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회 모임이 있었다.
내 앞 테이블에서 열심히 움직이시는
60대 중반 정도의 분에게 한국분이냐고
물었는데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으로 날
빤히 쳐다보더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셨다.
마치 자신이 한국인인 걸 몰랐으면 하는
표정을 하셨다. 그 분 명찰에는 나처럼
일본인 남편 성을 딴 일본이름이
적혀있었지만 난 금방 알 수 있었다.
내가 특별히 한국인 구별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일본생활이 오래되면
될수록 옷차림, 머리 스타일, 화장법, 그리고
절대로 숨길 수 없는 한국인 특유의 일본어
발음과 억양을 들으면 누구나 금방 알수 있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동포가 아닌 이상
바로 표가 나는데 이 분은 유난히 놀라했다.
[ 어떻게 바로 아셨어요? ]
[ 아니,,한국분 같아서...]
[ 여기 오래 소속 되셨나봐요? 한국분이
없을 줄 알았는데.. ]
[ 저 말고 두 분 더 계셔요 ]
[ 나는 올 해 처음이여서 ]
[ 그래서 제가 좀 알려드려야할 게 있어서
말을 걸었던 거에요 ]
오늘 내가 그 분께 먼저 말을 했던 건
협회에서 필요한 정보들을 알려드려야했고
팀으로 움직여야 하기때문에 어느 정도는
그 분에 대한 기본정보도 알아야했다.
필요한 사항들을 어느정도 알려드리고
저녁식사모임이 있는 레스토랑에서 다시
그 분을 만나 좌석으로 안내를 해드리는데
마치 나를 처음 본 사람처럼 행동하셨다.
솔직히 이런분들이 은근 많아서 그러러니했다.
일본에서 한국분을 만나가 되면 보여지는
몇가지의 패턴이 있다.
1. 필요할 때나 자신이 아쉬운 상황에 처하면
한국인임을 밝히시는 분.
2. 처음 만나는데 너무 친하게 대하시는 분.
3. 한국인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시는 분.
4. 일본인하고만 대화하려고 애를 쓰시는 분.
5. 한국인하고만 지내려고 하시는 분.
6. 자신이 일본인이라고 착각하고 사시는 분.
7. 흑심을 품고(돈, 직장, 남자를 구하기 위해)
친하게 지내려고 일부러 접근하시는 분,
8, 뭐든지 도와주시려고 애쓰시는 분 등등
해외생활을 하다보면 본의가 아닌
여러 장소에서 한국분과의 교류와 친분을
쌓아야할 때가 있다. 싫던 좋던 내 의지와
상관없이 관계를 이어가고 관리를
해야할 일이 생긴다.
실제로 나뿐만 아니라 해외거주가 길어진 분들은
한국분을 만나면 그냥, 저 분은 한국분이구나라는
정도만 생각할뿐 굳이 꼭 나도 한국인이라고
밝히거나 또 일부러 인사를 나눈다거나,
아는체를 적극적으로 하려고 하지 않은
분들이 꽤 계실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만남에 따라 조금은 다를 수 있지만
만나게 되더라도 어디서부터 언제부터
어디까지 자신의 얘기를
해야하는지 괜히 뻘쭘할 때가 많다.
특히, 제일 서먹할 때는 일본에 어떤 경위와
목적으로 오셨는지 전혀 모를 경우에
가장 어색한 게 사실이고 서로의 관심사,
고민거리, 삶의 방식이 너무 달라 공유할
사항을 못찾고 침묵만 오갈 때도 있다.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으로 오신 분,
일본인과 결혼으로 오신 분,
비자(영주권) 취득을 목적으로 오신 분,
직장, 사업관계로 오신 분,
일본으로 이민을 오신 분,
돈을 벌기 위해 오신 분,
불법체류를 하시는 분 등등..
세미나, 학술회, 연구회, 협회모임,
봉사단모임, 통역 등 각단체에서 행해지는
일들이 다른만큼 다양한 분들을 뵙는데 참 많은
사연들로 일본에 살고 계시는 분들이 많아서
인지 같은 한국인이라고 해서 바로
친해지고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정작 해외생활에서 그래도 의지가 되고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같은 나라인
한국사람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작년에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어느 50대
주부는 나를 만나고서는 많이 우셨다.
정말 답답했다고, 말할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나하고 친하게 자신얘기를
할 수 없어서 속병이 들 정도였다고 하셨다.
가슴이 시리도록 그리우면서도 한국인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고
그 후로는 마음에 문을 닫고 일본친구들과
지냈었는데 뭔가 늘
채워지지 않는 허허로움이
늘어가고 역시 한국사람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드셨다고 했다.
같은 정서와 문화 속에서 자라온 한국사람과
한국말로 얘길하고 서로의 고민들도 털어놓으며
해외생활의 애로사항같은 것도 함께 나누면서
지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면서도
또 상처 받을까봐 두려웠는데 지금은 자기를
아프게 했던 그 사람도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라는 생각에 용서가 되더라고
그 사람도 일본에서 사는 게 녹녹치 못했기
때문에 그런 문제를 일으켰을 거라고
같은 한국사람끼리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실제로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같은
한국인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피해를 보신
분들이 알게 모르게 많지만 그 반면, 그곳에서
정착하는데 한국분들의 도움으로 자리를 잡고
아이의 교육이나 직장을 구하는데도
어드바이스와 길라잡이 역할을 해 준
경우가 더 많다.
나 역시도 한국을 그리워하면서도 이렇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걸 보면
이곳에 살고 계시는 다른 분들도 마음은
외롭고 쓸쓸해서 친해지고 싶은데 괜히
상처받고 마음 다칠까봐 다가가지 않거나
미리 방어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인간관계라는 게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다는 걸 알고 있기에 거리를 두다보니
다가갈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서 치유
받아야하는데 주저하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의외로 한국을 그리워하고,
만나고 싶어하는 마음은 가득하면서도
막상 자리가 마련되면 오만가지
생각들에 사로잡혀 우린 서로를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다가가고 싶으면서도 주저하게 되는
그 묘한 내적갈등 속에 휩싸여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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