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전철을 타고 한 시간을 달린 뒤,
고마가와 (高麗川)역에 내려 바로
택시에 올라탔다.
목적지를 말하자 기사님이 묻는다.
고마신사(高麗神社)에 관광버스가 몇 대나
들어가고 손님들도 오늘 따라 그곳을 많이
찾는데 무슨 날이냐고....
지난 주, 우리는 사물놀이를 보기 위해
사이타마에 있는 고마신사(高麗神社)를 찾았다.
김덕수 사물놀이 팀이 30년만에
다시 찾아 공연을 하는 뜻깊은 행사였다.
택시에서 내리자 꽹과리와 장구소리가
주차장에 울려 퍼졌고
우린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신사를 향해 달렸다.
10월 마당 사이타마민단제라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모이신 분들, 관계자들이
재일동포임을 알수 있었다.
고려신사(高麗神社)는 고구려출신
약광 (若光)을 제신으로 모신 신사이다.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후
고구려인들이 쫒기듯 이곳으로 이주를 했다.
그 당시 넘어온 고려인은 1,799명이였고
그들이 이곳에서 도래인( 5,6세기경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사람)으로 살았으며
일본인들은 이들을 고마히토(高麗人)라 불렀다.
고구려 유민들을 모아 현재의
히타카시를 중심으로 고마군(高麗郡)을 설치,
초대 군수를 역임했다.
약광의 후손들은 26대까지는
고구려 자손끼리 혼인해 혈동을 이어 오다가
그 뒤 일본인들과 혼인해 지금은
거의 일본사람이 되었지만 현재에도 이 신사의
사제직을 대대로 계승한 것을 기록한
고려씨족의 가계도가 전해지고 있다.
지금 신사를 지키는 책임자 궁사는
약광 60대 손인 고마 후미야스씨가 역임하고 있다.
그렇게 시작된 고마군의 역사가
올해 1,300년을 맞은 것이다.
그리고 이 신사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출세의 신사]로 불리기도 하고
출세다리를 건너 이 신사로 들어온다.
이곳에 참배를 했던 정치가 중에서는
사이토 마코도, 하토야마 이치로 등
6명이 총리가 되었고 한국에서는
최규하 대통령과 대통령 비서실장
이후락씨 등이 방문했다고 한다.
욘사마가 출연한 [태왕사신기]가 방영되던 해는
일본 팬들이 많이 찾았다고 한다.
입구에서부터 참기름 냄새와 고기굽는
냄새로 식욕을 자극했고 부침개, 떡, 김밥,
각종김치, 돼지갈비, 젓갈 등등 한국음식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마당에는 벌써부터 장구와 꽹과리로
흥이 나 있었고 그 장단에 맞춰
덩실 덩실 춤을 추는 사람,
막걸리를 서로 나눠주며 마시는 사람들로
오랜만에 한국의 민속촌에
온 듯한 느낌마져 들었다
내가 사진을 찍고 있는 동안
깨달음은 육개장을 사서 선채로 먹고 있었다.
[ 근데 왜 울면서 먹어? ]
[ 몰라,, ]
[ 나는 재일동포들이 아니 고려인들이
이 땅에 정착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애환같은 게 느껴져서 괜히 찡하더라....
당신은 일본사람인데 뭐가 슬펐어? ]
[ 사물놀이 소리를 들으면서 이 매콤한
어머니의 맛, 육개장을 먹으니까
자연스럽게 눈물이 났어....
일본사람이여도 느끼는 건 같아.... ]
[ ......................... ]
아니라고 당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들의 아프고 시린 삶을 모를 거라고
하마터면 말해 버릴뻔 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고
30년 전에도 이곳 고마신사에서 공연을 했고
오늘 공연은 1,300년을 기념하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우린 넋을 빼고 공연에 빠져 들어갔다.
약 두시간의 공연이 끝나고 모든 사람들과
함께 뒷풀이를 하기 위해
무대밑으로 내려오셨고
중앙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속에 깨달음도
묻혀 들어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서로 악수를 하고 춤을 추느라
점점 나는 뒤로 밀려가고 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깨달음이
김덕수님와 남기문씨 두 명하고
악수하고 왔다고 코를 벌렁거리며
흥분하며 좋아하길래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고 하자
그럼 다시 악수하러 갈 거니까
자기를 찍으라면서 인파 속으로 또 사라졌다.
[ .................... ]
그렇게 두손으로 공손하게 악수를 하며
[ 좋아요~~, 진짜 좋아요]라고 했다.
[ ........................... ]
정말 귀한 공연이였고 너무 뜻깊었으며
정말 흥이 났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한국어를 못하니 그러지 못해 아쉬웠단다.
뒷풀이가 끝났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여운이 남아 서로 부등켜 안고 춤을 추기도하고
우리도, 아니 깨달음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집으로 가기 위해 전철을 탔다.
전철 안에서는 공연을 봤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연주에 관한 얘기들이 들려왔고
일본 악기와는 뭐가 다른지 세세하게
분석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옆에서 깨달음은 [좋아요]보다 [ 최고에요]라고
했어야 하는데 단어가 생각이 안 났다며
[좋아요]는 너무 약해서 실례가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뒤늦은 후회를 했다.
일본에서 우리의 전통문화을 접할 때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이
가슴 깊은 곳에서 끌어올라온다.
내가 한국인임을 재확인해서 일게다.
이곳이 일본이라는 나라적 특성상
더 감성을 자극하는 것도 분명 있을 것이다.
특히 이 날은 장소도 역사적으로 아주
특별한 곳이였기에 공연자체의 의미가
뜻깊었고 귀한 시간이였다.
깨달음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 팜플렛을
또 읽고 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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