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나왔다. 주말이면 매번 비가 오는 바람에
집에만 있다가 모처럼 날이 좋았다.
집 주변을 돌다 새로운 상가에 멈춰
괜스레 한 번 둘러보고, 다시 목적지도
없이 뚜벅뚜벅 걸었다.
그렇게 서로가 상념에 젖어 말없이 걷다가
빵집에 들러 빵도 사고,,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뭘 봐도 흥미롭지 않고, 그냥 무작정 걷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깨달음은 팔을 휘저으며 걷기운동이 왜 우리
몸에 좋은지 몇 마디 하고는 또 열심히 걸었다.
만보기가 7 천보를 막 넘었을 때쯤 눈 앞에
전철역이 보였고 점심을 먹기 위해 전철을 탔다.
우리 둘 다 뭔가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꽤나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움직이는 스타일이지만
이렇게 무계획인 날엔 몸이 시키는 대로
마음이 향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다.
런치 시간이 끝나갈 무렵이어서인지
빈자리가 많았다. 테라스로 권유하는 걸
마다하고 그냥 실내 테이블에 앉았다.
깨달음이 2년 전, 호텔 공사를 했던 곳과
가까워 자주 왔던 곳이다.
자리에 앉아 두리번거리던 깨달음이
호텔이 휴업상태가 아닌 이유를 알 것 같다며
이 주변 상권에 관한 얘길 했다.
[ 와인 한 잔 할까? ]
[ 아니,,]
[ 여기 와인 좋아하잖아 ]
[ 다음에 저녁 타임에 와서 마시고 싶어]
[그래..]
주 3일 출근을 했던 깨달음이 다시 바빠진 듯
매일 출근을 하고 있다.
일이 많아지고 있는 게 아닌 직접을
거래처와의 식사 약속을 잡기
시작했고 지난주는 긴자(銀座)에서 두 건의
미팅이 있어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
접대라는 표현을 요즘은 잘 하지 않지만
긴자(銀座)에서 식사자리를 마련했다는 건
비즈니스가 목적이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 깨달음,, 일 많이 해서 돈 많이 벌어도
코로나 걸리거나 아파서 쓰러지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야 ]
[ 알아,,]
[ 그니까,, 코로나가 종식될 때까지만이라도
좀 느긋했으면 좋겠어 ]
[ 안 돼, 더 이상 이대로 두면 회사가 힘들어져 ]
[ 지난번에 얘기했잖아, 혹 회사 잘 못되더라도
너무 무리해서 다시 세우려 하지 말라고
지금 이대로도 우리 충분히 잘 먹고
잘 살 수 있어 ]
대답 없이 스파게티를 먹는데 집중하는 깨달음에게
물을 건네고 나도 입을 다물었다.
많이 초조해 보이진 않았다. 늘 침착하던
사람이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요즘,, 온 정신을 회사에 두고 있었다.
깨달음은 나름 노후 계획이 있었다.
그 계획대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아직 몇 년은
더 열심히 일을 할 생각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여전히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즐긴다.
조금 더 보장된 경제적 여유를 갖고 싶은 마음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깨달음 친구들은
퇴직하고 유유히 살고 계신 분도 꽤 계신다.
디저트가 나오고 깨달음이 입을 열었다.
회사를 그만두어도 고정수입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좀 더 벌고 싶은 게
솔직한 속내라고 했다.
지금 일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고,
아직까지 자신의 필요로 하는 곳이 있기에
기꺼이 보답하고 싶고, 뭐니 뭐니 해도
좀 더 편한 노후생활을 즐기기 위해서는
지금 몇 년을 바짝 벌어 두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에 다시 공사를 성립시키기 위해
뛰는 거라고 했다.
[ 깨달음,, 나 돈 많아,,아니,,당신,,그렇게
열심히 일 안 해도 돼...]
[ 그래? 얼마 있는데? ]
[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3배, 4배 정도 있어 ]
[ 진짜? 현금으로 있어?]
농담 반 진단반이었지만 어떻게든
깨달음을 안심시키고 싶었다.
[ 깨달음,, 몇 번 말하지만, 바득바득 애쓰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거야, 일을 하더라도
여유롭게 했으면 해. 기를 쓰고 일할
나이가 아니라는 거지, 일하느라 몸 상해서
쓰러지면 돈 있어봐야 무슨 소용이야,
아파서 병실에 골골하고 있으면서
먹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 먹고,
쓰고 싶은 것도 하나도 못 쓰고 죽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았어? ]
[ 알았어..]
[ 아프면 다 필요 없어. 돈,, 있어도
죽어서 짊어지고 갈 수도 없고, 그니까
적당히 안 되겠다 싶으면 회사 접어도
된다고 내가 말했잖아 ]
[ 알았어.. 근데 정말 당신 얼마 있어? 나한테
좀 보여줘 봐, 한옥 한채 살 정도의
돈은 있는 거야? ]
[ ........................................ ]
[ 깨달음,,한옥은 못 사더라도,,당신이
노후에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줄게..내가 ]
[ 진짜지? ]
[ 그니까,,그냥 적당히 해..당신 쓰러져서
병원 신세지는 일 만들지 말고,,
이젠,,젊지 않다는 거야,, ]
그냥 쉬엄쉬엄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노후생활을 염려하고 초조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통장을 안겨줘야 안심을 할 것 같다.
40년을 넘게 회사를 경영해 왔던 사람으로서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이렇게 얘길 해도 깨달음은
자신이 세운 계획에
맞춰 내일도 열심히 뛸 것이다.
'한일커플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무도 다른 두사람이 같이 산다 (0) | 2021.05.30 |
---|---|
우린 하루 두끼만 먹기로 했다 (0) | 2021.05.11 |
결혼은 미친짓이다. (0) | 2021.03.26 |
생각이 많았던 남편의 주말 (0) | 2021.02.28 |
9월엔 한국에 갈 수 있을까.. (0) | 2021.02.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