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갈 때마다 기내식을 안주 삼아 맥주나 와인을 마시던
깨달음이 이날은 거의 손에 대질 않았다.
광주가서 맛있는 것 먹을거라는 이유만으로....
광주에 도착하자마자 배가 고픈 깨달음은
엄마를 모시고 칼국수집으로 바로 향했다.
바지락 칼국수와 왕만두 일인분을 게 눈 감추듯 먹는 걸
보고 계시던 엄마가 깨서방은 배가 많이 고프면
양손으로 먹는 것 같다고 하셨다.
항아리에 나온 갓물김치와 생배추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국물까지 마시는 걸
엄마가 흐뭇하게 쳐다보셨다.
그렇게 배를 빵빵하게 채운 깨달음의 다음 코스는
시장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문어다리를 사는 것이였다.
우리를 기억하고 계신 주인 아저씨가 서비스를 많이 주셨고
깨달음은 기분이 좋아 발걸음이 경쾌했다.
반찬거리를 가득 사서 돌아온 우리는 엄마를 집에 모셔다 드리고
내친김에 마트까지 들렀다.
일본에 보낼 것들이 몇 가지 있어 바구니를 들고 돌고 있는데
깨달음은 카트를 과자코너에 세워둔 채 한참을 고르고 있었다.
내가 힐끗 쳐다보자
직원들 주려고 사는 거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대답을 했다.
실은, 작년 여름부터 내가 과자를 못 먹게 했었고
깨달음 역시도 과자가 배를 나오게 하는 주범임을
알고 난 후론 자제를 했었다.
집에 있는 과자들을 모두 회사로 가져가
직원들에게 인심좋게 다 풀었다.
그런데 처음 본 과자들을 들고
무슨 맛이냐고 일일히 묻는 거보니까
분명 직원들에게만 주려고 사는 것 같진 않았지만
그냥 오랜만에 기분좋게 고를 수 있게
새상품 몇가지를 사보라고 권했다.
그렇게 모든 쇼핑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깨달음이 이날 밤, 저녁 메뉴가 생각났다고
[ 탕수육]을 시켜 달라고 했다.
마트에서 사 온 막걸리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탕수육이 오자 엉덩이를 삐쭉거리며
알수없는 이상한 춤을 추는 깨달음..
엄마는 하는 짓이 귀엽다고 칭찬을 하셨지만
난 한국에만 오면 자기 멋대로인 깨달음이 좀 신경 쓰였다.
다음날 아침, 언니들과 동생이 오전부터 도착을 하기에
점심 준비를 위해 전날 사 둔 반찬거리를
준비하는데 깨달음은 자기가 좋아하는 꼬막 담당을 맡았다.
세 개쯤 까고 한 개는 자기 입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서도
엄마와 난 모른채 했다.
가족들이 모두 모이고 우린
아빠 4주기 추도예배를 드렸다.
아직 4주기여서인지 난 올해도 변함없이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한채
예배에 임했다.
그리고 엄마의 팔순 생신파티가 있는 호텔로 향했다.
자식들이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많은 분들에게 알리지 않고 정말 직계 가족들만 불렀다.
간단히 식사를 대접해 드리고자 마련했던 자리이기에
축의금을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했다.
2시간의 식사시간을 마치고
오신 분들께 수건과 떡을 나눠드렸는데
축의금을 주려는 큰집 오빠네와
받아서는 안 된다는 우리 형제들의
보기 좋은 실랑이가 벌어졌고 깨달음은 뭐가 그리도
신이 나는지 제부와 함께 까불고 있었다.
그렇게 친척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 온 가족들은 또 한자리에 모여
다시 한 번 엄마의 팔순생신을 축하드렸다.
가족여행을 다녀오자는 얘기들이
오갔고 아빠 기일을 구정 설에 같이 하는게
자식들이 편하다는 엄마의 제의가 있었지만
아직은 그렇게 하기엔 이르다는 우리들의 의견들이 오갔다.
다음날은 우리 일본팀 빼놓고 새벽부터
모두 서울로 올라가야해서 일찍 잠을 청했다.
침대에 누운 깨달음이 어머님이 호텔에서
인삿말을 하실 때 눈물을 보이시던데
그 눈물이 많이 슬퍼 보였다고 했다.
아빠를 떠나보내고 혼자 생활하신지 4년,,,
만감이 교차하셨을 것이다.
누구보다 자식들에게 피해 주고 싶지 않았던 엄마는
이번 팔순 파티도 엄청 거부를 하셨다.
그냥 집에서 간단히 식사하면 될 것을
시끄럽게 한다고,,,
자식은 자식으로서 해드리고 싶은 게 있으니
이번만큼은 우리뜻대로 하게 해달라고 했었다.
엄마는 그런 일련의 것들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였다.
전날밤, 깨달음과 탕수육을 드시면서 엄마가 그랬다.
오랜만에 먹는 탕수육이 맛있다면서
혼자 있다보니 먹고 싶어도 왠지 못 시켜먹고,,
모든 일에 점점 자신감도 없어지고,,
자신이 초라해지는 듯하다고,,
자식들이 염려하는 것도 싫고, 그래서 더 씩씩하게
살려고 하는데 몸이 말을 안 들을 때가 있어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부질 없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홀로 된 부모의 외로움과 고충들,,,,,,
자식들은 막연하게 외로우실 거란 생각만 할 뿐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고깃집을 가고 싶어도 혼자 가야한다는 것도,
짜장을 혼자 시켜야 하는 것도,
병원에서 혼자 링켈을 맞아야 하는 것도,
우리 자식들은 몰랐다.
고기가 드시고 싶을 땐 그냥
혼자서 삼겹살을 사다 드신다고 했다.
지난 구정날, 엄마 혼자서 시장을 3번이나 왔다갔다 하신 것도
무거운 짐 보따리를 버스에 올리며
운전 기사에게 눈총을 받은 것도 우린 몰랐다.
가까이 있으면서 드시고 싶은 게 뭔지,
아픈 곳이 어딘지, 가고 싶은 곳이 어딘지.
그 때 그 때마다 손과 발이 되어
지켜드리고, 안심시켜드리는 게
최선의 길인데 우리 자식들은 모르고,,,,
모른 척하고 있다.
[탕수육]을 맛있게 드시던 엄마 모습이 눈에 밟혀
난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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