아서 죽고 못 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죽도록 싫어서 미워하는 것도 아니라고,
하고 싶은 말 다하고, 자기 기분에 솔직하고
감출 것도 숨기는 것도 없이 다 보여주며
친구처럼 지내는 것 같다가도
불꽃을 튀기며 치열하게 싸운다며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한다.
우리처럼 사는 부부가 결코 많지 않아서
부러운 면도 있고 한편으로 불안하다고 했다.
그 불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음과 난 알고
있지만 그 마지막 카드를 사용하지 않는데도
각자 이유가 있어서이다.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희한한 커플이지만
우리만의 방식대로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서로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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