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저녁을 먹고
내가 캐리어에 짐을 넣고 있는 동안,
깨달음은 내 방에 왔다가 말없이 빼꼼
내다보기를 두어 번 했다.
난 한국 날씨를 다시 검색해 보고
약간 얇은 다운재킷을 챙겨 넣었다.
제주도에서 5년 전에 했던 한 달 살기를
이번엔 서울에서 해 볼 생각인데 짐을
꾸리다 보니 가져갈 게 많은 것 같은데
그냥 최대한 가볍게 가자는 생각에
꼭 필요한 것들만 다시 추려서 넣었다.
그렇게 간단하게 짐을 싸는데도
꽤나 시간이 지났던 것 같다.
가방을 다 챙기고 깨달음에게 가 봤더니
깨달음도 캐리어에 옷을 넣고 있었다.
뭐 하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짐을 챙긴단다.
[ 당신이 왜 챙겨? ]
[ 나도 3박 4일 가잖아 ]
[ 그러긴 하는데 아직 일주일 남았잖아 ]
[ 그냥,,, 당신이 짐 싸는 거 보니까
나도 지금 하고 싶어서..,, ]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내버려 두고
난 주방에서 냉장고 속 재료들을 꺼냈다.
뭘 어떻게 할 것인지 잠시 생각을
했다가 껍질들을 까고 삶기 시작했다.
먼저 우엉을 볶고 두부와 곤약을 조리고
토란은 일단 잘 삶아 식혀두고
감자와 계란은 건포도를 넣어
샐러드를 만들었다.
오징어포를 잘라 볶고 다른 프라이팬엔
달걀과 새우를 넣은 스크램블을 만들었다.
반찬을 만들어 열기가 식도록 뚜껑을 열어두고
다음은 인스턴트가 뭐가 있는지
팬트리에 있는 것들을 죄다 꺼냈다.
[ 깨달음,, 이리 좀 와 봐 ]
[ 왜? ]
[ 여기에 이렇게 올려놓을게 ]
카레는 3종류도 나눠놓고 즉석밥과 김,
그리고 라면들을 보기 좋게 쟁반에 꺼내 올렸다.
[ 이렇게 많이 해 놨어? ]
[ 응, 내가 없는 동안 먹으라고, 꺼내기 편하게
김치 냉장고 위에 올려놓을게,
반찬들은 냉장고 오른쪽에 넣어 둘게 ]
일주일 후엔 자기도 한국에 가는데 너무
많은 것 같다면서도 반찬이 많아 좋단다.
일주일은 이 반찬으로 버티고
나머지 3주는 혼자서 외식을 하겠다며
내가 없는 동안 자기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맛집들을 알아 두겠단다.
[ 깨달음, 더 필요한 거 있어? ]
[ 없어, 충분해, 당신도 한국에서
맛집 많이 찾아 봐 줘 ]
[ 알았어 ]
[ 아,,김치는 어딨어? ]
[ 김치는 냉장고 왼쪽편에 넣어뒀어 ]
[ 알았어 ]
잠자리에 들려고 방에 들어가 마지막으로
가방을 체크 한 뒤 다시 거실로 나와
보리차를 끓였다. 물까지 끓여 놓아야지
남편 혼자 두고 떠나는 아내의 책임?을
다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첫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일찍 하네다 공항으로 나서는데 깨달음이
배웅하겠다며 자기도 서둘렀다.
공항은 코로나 전처럼 외국인, 내국인이 섞여
상당히 붐볐고 출국 심사를 하는 게 시간이
소요된다는 안내 방송이 계속 흘러나왔다.
깨달음은 출국심사대에 같이 줄을 섰다가
사람들이 밀려오자 얼른 빠져나가면서
내게 손을 흔들었다.
공항에서 커피라도 한 잔 할 생각으로
여유 있게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우린 바로 작별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라운지에 들어가
깨달음에게 내가 없는 동안에도
잘 챙겨 먹고 잘 지내라고 카톡을 보냈다.
일주일 후에 다시 한국에서 만나긴 하지만
어찌 됐든 한 달을 혼자 지내야 하니
자유로우면서도 불편할 것이다.
전철을 타고 가는 중인지
20분이 지나도 카톡을 읽지 않았다.
어젯밤, 솔직히 반찬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간단히 차려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를 몇 가지챙겨둘 생각이었다.
굳이 반찬이 필요할까 싶었는데
한 달간 자리를 비운다는 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
깨달음이 좋아하는 반찬들로 준비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렇게라도 해야 미안한 마음이
덜 해질 것 같아서였다.
제주도 이후, 딱 5년 만에 다시 하는
한국에서 한 달 살기..
오랜만에 우리 부부는 각자에게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깨달음도 온전한 자유를
만끽하겠다고 했으니
각자 보내는 이 한 달이 서로에게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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